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유한국당 당직자 사이에서 내년 총선 때 젊은 우파 유튜버가 청년 비례대표 공천을 받을 거란 이야기가 무성하다.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다. 근래 자유한국당이 개최한 집회나 친자유한국당계의 토론회 등지에서 유튜버의 활약이 두드러진 까닭이다.
자유한국당의 ‘유튜버 품기’는 올해 초부터 낌새가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릴레이 농성 때 국회 본청에 들어와 방송을 진행한 건 유튜브 채널 ‘신의 한 수’였다. 자유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4월 25일 국회 본청에서 한 당직자에게 “신의 한 수 왔나? 유튜브, 유튜브”라고 묻는 장면이 취재진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5월 28일 펜앤마이크 후원자 대회 “청춘(靑春), 시국을 논하다”에서 발언 중인 성제준 씨. 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단독 방송을 진행하는 젊은 우파 유튜버는 개인 우파 방송을 넘어 정치권으로 유입되는 길목에 적절히 서 있다. 5월 28일 정규재 대표가 이끄는 언론사 펜앤마이크가 주최한 제3회 후원자 대회 “청춘(靑春), 시국을 논하다”에는 배현진 자유한국당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을 중심으로 논객 3명이 나란히 앉았다. 성제준 씨(28)와 안정권 씨(37), 윤서인 작가(45)였다. 세 사람은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젊은 우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는 성 씨의 ‘성제준 TV’ 21만 명, 안 씨의 ‘GZSS TV’ 14만 명, 윤 작가의 ‘윤튜브’ 17만 명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윤서인 작가였다. 윤 작가는 우파 사상을 탑재한 웹툰으로 인기를 끌어온 인물이다. 윤 작가는 최근 이언주 의원과 함께 유튜브 방송을 하는 등 정치권 가까운 곳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 작가와 함께한 성제준 씨의 자유한국당 관련 외부 활동은 더욱 눈에 띈다. 1991년생 20대 유튜버 성 씨는 경기도에 위치한 학원 2곳의 원장이기도 하다. 성 씨는 지난 4월 27일 광화문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장외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 집단과 집권여당은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방송에서 황교안 대표를 직접 만나 사인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편협한 당리당략을 넘어 ‘차가운 우파’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적인 논리에만 편중돼 사회 현상을 바라보기보다는 객관적 진단과 분석을 우선시한다. 그러다 보니 태극기 부대나 한기총으로 대변되는 기존 우파의 기행에 지친 ‘샤이 보수’에게 ‘사이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이들의 정치권 진입은 우파 진영에서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들은 일단 정치권 진입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서인 작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연히 그런 건 안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성제준 씨는 내년에 총선 때 유튜버에게 공천을 준다는 이야기가 돈다는 질문에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짧게 거절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정치인 대부분이 “그럴 생각 없다”고 말한 뒤 적절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듯 이들의 정치권 진입이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시선도 많다.
문제는 이들의 젊은 이미지와 편집되고 정제된 영상 속 메시지만 보고 자리를 줬다간 자유한국당 청년 비례대표의 ‘무족적 저주’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청년 비례대표는 청년을 대변하는데 집중해야 하지만 이제껏 청년 문제에 집중했던 자유한국당 청년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유한국당의 ‘청년 영입’은 늘 ‘청년 이미지 영입’에 불과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에게 실적이란 입법, 국정감사, 투쟁 정도로 정리된다. 이 가운데 청년 관련 족적을 찾으려면 가장 먼저 뒤져야 할 게 입법 실적이다. 자유한국당이 내세운 청년 정치인의 청년 관련 입법 실적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청년 자격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전희경 의원과 신보라 의원의 청년 관련 입법 실적은 최악 수준이었다. 신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 총 620개 가운데 38개가 공포됐는데 청소년 기본법과 군인복지기본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법, 청소년활동 진흥법 등 청년 관련 법은 8개에 불과했다.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359개 가운데에선 28개가 통과됐다. 청년과 관련해 통과된 발의는 고작 3개에 그쳤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유한국당은 2012년 19대 총선 때 30대였던 김상민, 이자스민, 이재영 의원을 비례대표로 당선시켰다. 이들의 청년 관련 정책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 정치권에서 살아남은 인사도 없다. “자유한국당은 총선 때만 되면 젊은 표심을 자극하려 ‘청년 이미지’만 잠시 사두고 정작 청년 정치인을 키우는 데 아무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특히 국회에서 일하는 젊은 보좌진은 충분한 정치력을 지니고도 매번 총선 때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자유한국당은 원내에서도 ‘새싹 키우기’ 최악이란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 이미지 구매를 멈추고 이들의 정치력 검증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유튜버 입에서도 나오고 있다. 구독자 15만 명을 이끄는 30대 우파 유튜버 ‘지식의 칼’ 운영자 이재홍 씨는 7일 자유한국당의 최근 행보를 두고 “나를 찾아주고 불러주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게 내가 필요해서 부른 건지 그냥 얼굴 알려진 젊은 놈이 필요하니까 어디서 메일 주소 하나 받아서 무작정 초대장을 날린 건지 첫 문장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지식의 칼’을 본 적도 없으면서 ‘지식의 칼’을 대체 왜 오라고 하나. 사짜(사기꾼)인지 아닌지 최소한의 검증은 해야 할 것 아닌가”라는 글을 남겼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