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치과의사의 집을 절도하다가 검거된 조세형 씨. 연합뉴스
지난 1일 오후 9시 서울 광진구 한 다세대주택 1층에 도둑이 들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피해자가 잃어버렸다며 신고한 저금통 안 금액은 몇 만 원 수준. 범행 과정은 수려했다. 도둑은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지역의 1층 방범창을 손쉽게 뜯고 침입, 대담하면서 자연스러운 범행 솜씨를 선보였다.
하지만 도둑은 꼬리를 남겼다. 경찰은 현장 인근 CCTV를 분석해 범인을 추적한 끝에 7일 서울 동대문구의 거주지에서 조 씨를 검거했다. 조 씨는 경찰이 제시하는 증거에 범행을 인정했고, 이틀 뒤인 9일에는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발부 받았다. 피해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경찰은 조 씨의 범행이 상습적인 점을 감안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도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구속으로 조 씨가 구속된 횟수는 총 16번. 경찰은 “다른 지역에서도 조 씨가 한 것으로 추정되는 절도 사건이 있어 여죄를 수사 중”이라며 “추가 범행이 입증되는 게 드러날 경우 조 씨의 범죄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어려운 가정사 속 ‘물방울 다이아’와 함께 화제
조 씨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출생 직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돼 형의 등에 업혀 구걸한 젖을 먹고 자랐다. 6.25 전쟁이 발발하며 조 씨는 형과 함께 전주로 피란을 갔고, 그곳에서 형과 헤어지게 된다. 이후 조 씨는 전국의 보육원을 전전했고 이때부터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소년기에 이미 각종 범죄를 저질러 20차례나 소년원 신세를 져야 했다. 성년이 된 후 조 씨의 절도 행각은 더 과감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 씨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다. 드라이버 한 개만으로 가볍게 절도 행각을 벌이는 기술도 화제가 됐지만, 조 씨가 스스로 밝힌 범행 대상 선정이 서민들을 열광케 했다.
징역 15년을 살고 석방될 당시의 조세형. 일요신문 DB
실제 피해자 중에는 현직 부총리와 대기업 회장, 병원장 등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많았고, 체포 당시 경찰이 압수한 보석과 고급 시계는 마대자루 2개 분량이었다고 한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희귀품도 수두룩했다. 다만 그가 실제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는지 여부는 밝혀진 바 없다.
결국 1982년 11월 체포된 조 씨는 구치소로 이감되기 직전 법원 구치감에서 탈출해 5박6일 동안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며 더 유명해졌다. 결국 검거된 조 씨는 경북 청송교도소에서 징역 15년을 살았다. 보호감호 7년을 더 살아야 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쇠약해진 몸에 이미 50대에 이르러 재범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해 자유의 몸이 됐다.
15년이 넘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조 씨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웅처럼 떠받들어졌다. 그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세상의 관심에 적극 화답했다.
일요신문 DB
감옥을 나온 그가 선택한 직업은 종교인. 감옥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에 의지했다는 것. 목사가 됐고, 16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신접살림도 차렸다. 과거 범행 경력(?) 덕분에 굴지의 방범 경비업체가 고액의 월급을 주며 그를 자문위원으로 모시기도 했다. 신앙간증, 강연회 초청 등이 쇄도했는데 그 역시 ‘조세형 영웅 만들기’에 적극 동참하며 전향 의지를 강조했다. 대학에서 범죄 관련 특강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버릇은 끝내 버리지 못했다. 2000년 신앙 간증을 위해 방문한 일본에서 도둑질을 하다 현지 경찰에 체포되면서부터 그의 ‘불명예’가 시작됐다.
지난 2005년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치과의사의 집을 절도하다가 검거됐는데, 빈집을 털다가 덜미가 잡힌 게 창피했던지, 자신은 조세형이 아니라며 엉뚱한 이름을 둘러대기도 했다. 있지도 않은 엉뚱한 이름과 출생 날짜를 대며 노숙자라고 주장했는데, 당시 경찰이 지문 감식을 한 결과 조세형으로 밝혀지는 촌극도 벌였다.
