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유재명 투톱의 영화 ‘비스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단 한 순간도 안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선과 악은 뒤집히고, 중립은 배제되며, 예측은 무용하다. 특히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변화를 눈빛 하나 만으로 증명하는 이성민의 연기는 이번 작품에서 가히 절정에 달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영화 ‘비스트’ 스틸컷.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18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비스트’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이정호 감독은 “형사가 나오고, 형사가 발로 뛰면서 범인을 잡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기획을 했다는 차별점이 있다”며 “캐릭터 간 얽히고설킨 관계, 선택의 무게와 책임, 이런 부분을 다루면서 장르물로 쫄깃쫄깃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감독의 말대로 영화 ‘비스트’는 캐릭터 간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오감으로 좇는 데서부터 시작과 끝이 이어진다. 하나의 범죄를 두고 맞붙는 강력반 라이벌 한수(이성민 분)와 민태(유재명 분), 꼬리를 무는 또 다른 범죄로 파멸에 이르는 갈등을 빚게 되는 한수와 춘배(전혜진 분), 그리고 이들 주조연을 제외한 모든 등장 캐릭터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신뢰와 배신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하나의 실을 뽑아내더라도 곳곳에 얽힌 타래를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관객들은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자취를 다시 밟아가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곱씹는 것 외에는 스토리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영화 ‘비스트’ 스틸컷.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살인마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하게 된 강력반의 에이스 한수 역을 맡은 이성민은 “일반적인 형사물, 스릴러 무비와는 다르게 ‘범인을 잡는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보다 범인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두 형사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보신다면 영화를 다르게 즐길 수 있으실 것”이라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한수의 후배이자 파트너 형사인 ‘종찬’ 역의 최다니엘 역시 “영화 ‘비스트’는 어떤 게 선이고 악인지 쉽게 주어지는 영화라기보다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비슷한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고 회상하거나 앞으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선과 악의 정답이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영화 ‘비스트’에서는 한수의 변화를 그의 선택에 따라 처음부터 결말까지 긴 호흡으로, 그러나 매우 극적이며 뚜렷하게 보여준다. 반면 한수의 라이벌이면서 그의 그늘 아래 있다는 열등감을 지닌 유재명의 캐릭터 ‘민태’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첫 관람은 한수에 초점을 맞추고, 두 번째 관람에서 민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다시 보게 된다면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비스트’ 스틸컷.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이처럼 남성 투톱 주연이며,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극중에서 가장 적은 분량으로 주연에 밀리지 않는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전혜진의 캐릭터 ‘춘배’다. 한수의 정보원이자 마약 브로커인 춘배의 등장은 한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점이기도 하다.
험한 배경을 둔 캐릭터이니만큼 춘배가 등장하는 씬은 대부분 ‘하드보일드’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그리 많지 않은 액션 씬 가운데서도 가장 강렬한 씬을 춘배가 차지했다. 특히 뒷골목에서 한수와 춘배가 맞붙는 씬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상적인 씬 가운데 하나다.
이성민은 전혜진과의 액션 씬을 회상하며 “(그 장면을 촬영하다가) 혜진 씨 머리를 제가 발로 차는 바람에 혜진 씨가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난감해하기도 했다.
영화 ‘비스트’ 스틸컷.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
이에 전혜진은 “저도 자존심이 있는데 울고 싶었겠나. 그런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 진짜 아팠나 보다”라면서도 “하지만 나중에 제가 벽돌로 복수했기 때문에 괜찮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성민도 “제가 (전혜진의 남편인) 이선균을 때리는 드라마를 했었는데 혜진 씨 아들이 저를 많이 싫어했었다. 그런데 이젠 엄마까지…(때리게 됐다)”며 “애기들이 볼 영화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받아치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스릴러 무비이다 보니 영화 속에서는 폭력과 유혈 등 잔인하다고 볼 만한 장치들이 심심치 않게 튀어나온다. 그러나 이정호 감독은 “이것도 수위가 굉장히 줄어든 것”이라며 “저희는 이 영화를 ‘비스트 뽀로로 버전’이라고 부른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폭력을 지양하고자 했고 그렇게 (편집) 한 것 같은데 다소 온도차가 있었던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결국 판단은 영화를 관람한 관객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화 ‘비스트’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한수’(이성민 분)와 이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 분)’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 무비다. 살인마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쥔 마약 브로커 ‘춘배’(전혜진 분)와 패기 넘치는 후배 형사 ‘종찬’(최다니엘 분)으로 인해 두 형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이끌려 가면서 펼쳐지는 예측불허의 스토리는 관객들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예상을 깨트린다. 125분, 26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