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함. 박은숙 기자
6월 15일 익명을 요구한 한 제보자는 “A 중학교에 재학 중인 B 학생이 여학생들을 상대로 수차례 불법 촬영을 했다. 그런데도 피해자로 추정되는 학생들과 버젓이 같은 반에서 생활하고 수업을 듣고 있다”고 일요신문에 제보했다.
사건은 지난 3월 학교 점심시간에 발생했다. B 학생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같은 반 여학생을 몰래 촬영한 것. 이를 목격한 학생은 세 명이었다. 그 가운데 두 학생이 3월 28일 담임교사 C 씨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다. A 중학교는 4월 16일 B 학생을 상대로 학생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었다. 이에 대한 징계도 결정됐다. 다만 학교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일단락될 줄 알았던 사건은 6월 5일 다시 불거졌다. 한 학생이 교실에서 “몰카 찍은 애 누구야”라는 말을 꺼내면서부터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급기야 B 학생이 5월, 6월에도 여학생을 상대로 불법 촬영을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강남 우수 중학교의 몰카 사건을 실토합니다’란 글이 올라오기에 이르렀다.
학교는 진상 조사에 나섰다. 소문을 낸 학생들은 교무실로 불려갔다. A 중학교 교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학생들을 불러 5월, 6월 사건에 대해 물어봤고 학교에서는 단순 소문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현재로서는 학생들을 안심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리 치료, B 학생 공식 사과 등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학교의 노력에도 학생들의 불안은 끊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가 지난 3월 사건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를 향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복수의 학생들은 학교의 수사 과정이 부실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앞서 교감은 “B 학생이 촬영 사실을 시인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B 학생이 사과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B 학생이 작성했다는 사과문은 피해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가 피해 학생들을 조사하지 않은 까닭이다. 다시 말해 피해자 없는 학폭위가 열린 셈이었다. 학폭위는 통상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열린다.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교육을 위해서다.
교감은 “B 학생 사건이 신고되기 전날 학부모가 B 학생의 휴대전화를 파기했다. 그래서 학교는 사진을 보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찾기 어려웠다. 경찰도 피해자 없이 학폭위를 여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학폭위를 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목격자 D 학생은 진술서에 피해 학생이 누군지 기술했다고 한다. D 학생은 B 학생이 어떤 학생을 불법 촬영했는지 상세히 적었다고 했다. 제보자 말대로라면 D 학생은 피해자로 의심되는 학생이 누군지 알고 있었고, 진술서를 통해 교사들에게 정확히 보고했다.
A 중학교 학교규정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규정 제3장 제12조 2항.
A 중학교 학교규정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규정 제3장 제12조 2항에 따르면, 자치위원회는 피해 학생에 대해 조치하기 전 피해 학생 및 그 보호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적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피해 학생은 이 사건 관련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 피해 학생은 6월이 돼서야 자신이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피해자 없이 학폭위가 열리는 사례는 많지 않다.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더라도 학교가 피해자를 찾아 우선 보호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학교가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 까닭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청원 게시판을 보다 교무실에 불려간 친구도 있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눈치를 준다. 19일에는 부모님께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자가 왔다”고 말했다.
교사마다 다른 말을 해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문제였다. 또 다른 학생은 “어떤 선생님은 ‘사진을 봤는데 흐릿해 분별이 어렵다’고 말하고, 다른 선생님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두 분 모두 3월 사건을 담당했던 선생님이었는데,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혼란스럽다”고 고백했다.
이 밖에도 학생들은 교사들의 강압적인 조사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우리가 원한 건 학교와 가해 학생의 진심 담긴 사과였다. 학교가 다수의 피해자를 먼저 보호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알아서 처리하겠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입막음만 할 뿐이었다. 누구를 믿고 학교에 다녀야 할지 의문”이라고 한탄했다. 이처럼 학교가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조성된 불안이 ‘5월, 6월에도 여학생을 상대로 불법 촬영이 이뤄졌다’는 소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A 중학교 교감은 19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글 자체는 허위”라며 “청원글을 작성한 학생 역시 거짓으로 글을 작성한 것을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청원글에는 학생들 사이에 떠돌고 있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5, 6월에도 몰카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도 있지만 지난 학폭위가 열려 징계까지 정해진 3월 사건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결국 이날 오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교감은 “3월 사건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며 태도를 바꾸었다. 해당 청원글이 모두 허위라는 교감 주장의 일부가 거짓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A 중학교 교사와 학생 간의 대립은 쉽사리 봉합되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가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진심이 담긴 사과가 필요해 보인다.
박찬웅 인턴기자 pcw02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