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둘러싸고 의문스러운 거래가 포착됐다. 사진은 경남 의령군 정곡면에 위치한 호암 이병설천생 생가. 고성준 기자.
호암 생가의 등기부등본에는 지난 1월 10일자로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이재곤 제일병원 이사장에게 생가의 토지를 매입한 사실이 나와 있다. 홍 전 관장은 생가 부지 총 1907㎡(약 577평)와 생가 뒤편 산지 8175㎡(약 2471평)를 이 이사장에게 5억 원에 매입했다.
홍 전 관장과 이 이사장 간 매매가 발생한 까닭은 등기부등본상 호암 생가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호암 생가는 본래 고 이병철 회장의 친형 고 이병각 삼감유지 사장이 소유하다 손자인 이재곤 이사장에게 상속됐다. 이건희 회장은 2007년 이 이사장에게 생가 건물을 8억 9000만 원에 매입해 호암재단에 증여했다. 그러나 호암 생가 토지는 그대로 이 이사장 명의로 있었다.
토지와 건물의 주인이 다를 경우 토지 소유자는 지상권을 설정해 토지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호암재단 관계자는 “호암재단 자체가 이병철 선대회장님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고, 호암 생가 또한 이러한 취지로 운영되는 만큼 토지사용료를 따로 지불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홍 전 관장과 이 이사장 간 부동산 거래가 시세보다 높은 금액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호암 생가 인근 부동산시세를 보면 2018년 매매됐던 토지가 평당 25만 원, 2018년 경매로 낙찰된 토지가 평당 29만 원에 거래됐다”며 “생가 부지를 평당 30만 원으로 치더라도 1억 8000만 원에 미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만 “호암 생가라는 점과 뒤편의 산지 규모를 보면 매입 금액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의 호암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호암재단은 현재 호암 생가를 확장 운영할 계획이 없다. 또 홍 전 관장과 이 이사장 간 토지 매매가 이뤄진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간 토지사용료를 지급해오던 것도 아니어서 새삼스레 홍 전 이사장이 이 이사장에게 토지를 매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 이사장이 현재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면 홍 전 관장의 토지 매입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이 이사장이 이끄는 제일병원은 지난 4월 25일 경영난으로 회생절차에 돌입했으며, 이 이사장의 자택은 가압류된 상황이다. 제일병원 노조 한 관계자는 “이 이사장의 자택이 가압류된 것은 제일병원 상황과 무관하다”며 “이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거나 보증을 선 탓에 가압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홍 전 관장과 이 이사장 간 매매 거래가 발생한 시기와 이 이사장이 자택을 가압류당한 시기도 미묘하다. 공교롭게도 호암 생가 토지 매매가 이뤄진 지 불과 4일 뒤 이 이사장의 자택에 가압류 신청서가 접수됐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이 이사장 자택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지난 1월 22일 NH농협캐피탈주식회사로부터 공탁보증보험증권 1억 3500만 원의 담보로 자택을 가압류 당했다. HN농협캐피탈주식회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압류 신청서를 접수한 날짜는 지난 1월 14일이다.
앞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홍 전 관장이 호암 생가를 둘러싸고 불필요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정리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 관계자는 “홍 전 관장이 호암 생가 토지를 매입하지 않았더라면 이 이사장이 등기부상 소유권을 보유한 탓에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며 “가압류 전에 미리 처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제일병원, 임금체불도 모자라 ‘기부금’ 압력까지 의료계에서는 국내 최초 여성전문병원인 제일병원(제일의료재단)이 폐업 위기까지 치달은 배경에 이 이사장 일가의 전횡이 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의료노조 제일병원지부는 지난해 4월 이재곤 제일의료재단 이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또 최근에는 이 이사장 일가가 제일병원 내 진료센터 건물을 소유하고 제일병원에서 매년 20억 원이 넘는 임대료를 받아온 사실이 폭로됐다. 제일병원은 최근 회생절차에 돌입, 부동산 매각 입찰을 진행했으나 참여자가 없어 종료됐다. 제일병원 측은 부동산 매각 이후 경기도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잡고 있지만 노조 측은 병원이 건전한 인수처를 찾는 절차를 공개적으로 진행하지 않은 채 부동산 매각을 강행하는 것은 ‘먹튀’나 다름없다고 맞서고 있다. 현금이 바닥난 병원이 부동산을 매각한다 하더라도 부채를 탕감하는 데 사용돼 병원 이전 및 운영에 활용할 자금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직원 임금을 장기 체불 중인 제일병원이 직원들에게 오히려 임금을 기부하도록 권유한 사실도 확인됐다. 병원은 임직원들에게 ‘병원회생을 위한 동의서’를 제시했다. 동의서에는 “병원의 경영 정상화와 회생을 위해 자발적 의사에 따라 아래와 같이 기부하며, 향후 이와 관련된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합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기부금액은 ‘2019년 4월 급여 기준의 3개월분’이다. 제일병원 노조 한 관계자는 “병원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미 직원들의 임금 및 복지 축소를 받아갔으나 또 다시 체불임금을 기부금 형식으로 내놓기를 강요하고 있다”며 “자발적 기부라고 하지만 불참시 불이익을 예고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제일병원 관계자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