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자체만 보면 언론의 관심을 받기 힘들 정도로 소소한 사건 하나가 검찰과 경찰 간 갈등을 타고 언론계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바로 울산 발 ‘고래사건’이다. 불법 포획한 밍크고래를 유통업자에게 돌려준 검찰의 결정을 놓고 경찰이 수사를 하며 갈등이 불거지더니, 검찰은 이를 놓고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위법하다”며 기소하는 맞불 카드로 논란을 확산시켰다.
불똥은 언론으로까지 튀었다. 문제가 된 경찰의 대언론 설명이 통상의 경우처럼 보도자료 및 브리핑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검찰이 이를 문제 삼았기 때문. 검찰 내부에서조차 “이렇게 경찰의 언론 브리핑 등을 문제 삼으면 향후 검찰의 언론 브리핑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단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에게 유리한 탓일까. 경찰은 갈등 봉합을 위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은 6월 14일 대검찰청에 공문을 보내 공보규칙 기준을 통일 및 재정비하기 위한 수사협의회를 개최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것으로 보기엔 ‘경찰의 불만’이 상당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 절차를 정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면서도 “일정한 기준을 잡아 지금까지 대상과 절차를 지켜가면서 수사에 관해 국민들에게 알려왔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검찰과 경찰 공히 맞닥뜨린 문제”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2017년 9월 3일 울산지방경찰청 앞에서 고래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불법포경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 고기를 포경업자들에게 되돌려준 울산지검 검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 고래고기 21t에서 언론 자료 공개까지
고래 고기 환부 사건은 지난 2017년 4월 시작됐다. 2016년 경찰이 불법 포경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 고기 가운데 상당량을 울산지검이 약 한 달 만에 당시 피고인 신분이던 포경업자들에게 되돌려준 사실이 드러난 것.
울산 중부경찰서는 밍크고래 포획·유통업자 6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창고에서 27t 분량의 밍크고래 고기를 발견, 이를 전량 압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밍크고래의 환경적 가치를 감안해 고래 고기를 소각해 전량 폐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작 폐기 절차에서 27t 중 6t만 소각됐고 나머지 21t은 당시 피고인들에게 돌려줬다.
당시 경찰 수사팀은 “울산지검 직원이 전화로 ‘고래 고기를 환부하라’고 하기에 근거 서류를 요청했더니 팩스로 ‘환부 지휘서’가 도착했고, 이후 검찰이 자체적으로 환부 조치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수상한 점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문제 삼았다. 해당 검사도 논란 끝에 옷을 벗고 나가야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경찰의 ‘심증’을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해 9월, 경찰 내 대표적 수사권 독립론자인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취임하면서 수사는 본격화된다. 당시 경찰은 검찰의 고래 고기 환부 조치는 피의자들의 범죄 전력 등을 볼 때 불법 포획된 고래로 추정되는 압수물이라는 점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다. 특히 사건 변호사가 검사 출신 전관이었던 점, 환부를 지시한 울산지검 담당검사와 사법연수원 선후배 간이어서 전관예우가 있었다는 점은 경찰이 ‘부적절한 검사의 지시였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임준선 기자
하지만 수사는 실패했다. “검찰이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아 수사를 할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주장.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18년 6월, 결국 고래 고기 불법 유통사건 중간 조사결과 발표 때 “검찰의 비협조로 사건 실체 규명이 어려웠다”고 공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검찰이 아니었다. 울산지검이 지난 5월 말, 울산지방경찰청 수사 계장급 1명과 팀장급 1명에 대해 출석요구를 통보했다. 명목이 된 사건은 별개의 건이었다. 울산경찰청이 올해 1월 배포한,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약국을 돌며 환자에게 약을 지어준 남성을 구속한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와 지난 5월 남부경찰서가 배포한 아파트 상습 털이범 구속 관련 보도자료 등이 피의사실공표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에 출석을 통보 받은 경찰관들이 고래 고기 환부 사건을 맡은 경찰관인 탓에 ‘검경 갈등의 연장선’이라는 볼멘소리가 경찰에서 나왔다. 일선 경찰관들은 “가짜 약사, 아파트 빈집털이는 국민들에게 ‘피해 예방’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밝힌 것인데, 이를 두고 피의사실 공표를 운운하는 것이 말이 되냐, 명백한 보복 수사”라고 반발했다.
반면 검찰은 일방적인 피의사실 언론 제공은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설명이다. 울산지검 측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피의자에게 죄수복을 입히는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임을 지속적으로 밝혀왔고 현재 진행 중인 수사도 그와 같은 방침의 후속 조치일 뿐”이라며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 검찰 내에서조차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가 하기에는 좀”
울산에서 비롯된 논란이 언론 보도자료 제공까지 확산되면서 서울에서 갈등 봉합에 나섰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은 6월 14일 대검찰청에 보낸 공문에서 ‘경찰이 공부규칙 등을 준수해 보도자료를 배포했음에도, 수사책임자를 피의사실 공표죄로 입건하고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특히 ‘검찰이 2008∼2018년 피의사실 공표죄로 접수한 사건을 기소한 사례가 전무하다’며 달라진 기준을 데이터로 문제 삼았다.
동시에 수사기관들이 모여 협의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민갑룡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법무부가 중심이 돼서 수사기관들이 모이고, 학계와 언론을 포함해 협의를 해 정부 차원의 기준이 나와야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대화를 제안했다.
검찰 내에서도 “경찰이 언론 보도자료에 ‘확정적’으로 명시하곤 수사는 그렇게 넘기지 않아 곤혹스러운 적이 없진 않지만,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검찰에게 마냥 유리한 사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통상 검찰도 기소 전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하곤 하는데, 기소 전 피의자 인권을 이유로 경찰의 언론 보도자료 제공을 문제 삼을 경우 검찰도 논란의 소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이다.
이영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한 차장검사는 “언론의 관심이 많은 사건의 경우 보도가 나오면 어느 정도는 확인을 해준다든지, 공식적으로 문자를 뿌려서 언론 보도 대응을 하는데 자칫하면 검찰의 언론 대응도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냐”며 “울산지검 기준대로 사건을 처리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때처럼 거의 매일 이뤄지던 기자 브리핑은 다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서 비롯된 성완종 리스트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처럼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건의 경우 차장검사 등 언론 대응 담당 책임자가 매일 혹은 격일로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한다. 울산경찰의 보도자료로 인한 피의사실 공표를 처벌한다면, 검찰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언론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처벌이 실제 이뤄져, 언론에 정보를 확인해주는 게 더 제한된다면 취재가 어려워지기 때문. 특히 경찰의 반발은 크다. 통상적인 언론 보도이고 피의자에 대한 정보도 모두 익명으로 처리하는 등 그동안 판례 등에 어긋나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 그래서 검경 모두 ‘실제 처벌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다.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송인택 울산지검장이 검사장이 된 뒤 평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잡고 싶어 문제 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결국 이 사안은 검찰과 경찰이 언론에 어떻게 수사 진행 상황과 흐름을 알려줬는지와 결부돼 밀접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