그렇게 ‘좀도둑’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2010년에는 장물알선, 2013년에는 서울 서초동 소재 빌라 침입 등 연이은 범죄로 ‘대도’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14번째 수감생활을 마친 지 5개월 만에 재차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범죄를 저지르며 81살의 고령에 16번째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처럼 전과가 20범이 넘도록 좀도둑질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단순 절도범을 잡아보면 대부분 전과가 5번 이상 되는 상습범이 많다”며 “형을 마치고 나와서 취업할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다시 절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 씨도 도둑질이 습관처럼 된, 그냥 잡범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이젠 드라이버 하나로 힘들다”던 조 씨 과거 인터뷰 살펴보니 지난 2012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훔친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전 청와대 경호처장이라고 밝히는 등, ‘대도’로 불리던 시절에 대해 털어놓은 조세형 씨.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물방울 다이아는 당시 청와대 경호처장 집에서 털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방울 다이아를 훔치기 8년 전인 1974년에 이미 한 차례 침입했는데, 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순금들을 보고 ‘훔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그는 “(7년 복역 후 다시 가보니) 벽면을 장식했던 순금은 없었지만 안방에 가니까 물방울 다이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부총리였던 김 아무개 씨 등 정부고위 인사들의 집도 줄줄이 침입해 재물을 훔쳤는데, 되레 경찰은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며 당시 공권력을 비난했다. 조 씨는 “재판에 가면 부정축재자라고 국민들에게 성토당하니까, 빼라는 압력을 치안본부장에게 한 것”이라며 “경찰서에서 피해자들이 자기 집에서 잃어버린 피해액을 강제로 회수했다”며 자신이 훔친 것들이 다시 고위대작들에게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드라이버 하나만 들고 뛰어드는 건 불가능하다”며 “각종 보안 시스템 때문에 가정침입 범죄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던 조 씨. 그렇지만 인터뷰를 한 직후인 2013년은 물론, 2019년에도 다시 절도를 저질러 ‘도습’을 끊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
‘일요신문’과 조 씨의 인연, 결혼 후 ‘안정’ 찾나 했으나… 조 씨는 지난 2008년 전후로 ‘일요신문’의 인터뷰에도 수차례 응했다. 인터뷰 때마다 ‘손을 씻은 듯’ 뉘우쳤던 조 씨. 특히 지난 2000년 16세 연하의 이 아무개 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뒤 한동안 안정감을 찾은 듯했었다. 2008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당시 조세형 씨. 우태윤 기자 하지만 2년 뒤인 2010년, 조 씨는 구치소 안에서 ‘일요신문’의 인터뷰에 응하는 처지가 됐다. 장물아비 짓을 하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것.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지난 2009년 광주 금은방 4인조 강도들이 강취한 귀금속 2000돈 중 1000여 돈(시가 1억 1000만 원 상당)을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순차적으로 대신 팔아주고 수고비로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조 씨는 일요신문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후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범행 배경을 털어놓았다. 금전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 청송교도소 수감 시절 감방동기로 만나 ‘형님’ ‘아우’ 하며 인연을 끊지 못하고, 부탁을 들어줬다는 것인데 조 씨는 “아우가 귀금속 장사를 하거나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물건은 아니겠구나’라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 챘지만 금은방 강도행각으로 취득한 물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힘이 되어준 아내와는 지난 2009년, 10여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직후에 인터뷰가 이뤄졌다. 아내 이 씨는 “주변에서 그 사람을 놔두지 않았다. 출소자들이 그 사람을 수시로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고, 그 사람(조 씨)은 정이 너무 많아서 거절을 못하는 성격에 회사에 자신의 측근들과 심지어 마약에 손댔던 사람들까지 아우들이라고 심어 놓으니 사업이 정상적으로 될 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조 씨가 ‘인연’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이혼까지 하게 됐다는 것. 2010년 옥중 인터뷰에서 수기를 출간 계획을 밝히며 “어린 나이에 범죄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책으로 수차례 물의를 일으킨 사회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답이자 봉사를 하고 싶다”던 조 씨. 그렇지만 그 이후 10여 년 동안 조 씨는 벌써 세 번째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