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기 크리에이터 ‘온도’ 브이로그 화면 갈무리
[일요신문] 2019년. 바야흐로 ‘브이로그 시대’다.
직장인 A 씨는 주마다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린다. 브이로그엔 A 씨의 출근길, 맛집투어, 여행기 등 일상적인 내용이 담긴다. 브이로그 촬영과 편집은 모두 A 씨의 몫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브이로그 촬영·편집을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A 씨는 브이로그 업로드를 멈출 생각이 없다. 브이로그가 A 씨의 고단한 일상에 특별함을 더하는 까닭이다.
브이로그(V-log)는 ‘비디오+블로그’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을 강타했던 ‘블로그 열풍’은 브이로그로 이어졌다. 브이로그는 ‘영상으로 더욱 생동감 넘치는 일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많은 누리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브이로그는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투영한다. 장르는 다양하다. ‘직장인의 하루’, ‘시험기간 밀착취재기’, ‘아르바이트 이모저모’, ‘이사가는 길’ 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브이로그 주제로 활용 가능하다. 브이로그 제작자들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주제로 특별함을 생산해 낸다.
브이로그에 열광하는 주 타깃은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는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한 2~30대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겐 글보다 영상이 익숙하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는 ‘영상 일기’를 제작한다.
이들은 일기를 꽁꽁 숨기지도 않는다. 젊은이들은 영상으로 기록한 ‘신개념 일기’를 모두에게 열어놓는다. 브이로그 시청자들은 제작자의 평범한 일상을 감상한다.
사진=문보영 시인의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 갈무리.
문보영 시인은 브이로그를 “일기의 확장판”이라고 표현했다. 문 씨는 “대중에겐 일기 자아가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문 씨 역시 브이로그 제작자다. 문 씨는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형태는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같아요. 일기와 브이로그엔 공통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담겨 있습니다. 일상을 기록하면서 말이죠. 저는 그런 욕구를 ‘일기 자아’라고 부르곤 합니다.” 문 씨의 설명이다.
문 씨가 설명한 ‘일기 자아’를 풀어내는 대표적인 방법은 글이다. 그러나 이제 대세는 ‘영상’이다. 직장인 크리에이터 B 씨는 “영상은 글보다 생동감 있다. 이야기를 전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B 씨는 “생동감을 극대화하려면, 속도감 있는 편집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브이로그 편집을 마친 B 씨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B 씨는 다시 1분 단위로 영상을 자른다. 소셜미디어에 브이로그를 공유하려는 목적이다. 브이로그는 주제만 다양한 것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다양한 플랫폼에 자신의 브이로그를 공유한다.
크리에이터 ‘온도’는 온라인상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온도’는 브이로그 장르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크리에이터 중 하나다. ‘온도’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58만 명을 넘어섰다. ‘온도’는 주로 소소한 자취생활 브이로그를 업로드한다.
‘온도’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20대 여성 C 씨는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한 영상이 개인적인 취향을 저격했다”면서 “집, 물건, 일상 영상에 등장하는 요소 하나하나에 시선이 쏠린다. ‘온도’의 생활엔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브이로그 열풍’의 비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브이로그의 핵심은 ‘공감’이다. 20대 남성 D 씨는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과 비슷해 보이면, 왠지 모를 마음의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D 씨는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브이로그를 통해 친구와 함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며 브이로그의 매력을 설명했다. 어느덧 브이로그는 젊은이들의 ‘좋은 친구’로 자리매김했다.
브이로그 콘텐츠를 ‘좋은 친구’로 느끼게 해주는 열쇠는 따로 있다. 바로 댓글이다. 브이로그 콘텐츠에선 댓글을 통해 활발한 소통이 이뤄진다. 시청자들은 댓글 통해 제작자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여기다 브이로그에 등장한 생활용품, 소품 관련 정보가 교환되는 경우도 있다. 댓글 소통은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한 브이로그 크리에이터는 “댓글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화장품 정보를 공유한다”면서 “그럴 때면 정말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시시각각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이로그를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부분이에요. 제가 브이로그를 꾸준히 업로드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시청자입니다.” 브이로그 크리에이터의 말이다.
배우 강동원이 ‘브이로그 열풍’에 가세했다. 사진=모노튜브 갈무리
브이로그는 대세다. 최근엔 연예인들까지도 ‘브이로그 열풍’에 가세했다. 강동원, 신세경 등 유명 연예인의 브이로그는 단기간에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평소 연예인 브이로그를 즐겨보는 정민경(26) 씨는 “유명 스타가 만든 브이로그를 보면, 연예인의 일상을 몰래 엿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연예인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공감할 만한 구석이 많아 신선하다. 유명인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느껴져 연예인의 브이로그를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상 일기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오히려 제작자가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유용한 정보가 브이로그의 핵심은 아니다. 브이로그의 핵심은 소통과 공감이다. ‘별거 아닌 얘기’를 특별하게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창이 바로 브이로그다.” 브이로그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시인 문보영 씨는 브이로그를 이렇게 정의했다.
문 씨는 “사람이 사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힘이 솟아날 때가 있다. 브이로그는 누군가의 삶을 함께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함께 삶을 견디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브이로그 열풍’의 본질은 사람이었다. 21세기 젊은이들은 소통과 공감에 목말라 있다. 그 목마름을 축여줄 매개체로 브이로그가 떠오르고 있다. 어쩌면 브이로그는 ‘문화 대세’라기보다 21세기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활양식일지도 모른다.
김보현 인턴기자 qhgus39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