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은 정치권 실세가 YG를 비호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비리들이 은폐됐다는 첩보에 대해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이종현 기자
“양현석 회장인가요. 그 서태지 멤버였죠. 지금은 한류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정부에서도 밀어줄 건 밀어주고 해야…. 콘텐츠 사업이라는 게 자동차 파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나오는 분야거든요.” 2015년 5월경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서관들과의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양현석 전 YG 대표 프로듀서를 회장으로 지칭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한 전직 비서관은 이를 적어둔 수첩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당시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양현석이 유명인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특정인을 콕 집어서 지원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엔터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상당히 이례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이 콘텐츠 부문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는 뉴스가 나올 때 이 발언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라고도 했다.
사실 YG와 박근혜 정부가 남다른 관계라는 얘기는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업계에선 YG가 정권 차원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도 YG 이름이 수차례 오르내렸다. 하지만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박영수 특검’도 관련 내용을 들여다봤지만 별다른 혐의는 찾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승승장구하는 YG를 시샘하는 쪽에서 흘린 마타도어라는 얘기가 돌았고, YG를 둘러싼 풍문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버닝썬 나비효과’는 YG를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경찰과의 유착, 탈세, 마약 등 YG는 온갖 의혹에 휩싸이며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YG 소속 그룹 아이콘 멤버였던 비아이(김한빈)의 2016년 마약 부실 수사를 놓고는 검경 갈등까지 빚어졌다. 결국 YG 수장 양현석과 그의 동생 양민석 대표이사는 맡고 있던 직을 내놨다. 세간의 관심은 이른바 ‘YG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에 쏠려 있다.
사정당국에선 비아이 사건(지령 1414호 ‘YG는 어쩌다 약상누각이 되었나’ 참고) 후폭풍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수사기관의 석연찮은 처리 배후에 외압이 있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의 송치 여부 등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빚고 있다. 경찰은 사건 자료를 모두 검찰에 보냈다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비아이 건은 받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부실수사 책임론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청와대 민정라인에 근무했던 검찰 관계자는 “핵심은 비아이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16년 초부터 검찰이 YG 소속 연예인과 직원들의 비리에 대해 내사를 벌인 적이 있다. 마약, 사기 혐의 등이었고 제보자가 여럿 있었다. YG 내부에서 받은 회계 자료도 있었다. 수사가 불가피했다는 게 일선 수사관들의 의견이었다. 비아이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덮였다. 누군가 힘을 쓰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앞선 2014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YG 소속이었던 가수 박봄을 놓고서다. 박봄은 2010년 10월 12일 마약류로 지정된 암페타민을 몰래 들여오려다 발각돼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검찰은 같은 해 11월 이 사건을 입건 유예했다. 범죄혐의는 있지만 더 이상 사건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 사실은 2014년 7월 1일 언론보도로 뒤늦게 알려졌고,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검찰 내에서도 마약사범을 입건 유예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재수사 필요성이 대두됐고, 박봄 수사팀에 대한 감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소속 한 법사위원이 대검찰청 측에 이러한 조치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박봄 사건은 다시 한 번 유야무야됐다. 이를 놓고 당시 검찰 안팎에선 “청와대가 직접 힘을 썼다”는 얘기가 나왔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YG 사건을 손댔다가 중간에 손을 뗐다는 소식을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니다. 서초동에선 유명한 얘기다. 박봄 재수사도 그런 경우다. 실무 입장에서 이런 사건은 언론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고 하니 진행하고 싶어 한다. 정상적으로 처리했다면 YG가 지금까지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이는 누군가 YG를 비호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현 정권 사정당국에서도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석연찮은 검찰 수사 과정을 되짚어보겠다는 얘기다. 이는 버닝썬 클럽 폭행사건으로 불거진 YG 사태가 지난 정권으로 번질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사정당국 및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선은 박근혜 청와대 고위직을 맡았던 한 정치권 인사 A 씨를 향한다. 그가 ‘YG 비호’의 몸통으로 여러 번 거론돼왔던 까닭에서다. A 씨는 친박 실세로도 꼽혔다.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YG 내사 당시 청와대 파견 나와 있던 검찰 직원이 관련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 직원은 A 씨 라인이었고, 그 덕분에 청와대까지 왔었다”면서 “또 다른 사정기관에서 파견 나왔던 청와대 민정 직원도 A 씨와 가까웠는데 그 역시 YG 쪽 뒤를 봐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이 YG의 민원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귀띔했다.
A 씨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YG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번 정권에서 나를 흠집 내려 하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A 씨, 그리고 청와대 파견 직원들이 YG를 도왔다는 것을 거의 사실로 보인다. 왜 그랬는지 밝혀내는 게 관건”이라면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특혜를 주진 않았을 것으로 본다. YG 쪽에서 확보한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로비가 있었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