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회장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하자 나가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사진 박정훈 기자
한기총은 보수 성향 기독교 단체로 과거에도 일정부분 정치에 개입하긴 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단식투쟁까지 벌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기총이 정치세력화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기총 측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한기총 측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자신들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 질문은 받지 않았다. 질문을 하려던 기자들은 쫓겨났고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은 한기총 인사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청와대 앞 한기총 단식농성장.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한기총 관계자는 “우리도 처음엔 전 회장님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순수하게 국가를 위해 하시는 일이더라”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문 대통령이 하야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 하야 요구 후 한기총은 심각한 내부갈등에 휩싸였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한기총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도 최근 한기총 회비 납부를 중단했다. 두 교단은 한기총 내 마지막 남은 대형교단들이었다.
전 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한기총 비대위 측 관계자는 “전 회장이 원래 기독자유당이란 당에서 활동하는 등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전 회장이 올해 1월 한기총 회장에 당선됐다. 선거 과정에서도 당선되면 한기총을 정치에 이용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면서 “선거 때는 한기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더니 당선되자마자 기독자유당과 MOU를 맺더라. 기독자유당이 행사를 하면 한기총 회원들에게 참여하라고 강요했다. 전 회장이 애초부터 한기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회장 선거에 나온 것 같다. 한기총 비대위가 출범한 이유 중 하나가 전 회장이 한기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공개적으로 기독자유당 국회 진입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전 회장은 17대 총선부터 기독 정당을 국회에 입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기독자유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서 2.63%의 지지율을 얻었다. 원외 정당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지지율이었다. 지지율 3%만 넘으면 비례대표 1석을 가져갈 수 있다. 기독자유당은 내년 총선에서 100만 표 이상을 얻어 비례대표 4명을 국회에 입성시킨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전 목사가 갑자기 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내년 총선에서 보수 기독교계를 결집시키기 위한 노이즈마케팅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기독교계 관계자는 “최근 보수 기독교계에서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낙태죄 폐지를 추진한다든지 여권 인사들이 동성애 축제에 간다든지 보수 기독교계를 자극할 만한 이슈가 많았다. 이런 분위기를 읽고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 같다”면서 “이제 전광훈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노이즈마케팅에 성공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특히 전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친밀한 관계다. 전 회장은 황 대표가 한기총을 방문하자 “제 개인적 욕심으로는 (황 대표가)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전 회장은 황 대표가 자신에게 장관 자리를 제의했다고도 주장했다.
앞서의 기독교계 관계자는 “전 회장은 평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신과 친밀한 관계인 황교안 대표가 최근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올랐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전 회장이 문 대통령 하야 투쟁에 나선 것은 ‘황교안 대통령 만들기 플랜’의 일환”이라고 했다.
보수 기독교계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후보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기독교계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전 회장이 다시 기독교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황 대표가 결례 논란에도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합장을 하지 않거나 동성애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보수 기독교계 지지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전 회장이 담임목사로 있는 사랑제일교회에는 최근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야권 정치인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유력 정치인들이 사랑제일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자 전 회장을 연결고리로 황 대표에게 줄을 대기 위함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사랑제일교회를 직접 찾아가봤다. 유력 정치인들이 멀리서 찾아올 만한 대형교회는 아니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규모의 교회였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그럼에도 사랑제일교회에는 지역 주민보다 외지 교인이 더 많다고 한다.
전광훈 회장이 담임목사로 있는 사랑제일교회.
사랑제일교회 건물 내부에는 기독자유당 사무실도 있었다. 기독자유당 사람들은 모두 청와대 앞 단식투쟁을 지원하러 갔다고 했다. 기독자유당과 전 회장은 사실상 한 몸이었다.
사랑제일교회에 다니고 있는 김문수 전 지사의 입장을 들어봤다. 김 전 지사는 기독자유당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하는 등 전 회장과 밀접한 사이다. 전 회장은 내년 총선에서 김 전 지사에게 비례대표 1번을 주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사랑제일교회 내부에 있는 기독자유당 사무실.
전 회장이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을 주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발언을 한지도 몰랐다. 준다고 해도 전혀 받을 생각이 없다. 덕담 차원에서 한 말 아니겠나”라고 했다.
다만 김 전 지사는 “보수통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독자유당도 통합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고 했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전 회장이 기독자유당 세력을 키워 보수통합에 동참한 후 지분을 요구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전 회장이 과거부터 비슷한 주장을 해온 인물이라 최근 행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전 회장이 한기총 회장 자격으로 발언을 해 논란이 커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 회장은 과거에도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문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전광훈은 누구? “속옷 내리면 내 신자” 빤스목사 오명 전광훈 한기총 회장은 과거부터 짙은 보수색을 드러내온 인물이다. 전 회장은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제작위원회’ 대표회장이며,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분노’라는 책을 발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연설을 듣고 안 우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아니다” “세월호 사고 난 건 좌파, 종북들만 좋아한다. 추도식 한다고 나와서 막 기뻐 뛰고 난리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었다. 특히 지난 2005년 한 집회에서는 “여신도가 나를 위해 속옷을 내리면 내 신자고 그렇지 않으면 내 교인이 아니다”라고 발언해 이른바 ‘빤스 목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장로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고 발언하는 등 정치에 직접 개입해왔다. 기독자유당을 만든 후에는 “기독자유당이 국회에 입성하면 동성애자들을 격리하는 법을 만들겠다” “동성애를 국가질병으로 분류하고, 메르스나 한센병처럼 격리 치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논란이 된 바 있다. 김명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