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 사진=SBS 다큐멘터리 ‘의렬단의 독립전쟁’ 갈무리
[일요신문]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
6월 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 대통령이 직접 ‘김원봉’이란 이름을 거론한 까닭이다.
약산 김원봉은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으로 항일 무장운동 선봉에 섰던 ‘투사’다. 1938년 김원봉은 중국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뒤 초대 대장으로 부임했다. 많은 역사 전문가는 “조선의용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됐고, 해방 이후엔 조선의용군 출신이 조선인민군의 주력으로 활동했다”고 평가한다.
이뿐 아니다. 김원봉은 광복 이후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 1948년 월북했다. 김원봉은 6·25 전쟁 당시 북한의 전시 노동상 직을 맡았다. 김원봉은 전쟁 과정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북한으로부터 ‘노력훈장’을 받았다.
일각에서 “문 대통령이 6·25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현충일 추념식에서 ‘6·25 전쟁 전범’ 의혹이 있는 김원봉을 치켜세운 것은 역설적인 상황”이란 논란이 불거진 배경이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예비역 장성 A 씨는 “국군 통수권자가 ‘6·25 전쟁’ 전범 격인 김원봉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것은 국군의 정통성 뿌리를 흔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 6일 현충일 추도사를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A 씨는 “예비역 군인으로서 더욱 화가 나는 대목은 따로 있다”면서 “군 관련 집단에서 ‘김원봉 논란에 입을 꾹 닫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육·해·공사 총동창회, ROTC 중앙회 등 장교단을 비롯해 해병대 전우회, 고엽제 전우회, 상이군경회 등 유력 단체들은 ‘김원봉 논란’에 침묵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의 주장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군 관련 단체·모임 대다수는 “공식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6월 21일 ‘일요신문’은 현역과 예비역 엘리트 장교 집단인 ‘육·해·공군 사관학교 동창회’에 김원봉 논란 관련 공식 입장을 물었다.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관계자는 “여기(김원봉 논란)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가 없다”면서 “관련 내용을 답변드리기가 제한된다”고 답했다. 해군사관학교 총동창회 관계자는 ‘김원봉 논란 관련 공식입장’ 관련 질문에 “미안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 관계자는 “우리는 정치단체가 아니고, 동문들의 친목단체”라면서 “정치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인 의견이야 개인들이 다양하게 가질 수 있다. 친목단체에선 그런 부분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학군장교들의 총동창회 격인 ROTC 중앙회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ROTC 중앙회 관계자는 “입장을 별도로 말씀드리기엔 제한된다”면서 “중앙회 존립 목적이 그런 부분을 갖고,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비역과 현역을 아우르는 유력 장교집단들은 ‘정치적 발언을 삼간다’는 뉘앙스로 김원봉 논란 관련 공식입장 표명을 피하는 양상이었다.
이와 관련해 군 고위직을 지낸 바 있는 한 예비역 장교 B 씨는 “김원봉 논란 관련 공식입장 표명은 ‘정치적 표현’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B 씨는 “가치판단이 필요한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 표현은 정치적 발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으로부터 6·25 전쟁 공로를 인정받은 김원봉과 관련한 입장 표명은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고 본다. 김원봉 논란은 현역 장병들과 국민들의 ‘안보관’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B 씨는 “안보관을 확립하는 게 정치적인 발언은 아니지 않나. ‘엘리트 장교 집단’들이 입을 닫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김원봉 논란 관련 공식 입장’을 묻자 “김원봉이 누군지 모른다”고 답한 군 관련 단체도 있다. 바로 해병대 전우회였다. 해병대 전우회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군 관련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해병대 전우회 사무총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 내용(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무슨 말인지 자세히 이해를 못 하겠더라”면서 “김원봉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연설) 내용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해병대 고위 관계자 출신 C 씨는 “해병대 전우회 사무총장이 김원봉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만약 정말 김원봉이 누군지 모른다면, 이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원봉 논란’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전직 군 고위 관계자들의 의견은 비슷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랬다.
“독립운동가로서 의열단장 김원봉의 업적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남·북이 분단된 뒤 김원봉의 행적은 그렇지 않다. 김원봉은 분명 ‘6·25 전쟁’ 발발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2019년 여전히 남북은 분단돼 있다. 그렇기에 아직은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종결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김원봉 논란’은 정치적 이슈다. 동시에 국가 안보와 직결된 이슈이기도 하다. ‘김원봉 논란’은 대한민국 안보관을 뒤흔들 만한 파급력이 있는 논쟁거리다. 그 가운데 “유력 군 관련 단체들이 ‘중대한 안보 이슈’에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유력 군 관련 단체들의 탄생 배경엔 공통 키워드가 있다. 바로 ‘국가 안보’다. ‘김원봉 논란’ 이후 유력 군 관련 단체들의 침묵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