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23기)이 전임 문무일 검찰총장(사법연수원 18기)의 5기수 후배임에도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차기 총장으로 낙점되자, 검찰은 기대감에 들떠 있다. 청와대의 확고한 신임을 확인했다는 점도 있지만, 윤 검찰총장 후보자의 특수통 경력, 성향 등을 감안할 때 검찰에 대한 개혁 여지가 전보다 낮아지지 않겠냐는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거론된 검찰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자는 다소 부풀려진 것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통 특수통 검사로 특수 수사를 뺏기는 것에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라며 “특수부라는 강력한 칼은 검찰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법원은 내심 걱정하는 눈치다. 사법행정권 남용을 강도 높게 수사한 윤석열 후보자가 검찰총장에 앉게 된 탓인지, 법원의 존재감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당장 거론되는 ‘특수통’ 중용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 후보자로 발탁되자마자, 검찰 내에서는 앞으로 ‘윤석열호(號)’의 주역을 담당할 후보들 거론에 여념이 없다. 중앙지검장 부임 후 전통적으로 공안통 검사가 보직을 받아온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자리에 특수통 출신 박찬호 차장검사를 앉히며 ‘특수통’을 중용해 온 까닭이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했을 당시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 최준필 기자
자연스레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돼 왔던 현직 검사들이 향후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요직에 발탁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원래 인지 수사에서 시작하는 특수 수사는 고생도 많이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의 수사를 여러 명의 검사, 수사관이 며칠간 밤새 회계 자료를 분석하고 현장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는 등 정치적으로 내려오는 하명 수사를 넘어서는 법리적 근거와 증거를 찾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검사들 간 동질감이 엄청나다”며 “윤 후보자도 그런 특수 수사의 논리를 가장 잘 알고 그냥 특수 수사를 해본 검사와 타고 난 검사를 구분하는 감별사 역할을 도맡았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정통 특수통 검사와 ‘경력’을 위한 특수통 검사를 구분하는 역할까지 맡았다는 얘기다.
실제 윤 후보자는 그동안 자신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던 특수통 검사들을 요직에 기용했다. ‘소윤(小尹)’으로 불릴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25기)을 필두로,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26기),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27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박찬호, 한동훈 차장검사의 경우 중앙지검장 임명 후 간부 인사 때 모두 변화를 주지 않으며 중용할 정도로, 윤 후보자의 신뢰를 받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중앙지검 차장검사 자리의 경우 서로 가기 위해 줄을 설 정도로 치열하기 때문에 2년 연속 연임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윤석열 후보자는 지검장을 2년 차 하면서 둘을 남겼다. 언론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검찰 내에서는 ‘질시’를 받을 수 있음에도 그를 넘어서는 신뢰를 중시하는 윤 후보자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 신·구 윤석열 사단도 중용될 듯
‘한번 믿으면 계속 중용하는’ 윤석열 후보자 인사 스타일 탓에 박영수 특검팀 때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국정농단,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멤버들도 요직을 꿰찰 것으로 보인다. 양석조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29기), 김창진 특수4부장(31기), 박주성(32기)·김영철(33기) 특수부 부부장검사 등은 박영수 특검팀 때 수사검사로 파견을 갔다가,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사법행정권 남용까지 수사를 해왔다. 특히 김창진 부장검사는 윤 후보자의 요청으로 현재 중앙지검에 설치된 청문지원팀 팀장을 맡는 등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 역시 더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 후보자는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후 함께 ‘좌천’됐던 진재선(30기), 김성훈(30기) 검사 등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공공형사수사부장 등 요직에 중용했는데, 이들 역시 향후 법무부 및 대검 등으로 함께 이동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 외에 이복현(32기)·단성한(32기) 검사 역시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으로 합류하며 신임을 받았던 만큼, 향후 인사 때도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 지청 간부급 검사는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팀은 박근혜 정부 시절 좌천된 뒤에도 서로 끈끈하게 뭉치며 챙겼다”며 “그 중심에 대장이었던 윤석열 후보자가 있었고, 그때 함께 고생한 부분에 대한 의리도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 특수통 중용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영향?
윤 후보자는 검찰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대개의 검사들 역시 그러하지만, 윤 후보자의 경우 ‘검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검찰 사랑’이 상당하다. 윤 후보자를 잘 아는 특수통 검사는 “윤석열 선배는 박근혜 정부 시절 좌천을 받았을 때에도, 로펌 영입 제안에도 불구하고 옷을 벗지 않고 남아 있었을 정도로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나 애정이 크다”며 “특수 수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윤 후보자의 성향과 특수통들이 요직에 앉을 향후 인사까지 감안할 때, 검경 수사권 조정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실제 윤 후보자는 평소에도 “수사권이 아니라 기소권 분산이 핵심”이라고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소신’을 밝혀왔다. 검찰의 수사권 분산이 아니라,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공수처와 경찰에 일부 수사권을 넘기는 방식인 기존 문재인 정부 개혁방향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실제 이 때문에 여권과 청와대 일각에서는 윤석열 후보자를 차기 총장으로 낙점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되면 특수수사 영역에 대해서는 ‘지키겠다’고 할 가능성이 있고, 자칫하면 검찰과 청와대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그림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 있었다”고 귀띔했다.
되레 이런 우려는 이제 검찰에게는 기대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선 간부급 검찰 관계자는 “윤 후보자가 사석에서는 정부 수사권조정안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소신을 밝혀온 점, 특히 특수수사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기 때문에 경찰이나 공수처 등에 특수 수사 영역을 쉽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검사들끼리는 ‘윤 선배라면 언론에 나지 않는 선에서 사표라도 제출하며 청와대에 맞서지 않겠냐’는 얘기까지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 역시 “청와대가 5기수나 건너뛰는 파격 인사를 선택할 만큼 윤 후보자에 대한 신뢰가 확실한 만큼, 경찰과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우리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언론이 다 지켜보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상관에게 정면으로 들이받을 만큼 의사 표현이 확실한 사람이다. 큰 틀에서는 합의를 했겠지만 특수통 검사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안이 청와대에서 내려오면 분명히 ‘NO’라고 명분을 가지고 받아칠 선배”라고 평가했다. 실제 윤 후보자는 그 후 청문회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총장 레이스 막판, 윤 후보자로 분위기가 쏠린 것은 윤 후보자가 청와대의 검찰개혁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딜’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선 청와대 소식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검찰 장악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변수’를 확인 안 했을 리가 없다”며 “윤 후보자의 소신이 반영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특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흐름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권과 청와대 측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조 수석을 법무부 장관 유력 후보로 놓고 평판을 수집하는 등 검증 작업을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전부터 그런 소문이 돌긴 했다”며 조국 수석의 법무부 장관설을 어느 정도 인정했는데,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해 조 수석을 직접 장관에 앉히는 것도 좋은 옵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검찰 지상주의자 윤석열 후보자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선 변호사는 “지금 단계에서는 윤 후보자와 조국 민정수석, 문재인 대통령까지 어느 정도 개혁안에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인사가 이뤄진 것이겠지만, 향후 조금이라도 검찰이 불리한 방향으로 수정이 이뤄지면 윤 후보자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고 그때 충돌은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질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