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유력하다는 기사를 접한 한 부장검사가 전화를 해 대뜸 보인 반응이다. 이미 내부에서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될 것이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청와대에서,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강하게 윤석열 지검장을 차기 총장으로 희망했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는데, 전화를 받은 지 2주일이 지나 공개된 결론은 역시 윤석열이었다. 이미 예상됐던 결과에 서초동은 ‘전혀 놀라지 않는’ 분위기다. 되레 지난주부터 서초동(법조계) 총장이 아니라, 차기 서울중앙지검장이 누가 될지 흐름을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조직 중 하나인 검찰이 아니던가. 이제 검사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하에 얼마나 많은 간부급 검사들이 ‘검사장’이 될지, 차기 검사장들 중 자신과 근무 인연이 있는 선배 검사가 얼마나 될지 셈을 하기 급급하다. 특히 문무일 현 검찰총장(사법연수원 18기)보다 5기수나 내려간 신임 총장(윤석열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23기)이 임명된 탓에 차기 검사장 인사 규모는 평소(12~13자리)보다 최소 5~6자리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이종현 기자
# 윤석열 지검장은 알고 있었다?
“(총장 낙점을) 부정도, 인정도 하지 않더라.” (검사 출신 외교계 관계자)
차기 총장 후보자 발표 전인 지난 12~14일 사이, 윤 후보자와 만난 법조인의 설명이다. “총장으로 낙점됐다고 들었다”며 축하 인사에 말을 아낀 것. 법조인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름 자신감도 차 보였다”고 윤 후보자 반응을 묘사했다.
윤석열 후보자는 대형 비리사건 수사능력과 적폐청산 수사지휘 능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여당과 청와대 일각에서 김오수 법무부 차관 등 다른 후보자에 대한 추천 의사도 전달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2년 연속 재임하며 적폐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것을 높게 샀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의지는 굳건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무일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발하면서 윤석열 카드가 더 확실해졌다”며 “어제 이뤄진 박상기 장관의 보고도 절차 상 과정일 뿐 이미 지난주 윤 후보자에게 지명 사실이 통보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 대통령의 ‘입’ 고민정 대변인도 윤 후보자에 대해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음과 동시에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 쇄신 과제도 훌륭하게 완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적폐 청산 수사를 지속적으로 끌어감과 동시에, 검찰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다.
# 검찰 내 반응은? “윤석열 선배라면 인정”
그렇다면 검찰 내 반응은 어떨까. ‘최선의 선택’이라는 평이 나온다. 사시를 오래 준비해 동기들에 비해 나이(59세)가 3~4살 이상 많아 자애로운 ‘맏형’ 역할을 맡곤 했지만, 수사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라는 평이다. 특히 ‘정치적 후원’을 받아 잘나가는 검사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윤 후보자일 만큼, 강골 정통 특수통 검사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사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높으면서도, 일선 수사 검사들의 수사 흐름을 높게 평가하고 이에 손대지 않는 방식으로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며 “실제 변론에 들어가도 ‘후배가 큰 틀에서 해오는 결정에 문제가 없으면 바꾸지 않습니다’라고 딱 선을 긋더라. 수사를 직접 할 때는 그립을 세게 잡았다면, 리더가 된 뒤에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 후 4년 만에 국감 무대에 선 윤 후보자는 “저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검찰은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범죄를 수사하는 사람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사건 등) 수사 의뢰된 부분은 법에 따라 수사하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검사로서 자신의 신념을 밝힌 바 있다.
전자감독제도 시행 1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당시의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오른쪽 세번째)과 윤석열 후보자. 최준필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앞두고, 변화가 불가피한 검찰. 하지만 새로운 수장이 ‘정통 검사’인 만큼 청와대에도 검사의 의견을 확실하게 개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수도권 소재의 한 차장검사는 “언론에서는 검찰 개혁을 완수할 사람이라서 임명했다고 하지만, 검찰과 경찰 간 입장 차이를 가장 청와대에 잘 설명할 사람도 윤석열 후보자”라고 풀이했고, 검사 출신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도 SNS에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은 검찰의 독립을 확인하고 정권의 검찰에서 국민의 검찰로 갈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 검찰 내부는 줄서기 경쟁
하지만 검사들의 고민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인사’가 더 중요하다.
