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애경그룹 본사. 연합뉴스
애경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애경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업계 1위 제주항공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설립한 지 불과 6년 만에 흑자구조로 성장시키면서 탄탄한 경영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까지 인수하면 북미·유럽·중국 등 운수권까지 확보해 단숨에 국내 최대 항공사업자로 올라설 수 있다.
사실 애경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소식이 전해진 초기부터 앞의 대기업들과 함께 인수 후보군에 포함됐지만 애경그룹의 인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애경이 과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고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의심스러워 하는 시선이 많았다.
채권단이 정한 매각방식은 구주매각 및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다. 매각 대상은 금호산업 등이 보유한 지분 33.49%다.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매각 예상가를 최소 1조 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애경그룹이 1조 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그룹 지주사는 지난해 매출 3조 7112억 원에 영업이익 2697억 원, 당기순이익 2066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1분기 기준 유동자산은 1조 3833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재무 상황만 놓고 보면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애경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재무적투자자(FI) 등과 컨소시엄 구성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코웨이나 롯데카드 등 최근 기업과 사모펀드가 손을 잡고 인수전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사모펀드가 돈을 투자하고, 경영 기업에 맡기는 구조인데, 아시아나항공 같은 이름 있는 회사에 뛰어들려는 투자사들은 꽤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표면적인 인수 가격과 조건들 외에 아시아나항공을 품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9조 7032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894.99%에 육박한다. 이어 지난해 말 기준 총 차입금은 3조 4400억 원이고,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도 1조 3200억 원이다. 애경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관련 우려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의 실제 부채는 약 3조 7000억 원 수준이며, 이를 다 갚아야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갚고 나머지 부채는 안고 가면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의 비행기 모형. 연합뉴스
정작 애경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고개를 젓고 있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단지 인수에 대해 검토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증권을 인수주관사로 선정했다는 말에 대해 “삼성증권과 계약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같이 큰 인수건이 나오면 여러 금융사에서 연락이 오는데 삼성증권도 그중 하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호산업 측은 오는 6월 말 실사를 한 후 늦어도 7월 초에는 잠재 인수 후보들에 투자설명서를 배포하기로 했다. 이 경우 빠르면 8월 예비입찰을 진행해 오는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를 선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의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들이 다 부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애경그룹이 손을 들고 나선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며 ”투자설명서가 발송되는 7월까지는 현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애경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애경의 참여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애경그룹이 다른 대기업들처럼 아주 강하게 부인하지 않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LCC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 이왕 항공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크게 도약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며 “설사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데, 실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항공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SK·한화·롯데, 대기업은 정말 인수 참여 안 하나 당초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는 SK를 비롯해 한화, 롯데, CJ 등 국내 굵직한 대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인수 의향에 대해 하나같이 강한 부정의 뜻을 내비쳤다. SK그룹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직접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향이 100% 없다”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6개월 넘게 공을 들이며 직접 챙긴 롯데카드 인수 본입찰에서 마감 하루 전 발을 빼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화그룹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롯데카드 인수전을 위해 마련된 자금은 한화생명에서 나왔는데 금산분리법에 따라 이 돈을 아시아나항공에 활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화그룹의 항공기 엔진부품 생산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0일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항공엔진부품 전문업체 ‘이닥(EDAC)’사 지분 100%를 3억 달러(약 3500억 원)에 인수했다.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은 “이번 이닥 인수를 계기로 엔진부품 사업 규모를 지속 확대해 ‘항공기 엔진 글로벌 No.1 파트너’ 비전을 달성할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검토한 적도 없고,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영위하는 항공엔진과 항공기계 등 첨단기술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인수전에 들어서면 대기업들도 하나둘 손을 들고 나서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다. 지금은 아시아나항공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아 흥행을 떨어뜨려 인수가를 낮추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인수전에 아직 나서지 않는 것은 가격 때문에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본게임에 들어서면 인수하려는 기업이 여럿 나타날 것”이라며 “일각에서는 몇몇 대기업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산업은행 등 정부에서 도와달라 손을 내밀면 인수하려고 나설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