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씨는 이날 오후 1시 23분께 인천공항 입국장을 나왔다. 취재진은 정 씨를 상대로 그간 도피 경위 등에 대해 질의했지만 정 씨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정 씨를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로 호송해 도피 경로 등을 수사할 예정이다.
22일 국내로 압송된 정한근 씨. 사진=박은숙 기자
정 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 동아시아가스(EAGC) 자금 322억 원가량을 횡령한 후 스위스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씨는 1998년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이후 도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8년 7월,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소재 파악이 불가능해 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검찰은 2008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 도피 및 횡령 혐의로 정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정 씨에 대한 공소시효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재판에도 불출석해 구속영장 집행을 하지 못했다.
이후 2017년,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정 씨가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추적에 나섰다. 국제협력단은 에콰도르 당국으로부터 정 씨가 지난 18일 파나마로 출국한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파나마의 협조를 얻어 신병 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협력단은 정 씨의 국내 송환을 위해 파나마에서 두바이로 이동했다. 이후 정 씨가 국적기에 탑승하자마자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이밖에 정 씨는 국세 235억 원을 체납한 상태다.
한편 한보 사태의 장본인인 정태수 전 회장은 여전히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 전 회장이 1923년생임을 감안하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국세청이 2014년 공개한 ‘고액 상습 체납자’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의 체납액은 2225억 원에 달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정·재계 대형 스캔들 한보 사태란? 1997년 초, 당시 재계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일명 ‘한보 사태’가 불거졌다. 한보그룹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제철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5조 원 이상을 투자해 제철소를 설립했다. 문제는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가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로비 사실이 드러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주민센터 상임이사까지 연루되는 등 대형 스캔들로 불거졌다. 당시 정태수 전 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병보석으로 2002년 석방됐다. 하지만 2005년 횡령 사건으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됐고, 정 전 회장은 재판 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그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박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