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회장은 과거 은행권 대출을 위해 정치권에 뇌물을 건넨 이른바 ‘한보 사태’의 주인공이다. 이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정 전 회장에 대한 여론은 현재도 우호적이지 않다. 이에 정 전 회장은 2004년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관련기사 : ‘한보철강 되찾겠다’ 선언 정태수 전 한보 회장 직격 인터뷰)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2004년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당시 정 전 회장은 한보그룹이 정치권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차떼기다 뭐다 해서 삼성·LG·현대차·SK 등 대기업이 모두 수백억 원씩 정치권에 뿌렸고, 그 총액이 1000억 원까지 올라갔다”며 “일류기업이라고 하는 대재벌들 역시 국내에서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정치권 로비가 불가항력적이었다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들 기업의 총수 중 대체 누가 구속되고 기업이 몰락했나”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1997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002년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정 전 회장은 이에 대해 “(한보가 정치권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것을) 사실상 현 정치권에서 또 국민들이 인정해준 것”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 혼자서 결정한 것도 아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협의해서 날 사면시켜 준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인터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정 전 회장에게 “한번 실패한 기업인도 기회를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150억 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제 건넨 돈이 600억 원 혹은 800억 원, 심지어 1000억 원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에 대해 정 전 회장은 “1992년 대선 당시 150억 원이면 지금 시세로 치면 1500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라며 “800억 원이라니. 한보 같은 회사가 무슨 수로 지금 화폐가치로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대선자금으로 준다는 말인가”라고 반박했다.
이밖에 정 전 회장은 한보그룹 부도를 놓고 ‘김영삼 정권에 의한 고의 부도’설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이젠 다 지나간 얘기이기에 과거는 묻지 말고 앞으로의 일만 얘기하자”며 “당시 일은 당시로 끝내야 한다”고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2004년은 정 전 회장이 한보철강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때다. 한보그룹 부도 후 한보철강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정 전 회장이 이를 되찾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한보철강은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INI스틸(현 현대제철) 손에 넘어갔다.
이후 정 전 회장은 2005년 자신이 설립한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붙잡혔다. 정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2심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정 전 회장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