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의회가 동료 의원의 비리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윤리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뜻을 모았지만, 소속 위원 구성에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사진은 6월12일 영등포구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는 김재진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영등포구의회 홈페이지
12일 영등포구의회 본회의장에는 고성이 끊이질 않았다. 본회의가 잠시 정회되는 동안에도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통해 각자의 주장을 이어갔다. 의원총회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복도 밖으로 충돌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무효입니다.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그 사람과 말을 섞은 적도 없습니다”, “본인들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동료 의원들을 대상으로 이래선 안 됩니다”, “여기저기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까”라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급기야 “말 조심하세요!”라며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 의원은 본회의장 복도에서 만난 기자에게 “구민들 보여드리기 정말 창피한 모습이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구의회가 소란스러웠던 이유는 다름 아닌 윤리특위 구성 때문이다. 김재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비리 의혹에 휘말린 상태다. 김 의원이 자신의 회사를 처남에게 넘기고, 처남이 구청사업을 수주한 것이 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업체는 가구·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 2016년부터 3년 동안 구청 사업을 43건 수주했으며 그 계약금은 약 3억 5000만 원에 달했다.
이해충돌 논란으로 김 의원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고, 구 의원 다섯 명(더불어민주당 소속)은 지난 3월 26일 본회의에 김 의원에 대한 윤리특위 구성안건을 상정시켰다. 그러나 이를 놓고 의원들 간 마찰이 생겼고 일부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의결정족수(과반수인 9인) 부족으로 자동 산회됐다. 이후 약 2개월이 지난 6월 12일 본회의가 열렸다.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윤리특위 안건 대상으로 거론된 김 의원이 상대편 의원들에 대한 윤리특위 구성을 역으로 제안한 것이다.
김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실확인도 없이 (저에 대한) 징계위를 올리려 하더라. 가만히 있었더니 별별 소리를 다 하더라. 그래서 저도 그들에 대한 징계안을 올렸다”고 밝혔다. ‘왜 김재진 징계안이 상정됐겠나’라는 질문에 대해선 “정략적인 의도와 함께 개인적인 시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설’이 있더라. 1차로 나를 징계하고, 2차는 윤준용 의장이라는 내용이다. 의장을 불신임처리 하기 위해 이런 징계가 올라온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비리 의혹을 전면 부인하나’라는 질문에 김 의원은 “그렇다”면서도 “저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징계안을 처리해서 징계하라고 했다. 그리고 제가 만약 그 비리를 시인하면 어떻게 되겠나. ‘5’를 시인해도 ‘10’이라고 확대할 텐데”라고 말했다.
국회는 통상 예민한 안건을 두고 당 대 당 대치를 벌인다. 하지만 영등포구의회는 달랐다. 이곳은 민주당 의원 다섯 명이 한 세력, 그리고 민주당 의원과 자유한국당·무소속 의원들이 다른 세력으로 뭉쳐진 모습이었다. 한국당 소속인 김 의원은 자신을 대상으로 윤리특위 소집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 다섯 명에게 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김 의원은 이들 중 두 명에 대한 징계를 위해 윤리특위를 제안한 것이다.
다섯 명의 민주당 의원은 김 의원의 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과 징계를 위해 윤리특위 소집을 요구했는데, 김 의원은 “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역공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선 김 의원이 사안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또는 보복을 위해 윤리특위를 역제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꾸려진 윤리특위는 9명의 의원으로 구성됐지만, 윤리특위 의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둘로 나뉜다. 고기판·권영식·오현숙·이규선·이용주·장순원·정선희·김길자·김화영 의원이 12일 구성된 윤리특위 소속 의원들이며, 이들 중 김화영 민주당 의원 단 한 명만 입장이 다르다. 나머지 8명의 의원들은 한국당·무소속·민주당으로 소속 정당은 제각기 다르지만, 같은 목소리를 내 왔다. 때문에 8 대 1로 구성된 윤리특위의 형태를 두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9명의 위원을 선출한 기준’에 대해 영등포구의회 측은 “본회의가 정회됐을 때 의원들끼리 충분히 의견을 나눈 다음에 (9명을) 선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의원은 “충분한 의견? 그건 아닌 것 같다. 윤준용 의장과 몇몇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것”이라며 “이건 좀 불합리하지 않으냐. 들리는 바로는 여기에 불만 있는 의원들이 의장실에 찾아가서 시정을 요구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준용 의장에게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지난 3월 한 차례 소란과 함께 자동 산회로 무산됐던 윤리특위 구성이 가까스로 이번 본회의에서 통과됐으나, 기울어진 운동장과 다름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지방 의회에는 같은 의원들끼리 윤리특위에서 ‘솜방망이’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 다수당과 소수당 또는 정당을 떠나 서로 손잡고 세력을 형성하면 그때부터는 투명한 징계가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
이 이사장은 이어 “당리당략 또는 특정 세력에 따라 징계 절차 등이 한쪽으로 힘이 쏠리기도 하고 처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 A 시의회 같은 경우 의원들끼리 싸움이 심했다. 몇몇 의원들이 같은 이유로 윤리특위에 회부됐는데 누군가는 제명을 당하고, 누군가는 아무런 처분을 안 받았다”며 “행정안전부 또한 지방분권 등의 이유로 개입하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의회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되는 일종의 윤리배심원 등을 만들어야 한다.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을 통해 의견을 모아 권고해야 하며 이 같은 보완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