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초부터 내년 4월까지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에서 임기가 끝나는 최고경영자(CEO)는 무려 11명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 임기가 오는 12월 종료되며,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내년 3월, 김광수 NH농협금융그룹 회장이 내년 4월, 허인 KB국민은행장이 오는 11월,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이 오는 1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지방은행에서는 내년 3월 김지완 BNK금융그룹 회장과 빈대인 BNK부산은행장, 황윤철 BNK경남은행장, 서현주 제주은행장 임기가 모두 끝나며 인터넷은행에서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이 가장 빠른 오는 9월 임기가 끝난다.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금융공기업 수장들을 포함하면 더 많은 인물이 교체될 예정이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 “연임할 생각 없다”고 밝히면서 차기 기업은행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연합뉴스
이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자리는 기업은행장이다. 기획재정부가 53.0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국책은행이니만큼 정부 입김이 클 수밖에 없다. 김도진 현 행장은 2016년에 전 정부에서 발탁된 인물이어서 교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행장은 이미 “연임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한 상태다.
문제는 후임자가 누가 되느냐인데, 벌써부터 고위 관료 출신이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정해졌다는 내정설이 퍼지는 등 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김도진 행장은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전략기획부장·카드마케팅부장·기업금융센터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14년부터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하는 등 내부 출신 행장이다. 최근 기업은행장 자리는 3연속 내부 출신이 선임됐다. 행원 출신인 조준희 전 행장은 2010년 말 기업은행 최초로 내부 출신 은행장이 됐다. 이어 권선주 행장이 2013년 말 취임해 은행권 최초로 여성 은행장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총선을 앞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부 인사가 오는 것을 막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국책은행 인사의 특성에다 총선을 앞두고 보은성 자리챙겨주기가 필요한 시점이 겹치면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은행은 이미 낙하산설을 비롯해 내부 후보자들의 물밑 경쟁이 심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간 상호 비방전이 벌어지면서 혼탁해지는 모습까지 보인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차기 기업은행장에 고위 공직자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 기업은행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 내부에서도 부행장과 계열사 CEO 2~3명이 물밑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금융 회장 자리에 관심이 높다. 우선 조용병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조 회장은 2017년 회장으로 취임한 후 계열사간 시너지를 강조하는 ‘원 신한(One Shinhan)’을 내세우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신한금융은 2017년 KB금융에 빼앗겼던 리딩금융 자리를 되찾았다. 여기다 오렌지라이프, 아시아신탁 등 인수·합병(M&A)을 두 차례나 성공시키며 비은행 강화에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7년 회장 취임 후 큰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연임이 점쳐지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광수 농협금융 회장과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계속해서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두드러진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행장의 경우 한 차례 연임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농협은행장은 2년 이상 연임을 한 전례가 없어 이 행장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3연임을 한 첫 농협은행장이 된다. 농협은행장은 주로 농협 내부에서 발탁하지만 농협금융 회장은 대개 관 출신 인사들이 차지해 회장 자리 또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김 회장이 지난해 회장 자리를 맡은 후 농협금융 체질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터라 속도를 내기 위해 한 번 더 맡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지 않다.
11월 임기 만료를 앞둔 허인 국민은행장도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2017년 KB금융 회장과 국민은행장이 분리된 후 처음 국민은행장을 맡았고,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시너지를 내며 국민은행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확대와 디지털 전환 등에 시동을 걸고 있는 만큼 한 번 더 수장을 맡아 이들 과제를 성공궤도로 올리는 데 허 행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 심성훈 은행장의 임기 만료일은 오는 9월로 가장 빠르다. 심 행장의 연임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심 행장은 1988년 한국통신에 입사해 비서실, 기획조정실, 사업지원실 등 30년간 KT의 핵심부서를 두루 거친 정통 ‘KT맨’이다.
하지만 KT가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받고 검찰 고발까지 당하면서 5900억 원 규모의 증자를 통해 케이뱅크 대주주로 올라서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 때문에 케이뱅크는 현재 자본 부족 상태에 시달리고 있어 대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다만 최근 우리은행 주도의 대규모 증자를 비롯한 자본 확충 방안이 성사되면 연임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미 경쟁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총선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