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최준필 기자
그동안 서초동과 정치권에선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 최종후보 4명을 두고 전망이 엇갈렸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56·20기), 봉욱 대검 차장(54·19기), 이금로 수원고검장(54·20기), 윤 지검장 중 누가 될지를 놓고서다. 명단이 알려진 직후 윤 지검장 별명인 ‘대윤’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긴 했다. 하지만 윤 지검장이 문무일 총장보다 5기수 아래인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대윤’이냐 ‘비윤’이냐의 구도였던 셈이다.
그런데 여권 내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윤 지검장을 향한 부정적인 기류가 빠르게 퍼졌다. 김오수 차관과 봉욱 차장 중 한 명이 될 것이란 얘기도 뒤를 이었다. 윤 지검장은 이번이 아닌 문 대통령 임기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친문 일부 의원들이 청와대 라인을 통해 윤 지검장 반대 의사를 전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윤 지검장 발탁 가능성을 두고 뒤숭숭했던 검찰 내부도 분주해졌다.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4명 중 누가 돼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검찰 조직에서 다 신망이 높은 분들이다. 다만, 이왕이면 순서대로 가는 게 좋다는 의미에서 윤 지검장이 빠르다는 것이었다”면서 “후임 총장 자리를 두고 검찰 쪽보단 정치권에서 더욱 신경을 썼던 것 같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 역시 “후보 4명의 학연, 지연 등을 놓고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처음엔 무난히 윤 지검장이 될 것이라고 봤는데 오히려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조금은 힘들겠구나 생각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후보 4명을 두고 여러 얘기가 흘러나왔다. 친문 실세 누구와 친분이 있느냐가 주를 이뤘다. 나머지 3명에 비해 다소 밀린 것으로 평가받던 이금로 수원고검장이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동향(충청)이라는 점 때문에 급부상하기도 했다. 김오수 차관과 봉욱 차장과 가까운 정치인 이름도 거론됐다. 윤 지검장은 사실상 후보군에서 제외됐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윤을 견제하는 세력들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김오수 차관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의원들이 있었다. 봉욱 차장도 비슷했다. 여권에서 집안싸움이 벌어졌던 셈이다. 이게 총장 후보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후보들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어떤 이유 때문에 절대 그 후보는 임명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윤 지검장이 발탁되면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공격을 방어하기가 힘들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적폐 및 특수수사를 총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을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논리까지 나왔다. 아군끼리 총질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정당국을 중심으로 윤 지검장과 관련해 부정적인 보고서들이 생산됐다는 점이다. 청와대 민정라인이 윤 지검장을 반대하거나 또는 특정 후보를 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배경이다. 특정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민정라인 고위 관계자가 직접 보고서 생산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져 화제를 모았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후보 4명을 두고 여러 검증 작업을 실시했던 것으로 안다. 윤 지검장을 둘러싸고 처가 문제 등 정치권에서 돌던 여러 구설들이 보고된 것은 맞다”면서 “민정 쪽에서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보가 사실상 후임 총장으로 낙점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는데 윤 지검장은 아니었다”고 귀띔했다.
친문 진영에 이어 민정 라인까지 도마에 오르자 여권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에서도 불만이 쏟아졌다. 앞서의 부장검사는 “윤 지검장이 되면 기수 파괴로 우리가 집단 반발을 할 것이라는 둥 여러 억측이 나오지만 실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검찰은 비교적 조용한 모습인데 오히려 정치권이 더 시끄러운 것 같다. 검찰총장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 검찰의 중립성을 그렇게 외쳤던 것과는 배치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에 나섰다. 청와대와 민주당 친문 인사들 말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둘러싼 여권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윤 지검장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고 한다. 최종 후보 발표 며칠 전부터 여권과 서초동에선 윤 지검장 임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는데 여기엔 이런 문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 발표 전 만난 검찰 관계자들은 “대윤으로 결정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중진 의원도 “VIP 뜻을 확실하게 안 이상 더 이상의 논쟁은 소모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검찰총장 인사에 친문들 이름이 거론된 것 자체가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과 여권 내 일부 비토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윤 지검장을 밀어붙인 것에 대해 친문 의원들은 검찰 항명을 사전에 진압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문무일 총장을 비롯해 검사장급들이 현 정권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게 오히려 윤 총장에 무게를 실어줬다”면서 “기수파괴 얘기가 나오는데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게 문 대통령 메시지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검찰에 밀리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 인사”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