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는 규모가 큰 기업들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흔하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통했다. 한 계열사가 그룹 직원 전체에 연필 한 자루를 팔아도 엄청난 매출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류나 전산뿐만 아니라 복도 청소마저도 엄청난 일감이 된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가 늘면 그만큼 다른 기업들이 파고들어갈 틈은 줄어든다. 총수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수단으로 악용돼 재벌 2‧3세 자녀들이 그대로 물려받는 부작용도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공정위는 기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사각지대가 많아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지난해 8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이 자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을 경우, 총수 일가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일명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대주주 사익편취에 대한 규제다. 개정안에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없는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 규정(50% 이상)이 새로 생겼다.
공정위는 특히 SI, 물류, 광고, 단체급식 등 업종의 일감 몰아주기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밝히고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 착수했다. 국내 상위 4개 그룹이 동시에 첫 타깃이 됐다. 지난해 7월 삼성그룹의 급식 계열사 삼성웰스토리와 모회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한 달 뒤 SK그룹 지주사인 (주)SK와 최태원 회장의 회사기회유용 혐의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올해 3월엔 LG그룹 물류 계열사 판토스, 5월엔 현대차그룹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상위 4대그룹을 시작으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해소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섬성그룹에 대한 공정위의 부당지원 조사는 약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웰스토리,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등이 단체급식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부당지원을 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1982년 설립된 삼성웰스토리는 2013년 물적분할을 통해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가 됐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17.08%), 이건희 회장 (2.84%), 이부진(5.47%) 이서현(5.47%) 삼성전기(2.61%) 삼성SDI(2.11%) 등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다.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39.1%를 기록했다.
웰스토리는 총수일가 지분이 없어 사익편취 금지 규제(공정거래법 23조2) 대상 기업은 아니다. 불공정거래의 유형인 부당지원(공정거래법 23조1항)의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상정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면 규제대상 기업의 자회사(지분 50%이상)도 사익편취 금지 규제대상이 된다.
특히 공정위 대기업 전담조직 기업집단국은 지난 4월 LG와 SK그룹 계열사에 조사관을 파견했다. 아워홈과 SK하이스텍이 대표적인데, 이들 회사는 각 그룹에 급식 용역을 제공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조사를 위해 급식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에 대해 참고인 조사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웰스토리 측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위해 최근 외부 사업장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에 대한 조사는 글로비스와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 등 주력사는 물론 정의선 부회장의 처가 쪽 기업인 삼표까지 향해있다. 글로비스는 총수일가 지분이 29.99%로, 그동안 국내 재벌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통해왔다. 역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제재를 받는다.
현대글로비스의 계열사 매출 비중은 2017년 20.7%에서 지난해 21.2%로 상승했다. 해외 계열사를 더하면 비중은 65.1%로 높아진다. 특히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제철의 석회석 공급구조를 광업회사→물류회사→현대제철에서, 광업회사→글로비스→삼표→물류회사→현대제철로 전환해 실제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삼표와 함께 일명 ‘통행세’를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글로비스의 중고차 매매사업과 관련해 현대·기아차가 전시용·업무용 차를 싼값에 넘기는 방법으로 부당지원한 의혹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 종합광고회사인 이노션은 내부거래 비중이 50.5%였다. 최근 총수 일가가 지분을 처분했다. 처분 배경에 대해 회사 측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통한 불확실성 해소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동시에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SK㈜와 최태원 회장은 2017년 엘지로부터 실리콘 웨이퍼를 제조하는 실트론 지분 71.6%와 29.4%를 나눠 인수했다. 이때 SK㈜ 대신 최 회장이 지분 일부를 인수한 것은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대신 차지한 ‘회사기회유용’ 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만 SK는 지난해 SK해운을 매각하고 SK인포섹을 SK텔레콤으로 넘기는 등 계열사 재편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나섰다. 이에 따라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6%에서 29.1%로 낮아졌지만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SK㈜ C&C 부문과 SK㈜가 100% 지분을 소유한 SK임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SK㈜ C&C부문은 그룹의 전반적인 시스템구축 사업을 담당해 내부거래 비중이 49%다.
LG그룹은 지난해 10월 종합물류 계열사 판토스의 구광모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 전량을 미래에셋대우에 매각하기로 했다. 판토스는 지난해 말까지 구광모 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이 19.9%였다. 매출액 중 엘지전자·화학 등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2016년 60%, 2017년 69.6%로 매년 증가해 왔다. 현재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반면, LG그룹은 재계와 금융투자 업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구광무 회장 취임 이후 사업 구조를 빠르게 개편하고 있어서다. LG그룹은 LG전자의 하이엔텍·LG히타치솔루션 매각 추진, LG화학의 편광판·유리기판 사업 경영권 또는 일부 지분 매각 추진 등 최근 진행 중인 매각·철수 작업이 10여 건에 달한다.
총수 교체 이후 그룹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 작업의 일환이지만,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포함돼 있다. 최근 ㈜LG가 LG CNS 지분 85% 중 35%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현재 ㈜LG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34.4%로 규제 대상이지만 지분 매각 후에는 규제를 벗어날 수 있다.
공정위는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4대그룹 중 일부의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사이 조사 대상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관측된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 10대 그룹을 제외한 한진 CJ 부영 LS 대림 현대백화점 효성 영풍하림금호아시아나 코오롱 OCI 카카오 HDC KCC 등 15개 전문경영인과 간담회를 열고 일감 몰아주기 해소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를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른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업종별로 조사에 나선데다, 확인하는 범위도 늘어났다. 올 하반기부터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기업들에 대한 압박 강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