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과 KCGI 간 지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괜스레 금융권이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한진그룹과 KCGI 모두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 확보가 그다지 여의치 않은 터라 금융권에 기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데다 더 많은 수익이 예상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얼핏 금융권이 ‘꽃놀이패’를 쥔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양쪽 눈치를 모두 봐야 할 처지가 됐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와 KCGI(강성부 펀드)의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된 가운데, 호재를 예상했던 금융권은 줄타기 상황에 놓였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진빌딩 모습. 연합뉴스
현재로서는 KCGI가 지분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11일 산업분석 리포트를 통해 “KCGI가 20% 이상으로 지분 매입을 확대할 전망”이라며 “추가 펀딩을 통해 지분 매입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CGI 이미 1250억 원에 달하는 투자 차익을 얻었음에도 지분 매입을 계속하는 것은 경영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KCGI 측은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 같은 예상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KCGI 공세에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반격에 나섰다. 금융권을 아군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 당초 금융권은 한진과 KCGI가 지분 확보 등을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호재를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어차피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금융회사는 규모면에서나 딜 가능성으로 보나 대기업인 한진에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간 복잡한 관계 때문에 딜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통해서도 금융사에 시그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KCGI보다 한진그룹이 금융사들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사 중 가장 먼저 결단을 내린 곳은 미래에셋대우증권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3월과 4월 KCGI와 각각 200억 원씩 총 400억 원 규모의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최근 계약기간이 만기된 200억 원 규모의 주식담보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이에 KCGI는 지난 12일 전액 상환하고, 지난 11일과 12일 각각 더케이저축은행, KTB증권과 계약을 체결해 주식담보대출 갈아타기에 성공했다.
미래에셋대우 입장은 자금 사용 계획에 따라 만기 연장을 거절했으며, 7월에 만기가 다가오는 계약 건에 대해서는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KCGI 관계자는 “미래에셋 대출 해지 건은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다”며 “다른 곳으로 대체했으나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미래에셋대우의 만기 연장 불허 배경에는 한진그룹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VIP컨설팅팀을 통해 상속·증여 전략을 설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에셋대우가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 컨설팅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앞서 한진그룹과 TF 회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또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4월 한진칼이 7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당시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대표 주관사를 맡았고, ㈜한진의 400억 규모 회사채 발행에도 주관사로 참여했다. 한진그룹은 한진칼과 ㈜한진, 대한항공, 3개 계열사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당시 미래에셋뿐 아니라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다수 증권사가 참여했다.
금융권에서는 또 KCGI가 오는 11월 18일 만기가 돌아오는 KB증권의 100억 원 규모 주식담보대출도 연장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이 ㈜한진 회사채 인수단에 참여한 만큼 KCGI와 계약을 끝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비록 주식담보대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채권 인수단보다 큰 게 사실이지만, 증권사 입장에서 한진그룹을 등지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전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KCGI는 최근 고액자산가들을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설명회를 진행한 곳 가운데 하나금융투자 클럽원WM센터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진그룹이 하나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두고 있어 하나금융투자가 KCGI의 자금 모집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당초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주식담보대출 거래은행으로 두고 있었으나 지난해 8월께 우리은행과 계약이 만료되면서 하나은행과 새 계약을 체결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투자와 자산관리는 부문이 다르지만, 회사 전체로 봤을 때는 KCGI와 한진그룹으로 나뉘는 모양새라 그닥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번에 KCGI와 신규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맺은 더케이저축은행과 KTB증권은 한진그룹과 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KTB증권은 지난해 8월 대한항공 회사채 인수단에 참여한 것 외에는 한진그룹과 크게 관련이 없다. 더케이저축은행 또한 한국교직원공제회가 100% 출자한 금융회사로, 그간 한진과 거래가 전무했다.
다만 이 같은 시장의 해석에 대해 더케이저축은행 관계자는 “담보가치와 채권 보전 등을 따져 계약을 맺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KTB증권 관계자 또한 “KCGI와 계약 건은 리테일사업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