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선 불법적인 댓글 조작 움직임이 또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인다. 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댓글부대가 떴다.”
최근 여의도를 중심으로 은밀히 도는 이야기다. 돈을 받고 그 대가로 온라인 사이트 등에 댓글을 달아주는 세력이 활동하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수소문 끝에 실제 댓글을 조작하고 있다는 A 씨와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용산의 한 오피스텔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에는 영문 약자로 된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에는 직원 두 명이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물었다. A 씨는 “원래 여론조사나 정책개발과 같은 일도 맡는데 지금은 인터넷 댓글 작업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은 대목이다. 요즘엔 댓글 다는 게 워낙 감시가 심해져서 예전에 비해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곳이 제법 있고, 앞으론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현재 우리는 한 전직 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아 그와 관련된 댓글을 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과 직원이 작성한 실제 댓글을 보여줬다. 일을 맡긴 전직 의원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이런 정치인이 국회에 진출해야죠” “훈훈한 소식이네요” “OOO와는 비교되네요”와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서 OOO는 전직 의원이 출마할 지역구의 현역 의원이었다. 또한 이 기사 링크를 지인 SNS에 올리기도 했다. A 씨는 “우호적인 댓글도 있지만 때로는 경쟁자를 비판하거나 안 좋은 소문들을 쓰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 대가로 받는 돈은 한 달에 400만 원. A 씨는 “사무실 임대료 150만 원, 직원들 월급 500만 원, 그밖에 비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은 적자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주문(이라는 표현을 썼다)이 들어오고 있다. 누군지 밝히기 어렵지만 현역 의원도 포함됐다.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접어들면 수익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실제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댓글 조작을 부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
B 씨는 댓글 조작으로 인해 한 차례 사법처리를 받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다시 업계에 뛰어들었다. B 씨를 영등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앞에서 만났다. B 씨는 “단속이 워낙 심해졌지만 그만큼 댓글 조작도 교묘해졌다. 이제는 소규모로 움직인다. 예전과 같은 댓글부대는 없다고 보면 된다. 나를 포함해 3명이 댓글을 달고 있다. 지금 두 명의 정치인으로부터 일을 맡은 상황”이라면서 “총선에선 매크로 같은 것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포털이나 SNS 등에 꾸준히 댓글을 달면 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B 씨의 말이다.
“댓글 조작이 엄연한 불법이긴 하지만 총선과 같은 큰 선거를 앞두고는 성행할 수밖에 없다. 왜냐고?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만 안 했다가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특히 현역 의원이 아닌 정치인들은 선거 운동 등에 있어서 제약이 많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를 찾는 정치인들 대부분이 전직이거나 신인들이다. 지역 정가에선 입소문이 무서운 법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요청이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계획이다.”
이들이 털어놓은 댓글 조작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주체,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형법상 업무방해, 정보통신망법 등이 적용된다. 공무원이 개입됐다면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2012년 국정원 댓글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정원뿐 아니라 여러 국가 기관이 이른바 ‘댓글 부대’를 운용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매크로를 활용해 댓글을 달아 재판을 받고 있는 ‘드루킹’ 김동원 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 조작은 은밀하게 이뤄져왔다. 2016년 총선 당시 여의도 일대엔 10여 개 업체가 경쟁적으로 조작된 댓글을 양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드루킹 등 댓글 조작 사건이 연이어 불거지자 수사당국이 단속을 강화했고, 업계 역시 초토화됐다. 그런데 총선이 다가오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법임을 알고도 댓글 조작에 가담한 업체들도 문제지만 정치권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현직 의원들 역시 이러한 비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민주당 의원은 “솔직히 지난 총선 때 댓글 조작 업체에 돈을 주고 도움을 받았던 의원들을 알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하더라”면서 “우리가 국정원 댓글부대를 강하게 공격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총선에서 패했던 전직 의원은 “인터넷에서 근거 없는 댓글들이 꾸준히 올라왔다. 알고 보니 상대편 후보가 댓글부대를 동원한 것이었다. 고소했지만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돈을 주고서라도 댓글을 달 걸 그랬다”라고 했다.
앞서의 민주당 의원도 “불법인 줄 알면서도 댓글 조작 유혹에 넘어가는 이들이 많다. 일단 당선부터 되고 보자는 마음 때문”이라면서 “최근 정치권 주변에서 조직적으로 댓글을 다는 업체들이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댓글 조작과 관련된 법안이나 처벌 규정이 지금으로선 미비한 상황이다. 하지만 입법이 지지부진하다. 아마도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댓글 조작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