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7년 12월3일 임창열 부총리와 캉드쉬 IMF 총재가 IMF구제금융 지원 합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지난 3월7일 여의도 증권사 객장에 몰려든 투자자들 사이에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날 오전 거래소 주가는 개장 직후부터 급락세를 보이면서 5백40선으로 추락했다. 패닉(공황) 상태를 보여온 코스닥 시장은 사상 최저인 37선으로 밀리면서 투자자들을 수렁에 빠트렸다.
‘5월이 위험하다.’
한국 경제계에 ‘5월 위기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경제 위기설’은 지난 1997년 기아 부도 사태 직후 터져나왔던 ‘12월 위기설’ 이후 6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 당시 12월 위기설은 외환위기 사태로 이어지면서 끝내 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경제계를 초긴장시키고 있는 5월 위기설은 금융시장이 동요하면서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증시가 요동을 치고, 금리가 급상승할 조짐도 5월 위기설의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5월 위기설의 진상을 긴급 점검한다.
경제계를 강타하고 있는 5월 위기설의 가장 큰 배경은 현재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북핵사태가 5월에 정점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LG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아직은 북-미간에 신경전 수준인 북핵사태가 5월부터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긴장관계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 시나리오는 3월 중순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면 5월 이전에 종전으로 접어들고, 그 이후부터는 한반도 핵문제로 미국의 타깃이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가설에 근거한다.
일본계 경제연구소의 국제관계 전문가도 “이라크전 이후 국제사회의 눈길은 북한 핵문제로 집중될 것”이라며 “이럴 경우 상황에 따라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 정권-미국 자본 충돌설
5월 위기설의 또 다른 근거는 노 정권 출범 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이탈현상이 5월을 전후해 최고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 지난해까지 4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던 외국계 투자자들이 올 들어 2개월 동안 5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탈한국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3월 들어서도 외국인의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주가는 연일 미끄럼을 타면서 3월10일 현재 544(종가)로 추락했다.
주목할 부분은 주식시장을 빠져나가는 외국계 자본의 대부분이 미국계 투자자라는 점. 쟈딘플레밍 애널리스트는 “지난 2월 중순부터 미국계 펀드의 주식매도세가 대폭 강화됐다”고 전했다.
증권시장에서는 미국계 자본의 이탈배경에 대해 ‘경제적 이유’보다는 ‘경제 외적 이유’로 보고 있다. 미국의 신정부 견제 차원에서 길들이기를 한다는 얘기다.
지난 1996년 동남아 외환위기 사태의 핵이었던 말레이시아의 당시 마하티르 수상은 “미국 정부가 핫머니를 동원해 동남아 국가들을 길들이고 있다”며 거세게 비난한 적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가계대출 규모는 주택담보대출 1백32조원을 포함해 총 3백56조원.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말의 2백74조원에 비해 30% 가까운 82조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핵심은 가계대출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개인신용불량자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 금융권이 파악하고 있는 신용불량자수는 3월 현재 3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2천8백만 명임을 감안하면 9명 중 1명이 개인파산 상태인 셈.
가계대출 문제가 5월을 전후해 경제상황을 위기에 빠트릴 것으로 보는 것은 가계대출금 중 5월 만기가 전체의 25%를 넘기 때문. 한은 통계에 의하면 가계대출(주택담보 제외) 중 5월10일~27일 사이에 몰린 단기 대출금은 4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핵사태로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차입하는 외평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어 자칫 시중금리까지 오르면 위기상황은 최악의 국면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코스닥 폐지설
5월 위기설의 또 다른 근거로 꼽히고 있는 것은 코스닥 지수가 사상 최저치를 연일 경신하면서 급락하고 있는 코스닥 주식시장의 폐지설이다.
코스닥 전문 애널리스트들조차 “현재의 코스닥 시장은 이미 시장 자생력을 완전 상실한 상태”라며 “코스닥의 존폐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96년 7월 첫 출범한 코스닥은 IMF를 거치면서 일부 투자자들에게 대박의 꿈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시장 불안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출범 7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코스닥 폐지설에 힘을 더해주는 것은 그나마 코스닥시장을 지탱하고 있던 KTF, 국민카드, LG카드, 강원랜드 등 시가총액 10위권에 드는 대형주들이 모두 코스닥을 떠나기로 한 부분. 여기에 코스닥시장의 기반세력인 통신, IT 관련 벤처 우량주들도 빠르면 상반기 중에 거래소 시장으로 옮길 뜻을 비쳐 존립근거가 사라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럴 경우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의 자금난을 초래,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