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2일자 시사 주간지 ‘타임’ 표지.
이 시기 잭 니콜슨이 주목 받게 된 계기는 영화 ‘차이나타운’(1974)이었다.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이 영화는 6월 20일에 개봉되어 흥행과 함께 큰 주목을 받으며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사립탐정 제이크 지티스 역을 맡아 사건 하나를 맡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에블린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양부와 근친상간으로 딸을 낳았고, 그 짐승 같은 양부는 에블린의 딸마저 소유하려 한다. 딸이 곧 여동생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며, 사립탐정 제이크는 이 끔찍한 가족사를 모두 알게 된다.
어쩌면 ‘차이나타운’은 잭 니콜슨에게 어떤 계시와도 같은 영화였을지 모른다. ‘타임’에서 알고도 함구했던 잭 니콜슨의 개인사는 결국 3년 후인 1977년 ‘퍼레이드’라는 잡지의 칼럼니스트 월터 스콧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내용은 ‘차이나타운’을 너무나 선명하게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잭 니콜슨에 대해 알려진 가족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937년 뉴저지의 넵튠 시티에서 태어난 잭 니콜슨의 아버지 존 니콜슨은 백화점에서 쇼윈도를 장식하는 일을 했고 어머니 에델은 헤어드레서였다. 그에겐 18살 많은 누나 준 니콜슨이 있었고, 그 아래 둘째 누나 로레인이 있었다.
준 니콜슨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전말을 알기 위해선 잭 니콜슨이 태어나기 전인, 1935년 뉴저지로 시공간을 되돌려야 한다. 잭 니콜슨의 엄마인 준 니콜슨은 엔터테이너로서 재능을 지닌, 꿈 많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준은 1935년에 뉴저지를 떠나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댄서로 경력을 시작한다. 무대 예명은 ‘준 닐슨’. 이때 댄스 스테이지를 기획하던 쇼맨 도널드 푸르칠로를 만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그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준 니콜슨과 연인이 된다. 한편 준의 매니저였던 에디 킹도 그녀의 남자친구 중 한 명이었다.
준 니콜슨은 곧 뉴욕 생활을 접어야 했다.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 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건, 사회적 매장을 의미했다. 준의 부모는 그녀에게 뉴욕에서 아이를 낳은 후 고향인 뉴저지로 오라고 했다. 이웃과 친척에서 그녀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18세에 아이를 낳았고, 잭 니콜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자를 양자로 들였다. 그렇게 준은 아들의 누나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잭 니콜슨을 단 한 번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잭 니콜슨의 나이는 40세. 영화 같은 가족사였고, 그의 팬들은 적잖이 놀랐지만, 니콜슨 자신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머니와 조부모 모두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기 때문이어서 충격이 크진 않았던 듯. 게다가 그는 3년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담담할 수 있었다.
각종 연예 저널에서 니콜슨에게 심정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우 드라마틱한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트라우마를 줄 만한 것은 아니다. 난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사람이니까.” 그러면서 덧붙였다. “사실 이 일로 난 뭔가 더 명확해진 느낌이다. 감사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다. 낙태에 대한 입장이다. 나처럼 태어난 상황에선 낙태를 반대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낙태 찬성론자다.”
한편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한때 준 니콜슨과 사귀었던 도널드 푸르칠로가 자신이 잭 니콜슨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잭 니콜슨의 전기를 쓴 작가 패트릭 맥길리건은 매니저였던 에디 킹이 아버지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잭 니콜슨은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