23기인 윤석열 후보자가 차기 총장으로 낙점되면서, 검찰총장 기수는 기존(문무일 검찰총장은 18기)에서 5기나 내려가게 됐다. 자연스레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 12명 안팎의 신임 검사장이 임명됐다면, 이번에는 18자리 정도까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원래는 총장 기준 선임 기수는 물론, 동기수도 모두 나가는 것이 관례인 검찰 조직. 하지만 그럴 경우 충격이 너무 크다. 사법연수원 19기부터 22기까지는 21명, 동기수(23기)까지 하면 30명(윤석열 후보자 제외)이다. 고검장, 검사장 급 52명 중 30명이 나가야 한다. 절반 이상의 수뇌부를 새로 선임하는 것은 지나친 변화다.
때문에 검찰 내에서는 윤 후보자 윗 기수(19~22기) 중 상당수를 내보내되, 일부는 남겨서 고검장이나 지방에 위치하는 검사장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검찰청에 기수가 높은 선배를 ‘간부’로 두고 보필하게 하는 것은 검찰에서 상상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
익명의 간부급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함께 후보로 올라간 고검장들은 물론, 고검장 대부분이 옷을 벗고 나가고 새롭게 세팅하는 방식으로 최대 18자리 정도까지 날 것으로 보인다”며 “사법연수원 27기까지 검사장으로 승진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몇몇 경쟁 후보들은 이미 주변에 “이번에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9~22기 중 얼마나 스스로 옷을 벗는지에 따라 검사장 인사 규모도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레 검찰 내에서는 줄서기가 시작됐다. 벌써부터 25기, 26기, 27기 중에 누가 ‘검사장’이 될지, 누가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3차장 등 요직에 가게 될지를 점치는 분위기다. 자신과 근무 인연이 있거나, 학연으로 얽힌 선배 검사가 ‘좋은 자리’에 가서 자신을 끌어줬으면 하는 셈을 하기 바쁘다.
앞선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윤 후보자가 특수통인 만큼 특수 수사 라인에 속한 검사들이 기대감이 상당하다. 벌써부터 몇몇 주요 보직군들의 후보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며 “과거에 비해 큰 규모의 검사장 인사부터 간부급 인사가 이뤄지는 2달 동안, 검찰의 큰 수사는 새로 시작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검찰 NO.2’ 서울중앙지검장에 윤대진 거론 윤석열 후보자가 검사장 승진과 함께 임명되면서 공식 서열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가장 핵심 권력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청와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소윤(小尹)’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겨 예민한 사건을 처리하게 할 것이라는 평이다. 사실 서울중앙지검장은 매우 중요한 자리다. 수사 내용이 전부 대검찰청에 보고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서울중앙지검장의 결재 하에 이뤄진다. 집권 후반기 집중될 주요 대기업 사건과 정치적 사건도 서울중앙지검장 성향에 따라 수사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성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사법연수원 23기), 문찬석 대검 기조부장(24기) 등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윤 후보자가 유력한 대목이다. 특수통 출신인 윤대진 국장은, 윤석열 후보자와 가깝다. 윤 검찰국장은 지난해 6월 법무부로 인사가 나기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윤 후보자와 손발을 맞춰서 일했다. 지금 정권과의 소통 능력도 장점이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현직 부장검사는 “설마 했던 윤석열이 당연하게 되면서, 검찰 내에서는 ‘그럼 서울중앙지검장은 당연히 윤대진’이라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며 “윤대진 국장은 자기 사람을 확실하게 챙기는 사람이라는 평이 많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 자리의 후보들이 비교적 많이 거론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