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서울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김형석 전 회장의 어머니 A 씨와 이모 B 씨 자매는 사기 등의 혐의로 최근 고소를 당했다. 김 전 회장의 어머니 A 씨는 지난 2003년 5월쯤 오랫동안 옆집에 살며 가깝게 지낸 피해자에게 동생 사업에 필요하다며 2000만 원을 빌린 것을 시작으로 피해자의 딸에게까지 손을 뻗치며 2018년 7월까지 총 12회에 걸쳐 현금 총 2억 원을 빌렸다. 조건은 월 이자 1%였다.
김형석 회장의 어머니 A 씨가 쓴 개인 차용증. A 씨는 이 개인 차용증을 회수하고 파산을 앞둔 동생의 회사 아로마리즈 명의의 법인 차용증을 피해자에게 주려다 실패했다.
피해자에 따르면 A 씨는 평소 자신의 아들이 유명 작곡가인 김형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 쪽 대리인은 “애초 우리는 담보를 걸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A 씨는 ‘내가 김형석 엄마인데 무슨 담보가 필요하냐. 문제 생기면 내가 해결해 줄게’라며 담보를 걸어주지 않았다. 빌려주기 싫었지만 A 씨는 집요하게 ‘내 동생이 100억 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다. 아로마리즈라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김형석의 어머니로서 내가 보증한다’고 했기에 돈을 빌려주게 됐다”고 했다. 아로마리즈는 ‘자연주의 화장품’을 표방한 아로마 전문 기업으로 대형 마트와 백화점, 인터넷 쇼핑몰 등지에 상품을 유통해 연 매출 30여억 원 정도를 올려 왔다.
피해자는 2003년 5월 2000만 원을 처음 빌려준 이래 제대로 상환 받은 적 거의 없었지만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왔고 유명 작곡가의 어머니였기에 만기를 계속 연장해 주며 추가로도 돈을 빌려줬다. 모진 말로 돈을 되돌려 받기엔 오랜 인연 역시 피해자의 발목을 잡는 덫이었다.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8년 8월이었다. 이자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피해자는 A 씨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돈이 아니라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피해자는 A 씨와 B 씨의 상황을 알게 됐다. B 씨가 운영하던 아로마리즈가 사실상 부도 상태로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B 씨의 남편은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다고 알려졌다.
피해자는 분노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계속 돈을 빌려간 A 씨를 괘씸하게 생각했다. A 씨에게 처음 돈을 빌려준 시점은 2003년이었지만 2015년까지 빌려준 총액은 3000만 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1억 7000만 원은 2015년 초부터 2018년 중순 사이에 빌려줬다. 이 시기는 A 씨의 사업이 바닥으로 돌진하던 때였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실제 30여억 원씩 해마다 매출을 올려온 아로마리즈의 순이익은 2015년부터 대폭 하락하기 시작했다. 1억 9882만 원이었던 2014년 순이익은 2015년 3677만 원으로 대폭 줄어들었고 2016년에는 고작 132만 원을 기록했다. 2017년 순이익은 4398만 원 선이었다. 상환 능력이 거의 없었다. A 씨는 2007년 2억 4700만 원 주고 산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의 한 아파트를 2016년 초에 2억 9000만 원 주고 팔아 치울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에 빠져 있었다.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민사소송에서 A 씨는 “빌린 돈 가운데 5000만 원은 2016년 6월 30일에 이미 갚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에 따르면 이 돈은 갚은 게 아니었다. 2016년 6월 당시 피해자는 남편에게 A 씨와 금전 거래를 들켰다. 남편은 분노하며 피해자에게 “돈을 당장 받아오라”고 했다. 피해자는 A 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A 씨는 피해자에게 “일단 5000만 원을 통장으로 보내줄 테니 그걸 남편에게 보여주고 안심 시킨 뒤 다시 현금으로 찾아서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김형석 전 회장이 ‘일요신문’에 보내온 피해자 쪽과의 문자.
