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자유한국당 총선 공천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가 최근 물갈이 기준으로 ‘친박’ ‘영남’ ‘다선’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3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영남은 친박계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지역이고, 다선 의원 중에서도 친박계가 많다. 친박 진영에서 “신정치혁신특별위가 제시한 물갈이 기준이 사실상 친박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신정치혁신특별위 측은 “우리 당 텃밭인 영남과 다선 의원이 인적쇄신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두 가지는 역대 모든 선거에서 인적쇄신 대상이었다. 이런 기준이 친박을 겨냥했다고 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친박, 영남, 다선 등 모든 기준에 해당돼 물갈이 대상 1순위로 꼽히는 김재원 의원 측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김 의원 측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내년 총선 물갈이 기준이 공개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당내 계파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친박 홍문종 의원은 최근 탈당 후 대한애국당에 입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내에선 궁지에 몰린 친박 인사들이 대거 애국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 애국당 고위관계자는 “명단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애국당과 소통하는 한국당 전현직 정치인이 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라는 게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으니 그분들이 진짜 우리 당으로 올지 나도 알 수 없다”면서도 “그분들이 최근 황교안 대표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황 대표가 5·18 관련 한마디했다고 의원들을 징계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나. 애국당과 소통하는 정치인들은 공천 탈락할까봐 우리 당에 오는 게 아니고 정치적 소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진영에선 당 지도부가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와 연대하기 위해 친박계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친박 인사 측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내년 총선에서 바른정당계와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 바른정당계 쪽에서 선거연대 선제 조건으로 ‘핵심 친박을 인적 청산해야 한다’면서 살생부를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탄핵 사태 때 생고생을 하며 당을 지킨 것은 우리(친박계)인데 툭하면 인적쇄신 대상이라고 하니 억울하다”면서 “당을 끝까지 지킨 우리보다 당을 버리고 나갔던 사람들(바른정당계) 잘못이 더 크지 않나. 그쪽과 연대하기 위해 우리를 내치면 앞으로 누가 당을 지키려 하겠느냐”고 했다.
이 같은 소문에 대해 바른정당계 측 인사는 “허무맹랑한 소문”이라며 “인적청산에 대한 친박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당 지도부 쪽에서 지어낸 이야기 같다”고 일축했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친박 인사들의 애국당 합류 가능성에 대해 “아마 움직여도 공천 탈락이 확정된 이후에나 움직일 거다. 애국당으로 가면 당선 가능성이 낮아지는데 미리 움직일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친박연대도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총선 한 달 전 만들었다.
관계자는 “가도 별 수 있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애국당 지지선언이라도 해주면 모를까. 친박연대처럼 돌풍을 일으키진 못할 거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친박계 반발이 감지되자 신상진 신정치혁신특별위 위원장은 “친박 학살 같은 보복공천은 없을 것”이라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래도 친박계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지난해 12월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설치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는 현역 의원 21명을 물갈이 대상으로 선정하고 당협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때 홍문종, 김재원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상당수가 명단에 포함됐다. 당시 조강특위 물갈이 대상 선정 기준도 신정치혁신특별위가 제시한 기준과 대동소이했다. 따라서 당시 선정됐던 인사들은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의 친박 인사 측 관계자는 만약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면 무소속 출마나 애국당 입당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친박색이 비교적 옅은 인사들은 총선을 앞두고 친박 꼬리표를 떼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지금 우리 당에서 ‘친박’은 금기어”라고 귀띔했다. 이 당직자는 “우리 당 의원들이 친박 분류에 민감하다. 기사에서 어떤 의원을 친박이라고 지칭하면 당사자가 펄쩍펄쩍 뛸 거다. 내년 총선 공천에서 (친박으로 분류돼) 불이익을 당할까봐 다들 민감한 상태”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친박계 동향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원유철 의원실에 전화를 걸자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의원님이 왜 친박이냐”고 따져 물었다. 당내에선 원유철 의원이 친박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친박계와 대립했던 김무성 의원 측 인사는 회고록에서 “친박 행동대장은 원유철 의원이었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한때 한국당에서 자천타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60여 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대부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선 긋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친박이라고 하면 친박이라고 욕먹고 아니라고 하면 배신자라고 욕먹는다”고 하소연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인적쇄신 한다더니 총선 다가오자 모르쇠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2월 현역의원 21명을 물갈이 대상으로 선정하고 당협위원장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당시 전체 112명 의원 중 18.8%에 달하는 인사가 물갈이 대상으로 선정돼 파격적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조강특위위원장을 맡아 인적쇄신을 주도한 김용태 의원이 스스로 명단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당 안팎에서 살신성인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당시 조강특위 물갈이 대상으로 선정된 의원들은 대부분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강특위를 이끈 김용태 의원조차도 “조강특위는 조강특위일 뿐 총선 출마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당시 조강특위에 공천권이 없으니 대신 당협위원장직을 박탈한 것 아닌가. 사실상 불출마를 종용하는 의미였다. 조강특위를 이끈 김용태 의원 본인조차 조강특위는 조강특위일 뿐이라고 선을 그을 거라면 뭐하러 그런 명단을 발표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명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