하지만 문제는 17건의 사건들 모두 당시 검사들이 법적으로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론들이었다는 점이다. 과거사위의 권한이 제한적인 점도 한몫했다. 당시 수사팀 소속 검사들이 과거사위의 결론에 강하게 반발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단순 반발이 아니라는 점. 일부 사건의 경우 과거사위와 조사단 관계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한 건도 잇따르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다소 일방적으로 결론을 발표하다보니, 수사팀 관계자들 입장에서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게 중론이다. “만에 하나 정권이라도 바뀌면 현 과거사위 결론을 조사하는, 2차 과거사위가 나올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 위증 기소 등 성과도 없지는 않지만..
지난 2017년 12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과거사위 위원들을 위촉하며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위원들의 열정이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며 검찰의 과거사건 처리에 대한 진상규명을 부탁했다. 그리고 1년 5개월 간 과거사위는 17건의 사건을 파헤쳤고, 일부 사건의 경우 기소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냈다.
강기훈 유서 대필, 고 박종철 고문치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 8건의 사건에 대해 과거사위는 검찰이 피해자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3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마음 깊이 사과한다”며 검찰총장이 눈물을 흘리는 보기 드믄 장면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은숙 기자
논란이 없진 않지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뇌물·성범죄 혐의를 포착해 구속 기소한 것도 성과다. 지난 2013, 2014년 검찰과 경찰 수사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된 이들을 같은 혐의로 다시 수사해 구속하는 것은 ‘뻔하지만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는 게 검찰 내 여론이다. 또 과거사위가 수사권고한 ‘신한금융–이상득 전 의원 간 남산 3억 원 전달 의혹 사건’ 역시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져 신한금융 관계자들 일부가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등 실체를 밝혀내는 데 과거사위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이 나온다.
# 하지만 과도한 의지가 문제?
그럼에도 검찰 스스로 과거 수사의 문제를 찾아 청산하겠다며 나선 첫 시도는 성과보다는 잡음이 더 큰 모양새다. 지난해 2월 처음 12건의 사건을 진상조사 대상으로 선정했으나 ‘장자연 사건’ ‘용산참사 사건’ 등에 대한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자, 추가로 5건의 사건을 2차 사전조사 대상으로 추가하면서 발목을 잡히기 시작했다.
사건 선정 단계부터 정치편향 등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장자연 사건이 추가되면서 검찰 내에서는 “사건도 문제가 있었지만, 조선일보에 재갈을 물리려고 일부러 추가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치적으로 엮인 검찰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고,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 수사 건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너무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정치적인 선택을 하면서, 정작 과거사위는 강제수사권을 갖지 않아 확실한 입증까지 연결시킬 수 없었다. 압수수색 등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 검찰 과오가 처벌로 연결되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총장의 사과를 요구한 건은 전체 17건 중 8건에 달했지만 총장이 실제 사과한 것은 2번뿐이었고, 징계시효 3년이 모두 지난 탓에 검찰권 남용, 부실 수사 등에 대한 징계·형사처벌로 이어진 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 과거사위 발목 제대로 잡은 장자연 사건과 용산참사 사건
특히 고 장자연 사건과 용산참사 사건은 2차 조사 대상에 포함된 뒤 결론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과거사위의 활동에 ‘오점’으로 남았다. 용산참사 사건은 조사 과정에 외압 논란이 일었는데, 과거 검찰 수사팀은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사를 조사단에 밝히고 이에 일부 민간 조사단원들이 지난 1월 중도 사퇴했다.
장자연 사건의 경우 과거사위와 조사단 간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조사단원 다수는 “장자연 리스트가 실제 존재하는 만큼 조사 기록을 검찰에 넘겨야 한다”고 과거사위에 최종 보고했지만 과거사위는 소수 의견을 존중했다. “장자연 리스트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최종 발표한 것. 이에 조사단 총괄팀장을 지낸 김영희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과거사위 결정에 반박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여환섭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장이 6월 4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용산참사 사건은 당사자들의 반발이 강하게 불거졌다. 용산참사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검찰 수사팀은 두 차례나 입장문을 발표했다. “(과거사위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의심을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보도자료에 담았다”며 명예훼손 책임을 묻겠다고 법적대응을 예고한 데 이어, 2차 입장문에서는 “과거사위가 심의결과만이 아니라 조사단의 조사내용을 밝힌 부분이 규정 위반”이라고 문제 삼았다. 과거사위가 청와대의 수사 개입 가능성 등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서는 “상식 수준을 벗어난 논리 전개, 허위공문서 수준”라며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과거사위가 앞으로 한동안 후유증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에 대해서는 과거사위가 건설업자 윤중천 씨와 유착 의혹을 실명으로 제기한 것이 검찰 내 뒤숭숭한 분위기에 불을 지른 모양새다. 유착 의혹이 제기되자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최근 과거사위·조사단 관계자를 상대로 5억 원 상당의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제히 민·형사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게다가 과거사위는 ‘수사’를 권고했지만, 수사촉구 6일 만에 김학의 전 차관을 수사하던 검찰수사단(단장 여환섭)은 정작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윤 씨와 유착했다는 의혹에 대해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에게서 “외압은 없었다”는 진술이 있었고, 윤 씨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수사단의 논리였다.
여기에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경찰의 ‘김학의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수사권고 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도 수사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과 과거사위 관계자들에게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있고, 장자연 씨 사건 역시 과거사위가 수사 권고에까지 나아가지 못하면서, 사건에 연루됐던 조선일보 측에서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법적 공방을 예고하는 등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4일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과거사위의) 권고가 법률적 개념도 아니고, 과거사위가 수사 촉구하는 건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일축하기도 했는데, 검찰 내에서 과거사위의 판단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는 게 검찰 내 평이다.
검찰 핵심 관계자는 “아무리 정치적인 사건에 검찰이 정권 편에 유리하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검사들은 그 누구보다 법의 문항 하나하나에 깊게 고민해서 사건을 문제가 되지 않게 처리하도록 근거를 확실하게 만든다”며 “과거 사건을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어떤 근거를 만들어서 판단했는지를 넘어서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결론만 발표하다보니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조만간 과거사위 성과와 한계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방침이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는 향후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 출신의 법조인은 “과거 정권에서는 정치적인 점을 고려한 의사 판단이 많았다지만, 이번에는 그걸 법조인들의 손을 빌어 스스로 과거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다 보니 검찰 내에서 ‘정치적으로 사건을 처리했다가는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더 확산됐다”며 “이번 과거사위는 나름 신념을 가지고 했겠지만, 검사들 사이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지금 과거사위의 활동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농담이 검찰 내에서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