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중간지주사로 전환 목적은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자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통신사업자 이미지가 강한 텔레콤을 ICT(정보통신기술) 기반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이 불투명해진데다, 앞으로 강화될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사 전환을 위한 소요 자금이 크게 늘어 SK그룹의 셈법이 복잡해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이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을 두고 셈법이 복잡해졌다. 사진=고성준 기자
박정호 에스케이텔레콤 대표이사(사장)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민관 합동 5G+위원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간지주사 전환에 대해 “논의 중이지만 쉽지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성장회사와 스테이블 회사(이익성장이 정체된 회사) 간 기업가치 차이를 해소해야 하는데 논의가 필요하다”며 “다른 방법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 사장은 올해 초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을 공식화했다. 절차를 연내 마무리 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쳐 왔지만 처음으로 올해 안에 전환이 안 될 수 있으며 다른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SK그룹의 다른 한 축인 SK디스커버리가 최근 SK건설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1년 6개월 만에 지주사 체제를 완성하면서 이 발언에 관심이 더 쏠렸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SK텔레콤의 비즈니스가 다양한데 각각 성장할 수 있도록 한 회사의 자회사 구조로 있는 것을 바꾸기 위해 시장 전문가와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SK그룹은 SK㈜의 자회사 SK텔레콤을 둘로 쪼개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투자지주사와 통신사업회사로 나누는 물적 분할 방안인데, 투자지주사(가칭 SK투모로우) 밑에 통신사업회사와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ADT캡스, 11번가 등 자회사를 두는 구조다. 중·장기적으로는 SK그룹이 투자지주사와 SK㈜를 합병할 가능성까지 거론돼 왔다.
중간지주사 전환 추진 명분은 크게 두 가지다. SK텔레콤을 통신사를 넘어 보안·미디어·커머스를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 육성하는 게 첫 번째다. SK텔레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이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기술을 통해 질적 성장도 가능하다는 게 SK 측 입장이다. 회사는 이를 ‘뉴 ICT(정보통신기술) 전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는 SK하이닉스 보유 자금의 효율적 활용이다. 금융업계에선 이를 SK그룹의 중간지주사 전환 추진 이유 가운데 가장 핵심이자 근본적인 이유로 꼽는다. SK하이닉스는 현재 SK(주)의 손자회사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인수·합병(M&A)에 나설 경우 인수 대상 기업의 지분을 100% 소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SK그룹은 그동안 추진해 온 각종 M&A 등에서 SK하이닉스 보유 자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SK하이닉스엔 최근 수년 사이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으로 곳간에 수 조 원을 쌓았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가 되면 SK하이닉스는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올라서게 돼, 이 같은 족쇄를 풀 수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다른 방안은 SK하이닉스를 지주사 SK㈜에 편입하는 방법이 있다”며 “그러나 이 경우 SK㈜가 SK텔레콤으로부터 SK하이닉스를 사들여야 한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는 일이 불가피한 만큼 SK텔레콤을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하지만 바뀌는 공정거래법이 SK그룹의 중간지주사 전환 작업에 발목을 잡았다. 지난 8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선뜻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이 됐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자회사 의무보유지분 규정이 현행 20%에서 30%로 바뀐다. 개정안에 따르면 중간지주사로 올라서는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는 물론 다른 자회사의 지분을 30%까지 더 확보해야 한다.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것이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만 따로 떼어 봐도, 현재 SK텔레콤이 보유한 하이닉스 지분은 약 20%로 최근의 주가 수준이면 텔레콤은 약 4~5조 원 대 자금을 들여 하이닉스 주식을 추가로 사들여야 한다.
일각에선 SK하이닉스의 최근 실적 하향세를 토대로 오히려 중간지주사 전환에 유리하다는 관측도 나왔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서 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향후 실적이 불투명해 주가가 떨어지고 있어서다.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SK텔레콤 중간지주사가 투입해야 할 자금도 줄어든다. 실제 금융업계에선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이를 근거로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 전환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도 SK그룹이 한 발 물러선 이유는 최근 SK하이닉스의 전망이 사실상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주요 매출처인 중국 화웨이가 미국과 정면충돌해서다. 당초 올해 하반기 반도체 업황 회복을 점쳤던 증권가와 관련 업계에선 부진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시선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실적 회복이 불투명해질수록, 쌓아둔 보유 자금은 더 손대기 애매해진다”며 “중간지주사 전환 추진의 핵심이 하이닉스 보유자금 활용인데, 이를 쓰지 못하게 된다면 굳이 SK텔레콤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까지 지주사로 전환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된다”고 진단했다.
SK텔레콤이 이미 대규모 지출을 하고 있다는 점도 검토 대상이다. 이동통신과 미디어, 보안, 이커머스 등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공격적 인수합병(M&A) 전략을 펼치고 있어서다. 지난해 ADT캡스(7020억 원)을 시작으로 ‘푹+옥수수’ 통합법인에 자금지원,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 등을 추진 중이다. 추진하는 작업이 끝나더라도 안정화를 위해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주주 설득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물적분할 뒤 사업 부문에서 이동통신사업부를 따로 떼 재상장하는 방안은 지주사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에 유리한 방식이다. 이들은 지주사를 통해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되지만, 반대로 다른 주주들은 핵심 사업부를 잃게 된다. 이 경우 지분율 40%에 이르는 SK텔레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도 피하기 어렵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때문에 SK텔레콤 측은 올해 초부터 주주 동향을 수시로 체크하고 배당금 선정 기준을 재정비하는 등 시장과 접촉을 늘렸다. 단순히 찬성표를 얻기 위한 것보다 ‘공감대’를 마련하는 목적이 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M&A전략과 중간지주사 전환 등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나 중간지주사 전환 명분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배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중간지주사 전환에 대한 정확한 시기나 방안에 대해선 꾸준히 고민해 왔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라며 “업황과 회사 간의 시너지, 주주와 투자자 모두 고려해 가장 적기라고 판단될 때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