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수술실 CCTV 설치 운영과 관련해 “환자의 안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 대책이다”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월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수술실 CCTV, 국회는 응답하라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경기도
[일요신문] 헌법이 보장한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중 최상은 ‘생명권’이다. 질병과 재해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을 권리, 돈이 없어 진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헌법이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경기도의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는 바로 이 ‘국민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몇 년 새 의료사고 및 수술실 내 불법행위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가 사회적 논란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자격자에 의한 대리 수술, 영아 낙상 사망 사고, 환자 성추행 등등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위협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환자들이 알고 적절한 법적 보호를 받을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해 940건 이상의 의료사고 분쟁이 발생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원고인 환자가 구제된 완전 승소 판결은 1% 내외로 극히 낮다. 이 같은 현실은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 책임이 환자에게 있다는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소송 시 의학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환자들이 의료사고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가 여론조사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2018년 9월 27일부터 28일까지 만19세 이상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만일 마취 수술을 받게 된다면, 의료사고나 대리수술 등에 불안함을 느끼시나요?”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3%가 불안하다(매우 33%, 대체로 39%)고 응답했고, 불안하지 않다는 응답은 26%(전혀 5%, 별로 2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유·무선 RDD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 95% 신뢰수준에 ±3.1%p).
이와 관련해 의료계에서는 “1%도 안되는 의사들의 일탈을 전체 의료계의 문제로 침소봉대하고 있다”며 “CCTV 설치는 환자가 최선의 수술이나 진료를 받아야 하는 안정적 진료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CCTV가 환자와 의료진 간의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경기도는 도 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지난 5월 한 달간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에서 전신마취 수술 환자 가운데 수술실 CCTV 촬영에 대한 환자 동의율은 평균 63%에 달한다. 사진은 경기도의료원 산하 병원 수술실에 설치된 CCTV 화면. 사진제공=경기도
“도민 10명 중 9명,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법제화·전국화도 추진”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경기도는 “의료계에서는 1%도 안 된다고 하지만, 그 1%도 안 되는 불법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걸린 문제일 수 있다”며 “CCTV가 만능은 아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대리수술이나 성희롱과 같은 고의적인 불법행위는 확실하게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CCTV 도입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현재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수술실 CCTV로는 수술 과정의 세세한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 수술실의 전경을 촬영할 1대의 CCTV를 설치해 고의적인 위법을 막고, 너무도 명백한 의료과실, 예를 들어 분당의 한 병원에서 발생한 영아 낙상 사망 사고 은폐 사건과 같은 잘못에 대해 환자나 그 보호자가 억울함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에 대해 일반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경기도가 여론조사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2018년 9월 27일부터 28일까지 만19세 이상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1%가 찬성(매우 찬성 45%, 대체로 찬성 46%)한 반면, 반대는 7%(매우 반대 2%, 대체로 반대 5%)에 그쳐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다(유·무선 RDD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 95% 신뢰수준에 ±3.1%p).
실제 지난 5월 한 달간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에서 전신마취 수술 환자 가운데 수술실 CCTV 촬영에 대한 환자 동의율은 평균 63%, 외과의 경우 79%, 정형외과는 54%, 안과는 100%를 기록하는 등 환자들이 높은 호응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호응에 힘입어 경기도는 ‘수술실 CCTV 설치’를 법제화를 추진하는 한편, 전국적인 확산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지난 3월 25일 보건복지부에 ‘국공립병원 수술실 CCTV 확대 설치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경기도가 제출한 개정안에는 전국의료기관 6만 7600개소 중 종합병원 353개, 병원 1465개 등 총 1818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수술실에 의무적으로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최근에는 전라북도의회에서 지방의료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타 지자체에서도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전국 확산에 청신호가 켜졌다.
경기도는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의 법제화를 위해 지난 3월 25일 보건복지부에 ‘국공립병원 수술실 CCTV 확대 설치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전국적인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1일, 류영철 경기도 보건복지국장(왼쪽)과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오른쪽)이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CCTV 설치·운영 전면확대’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경기도
“반대하는 의료계 설득해 동참시켜야 할 과제 남아”
물론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반대하는 의료계를 설득해 동참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는 “우리는 생사의 고비에서 환자들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의사 선생님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며 “수술실 CCTV 설치는 대다수 선량하고 고귀한 의사 선생님들의 의료활동을 보장하고, 몇몇의 일탈을 막아 환자들로 하여금 의료진을 더욱 믿고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신뢰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수술실 CCTV 운영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수술실 CCTV 운영은 환자의 안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 대책이다”라며 “환자는 물론, 의료인 동의를 전제로 촬영함으로써,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료권 침해 소지도 없다”고 수술실 CCTV 운영의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수술실 CCTV 설치 논란은 불신에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이를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CCTV 설치로 환자들의 신뢰가 높아지면 결국 의료인들에 대한 국민 전체의 신뢰를 제고하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재명 지사는 “수없이 많은 수술 중 대리수술 등은 특정 예외적 경우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맞다. 예외적 상황이다. 하지만, 그 예외가 치명적이다”라며 “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위반할 것이라고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탈을 하는 나쁜 의도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라고 수술실 CCTV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단계를 나눌 필요성은 인정한다”며 “공공기관이 먼저 시행하고 일정 규모 이상 민간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복지부에 건의한 상태다”라고 밝혀 제도 안착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손시권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