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은 이번 U-20 월드컵 준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이강인. 대한민국 최초 FIFA 주관 남자 대회 준우승 주역이다. 결승전까지 7경기에 모두 나서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회에서 가장 빛난 별에게 주어지는 골든볼(MVP)도 그의 몫이었다. 2001년 2월생으로 전국민이 축구에 열광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두 돌도 지나지 않았던 이강인은 현재 18세 소년으로 성장해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이목을 축구 경기로 이끌었다. 우리는 왜 이강인에 열광하고 있을까.
이강인은 ‘날아라 슛돌이’ 출연 외에도 축구 스타 박지성과 함께 CF 촬영에 나서기도 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이강인은 인기 TV예능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한 바 있다. 축구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이 프로그램은 1편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로 제작됐다.
출연진의 캐릭터에 초점이 맞춰졌던 시리즈 초반보다 이강인이 출연한 3기에선 축구가 중심이 됐다. 자연스레 유소년 실력자들이 모인 ‘슛돌이 팀’은 연전연승을 거뒀고, 그 중심에는 이강인이 있었다. 이강인은 주장 완장을 차고 가장 돋보이는 기량을 선보였다. 당시 유상철 감독의 “이미 기술은 성인 수준”이라는 평가는 이강인의 유명세를 더 빛나게 했다.
슛돌이 이후로도 이강인은 종종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췄다. 당대 최고 축구 스타인 박지성과 함께 정유회사 광고에 나섰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영재의 비법’을 파고드는 프로그램에서는 기술뿐 아니라 폐활량 테스트 등을 통해 체력까지 타고났음을 자랑하기도 했다.
#전격 스페인 진출
TV에서 소식을 전하던 이강인은 2011년 스페인 명문 클럽 발렌시아 CF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이후 알레빈, 인판틸, 카데테 등 스페인 시스템에 따라 단계별 유소년팀을 거쳤다. 소속팀뿐만 아니라 거주하고 있는 발렌시아 주 유소년 대표팀에 선발돼 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유소년 대회에서 맹활약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를 무너뜨리거나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드는 영상이 온라인으로 퍼졌다. 자주 공개되지 않은 유소년 경기였기에 팬들의 갈증은 더했다.
이따금씩 들러오는 이강인의 활약 소식에 국내 여론도 요동쳤다. 어린 선수의 가능성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성공에 대한 섣부른 예측을 자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강인은 유럽 1군무대에서 뛴 최연소 한국인 선수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연합뉴스
2017년 연말에는 기대하던 프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소년팀(발렌시아 후베닐) 소속이었지만 기량을 인정받고 발렌시아 B팀(2군) 경기에 콜업돼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나이는 만 16세에 불과했다.
다음 시즌인 2018-2019 시즌을 앞두고선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군과 함께 훈련을 받고 경기를 치렀다. 비록 프리시즌 경기였지만 선발로 나서며 골을 기록하기도했다.
#‘당당한 프리메라리거’ 정식 프로계약까지
이강인은 구단의 특별 관리 아래 2018-2019 시즌을 시작했다. 여전히 유소년팀에서 뛸 나이였지만 2군 프로팀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경기 수준이 높은 유럽축구연맹(UEFA) 유스리그에선 유소년팀 소속으로 유럽 전역의 유망주들과 경쟁했다.
시즌 초반 일정이 지나자 1군에서 다시 그를 찾았다. 1군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틈을 타 이강인이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31일, 국내 컵대회에 나서며 꿈에 그리던 1군 데뷔 경기를 치렀다. 발렌시아 최연소 데뷔 외국인 선수 기록이었다.
이후 컵대회에 꾸준히 나섰고, 2019년 들어서는 벤치만 지키던 리그 경기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나이임에도 1군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자 구단은 이강인과 정식 1군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16번. 정식 1군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오직 1번부터 25번까지만을 달 수 있는 스페인 무대에서 이는 특별한 번호였다.