이 과정에서 통장에 찍힌 5000만 원은 A 씨가 “갚았다”고 주장하는 증거가 됐다. 피해자는 순순히 A 씨 말을 듣고 5000만 원이 표기된 통장을 남편에게 보여준 뒤 다음 날 현찰 5000만 원을 도로 A 씨에게 돌려줬다. A 씨는 이때 통장에 찍힌 금액을 자신이 갚았다고 주장하며 5000만 원을 현찰로 돌려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고 있다. A 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5000만 원에 대한 이자는 자연스레 줄어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피해자가 받은 이자에는 변화가 없었다.
피해자는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A 씨는 2017년 11월 추가로 피해자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이전에 줬던 차용증을 돌려 주면 새롭게 빌리는 돈을 추가한 새 차용증을 써주겠다고 제안했다. 피해자는 2015년 10월 기준 빌려준 돈 누계가 총 8000만 원이 되자 A 씨에게 개인 차용증을 받은 적 있었다.
피해자는 찜찜한 마음에 최초 작성했던 차용증을 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A 씨가 새로이 주려고 했던 건 아로마리즈 명의의 법인 차용증이었다. 2019년 2월 아로마리즈는 수원지방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았다. A 씨는 동생 회사인 아로마리즈의 파산 계획을 미리 세우고 개인 차용증을 법인 차용증으로 바꾼 뒤 파산하고 면책 받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빠졌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피해자 쪽은 김형석 전 회장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아들이 나서서 해결을 좀 해달라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피해자 쪽은 되레 김 전 회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형사 고소를 결심했다. 피해자 쪽 전화를 받은 김 전 회장이 “그거 얼마 안 되는 돈 해결할 건 해결하고 대응할 건 대응하겠다”고 말한 뒤 연락 두절된 까닭이었다. ‘그거 얼마 안 되는 돈’이란 한 문장은 피해자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피해자 대리인은 “사과부터 하고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만 했어도 이웃끼리 얼굴 붉힐 일은 없었을 거다. 김형석 전 회장의 저 한마디 때문에 우리 모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며 “누군가는 김 전 회장과 무관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A 씨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달라며 계속 강조한 건 ‘유명 작곡가 김형석의 엄마’라는 단어와 ‘보증’이란 단어였다. A 씨가 김 전 회장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과연 돈을 꿔줄 수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과 김형석 전 회장의 어머니 A 씨는 여전히 이웃집에 산다. 교회에서 권사로 활동하는 피해자는 엘리베이터 등지에서 종종 A 씨와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돈을 돌려달라고 읍소한다. 돈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할 수 없이 A 씨 소유의 옆집에 가압류를 걸었다. 그러자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 권사나 되면서 소송을 하나. 돈이 있어도 못 준다.”
이와 관련 A 씨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전화 연락이 안 돼 남긴 취재 요청 문자에 “누구세요?”라고 물은 뒤 묵묵 부답이었다. 김형석 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신문’은 7월 11일 키위미디어그룹을 직접 찾았다. 김 전 회장은 자리에 없었다. 얼마 뒤 김 전 회장은 전화로 “어머니가 차용증을 쓴 건 오래전이다. 어머니가 문제된 건 피해자가 주장하는 2억 원 가운데 차용증 쓴 8000만 원뿐이다. 나머지 금액은 이모와 피해자가 직접 금전 거래를 했다. 어머니가 껴 있는 게 아니다. 난 이모랑 연락도 안 한다”고 말했다. 현재 피해자는 계좌로 5000만 원을 받은 뒤 다시 현금으로 돌려줬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김 전 회장은 이어 “차용증 쓴 8000만 원 가운데 5000만 원은 갚았다. 이미 준 돈 5000만 원 빼고 남은 돈 3000만 원은 다음 달에 민사 결과가 나온다. 그 결과에 따라 남은 돈을 줘야 된다면 주면 되고 무마가 된다면 그냥 끝내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피해자가 주장하는 ‘그거 얼마 안 하는 돈’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