1군 계약 과정에서는 8000만 유로(약 1070억 원)의 바이아웃 조항이 화제가 됐다. 발렌시아 측이 그만큼 이강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한화 1000억여 원을 지불하면 발렌시아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강인의 이적을 타진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태극마크 달게 된 이강인
2017년에는 국내에서도 그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2019 U-20 월드컵을 바라보고 준비하던 정정용 감독은 1999년생이 주축이 된 팀에 2001년생 이강인을 전격적으로 불러들였다.
처음으로 연령별 대표팀에 발탁돼 연습경기를 뛰던 지난 2017년 5월. 사진=대한축구협회
만 16세 어린 선수였기에 큰 부담을 지우진 않았다. 연습 경기를 통해 기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게 했고 실전에서도 교체로 경기에 투입하며 분위기를 익히게 했다. 이강인은 곧 팀 주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역 예선전에도 나서며 이번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일조하기도 했다.
2018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린 친선대회인 툴롱컵은 이강인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무대가 됐다. 대다수의 참가국들이 21세 팀으로 나선 대회에 한국은 19세 팀을 파견했다. 그 중에서도 어린 나이였던 이강인은 팀이 기록한 3골 중 2골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연령별 대표팀, 발렌시아에서의 활약이 이어지자 성인 대표팀에서도 그를 주목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19년 3월 이강인을 A대표팀으로 불러 들였다. 비록 A매치 데뷔전은 불발됐지만 벤투 감독은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추후 A대표팀에 재소집돼 경기에서 뛸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 같은 길을 걸어 온 이강인에 대해 “‘잘한다’는 표현 외에 더 수식할 말이 없다. 골든볼은 아무나 받나”라며 웃었다. 이어 “공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한 부분 외에도 4강전 어시스트 장면을 보면 경기를 운영하는 센스도 있다. 이런 센스는 타고난 부분도 많다고 봐야 한다”면서 “어린 선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이강인은 특별하다. 향후에도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이강인, ‘축구 천재’ 마라도나·메시 소환한 사연 대한민국은 2019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예상치 못한 선전에 해외에서도 태극 전사들을 주목했다. 각각 U-20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 수상을 경험한 메시와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선수와 감독으로도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U-20 월드컵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둬 온 아르헨티나(6회 우승)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특히 최준과 이강인이 합작한 골로 1-0 승리를 거둔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 시선을 모았다.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에선 이날 한국의 결승골에 자국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클라우디오 카니자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언급했다. 이강인의 패스를 받아 마무리한 최준의 골이 이들이 만들어낸 골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2-1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역전을 만들어낸 골 최준-이강인의 콤비플레이와 흡사했다. 중원 지역에서 프리킥을 얻어냈고, 이를 마라도나가 차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대가 전열을 정비하지 못한 틈을 타 왼쪽 측면으로 빠져있던 카니자에게 재빨리 연결했고, 대각선 위치에서 휘어져 들어가는 슈팅이 골망을 흔들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와 맞붙기도 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난 대표팀은 2-1 승리로 이번 월드컵 신화에 발판을 놨다. 4강전 결승골로도 소환됐던 불세출의 스타 마라도나는 1979 U-20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이후 보카주니어스, 바르셀로나, 나폴리 등 소속팀마다 우승컵을 안겼고 아르헨티나 대표로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05 U-20 월드컵에서 우승, 골든슈(득점왕), 골든볼을 휩쓸었던 리오넬 메시 또한 아르헨티나와 U-20 월드컵이 낳은 당대 최고 스타다. 메시 또한 마라도나 등과 함께 축구사 역대 최고 선수를 논하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가 들어올린 트로피만 수십 개에 이른다. 이강인의 활약에 마라도나와 메시가 소환되는 이유는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에 있다. 이들 모두 최전방과 2선을 넘나들며 공격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 크지 않은 체구로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날카로운 킥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셋 모두 왼발잡이이기도 하다. 이강인은 아직 프로 1군계약을 맺은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은 18세 유망주다. 하지만 그가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어린 시절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이번 대회에서의 활약만으로도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기대감을 부풀게 만들고 있는 이강인이다. 김상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