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국회는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싸고 심한 충돌을 빚어냈고 이 대치는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은숙 기자.
지난 4월 국회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 과정에서 일어난 의원들 간 몸싸움으로 무더기 고소‧고발전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모든 사건을 서울남부지검 공안부에 배당했다.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됐으나 남부지검 형사부로 이첩됐던 6건 또한 공안부로 재배당됐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공안부에서, 또 다른 사건은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수사를 지휘했다. 중복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108명의 국회의원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진척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를 중심으로 “우리 의원님은 아직 소환되지 않았다”, “저는 대체 언제쯤 소환되는 거냐”, “당에 보고된 내용은 아직 없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영등포서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왜 늦어지겠냐. 국회 눈치 보는 거 아니겠냐. 태스크포스(TF)팀도 만들어졌다는데, 모르겠다. 왜 이렇게 더딘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도 “곧 있으면 국회에 국정감사도 있고 예산 처리 등의 문제도 있으니, 경찰 입장에선 국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질질 끌다가 뭉개고 끝낼 모양인가보다”라고 예상했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48조에 따르면 경찰은 고소‧고발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해야 한다. 경찰은 4월 접수된 사건들이 수사기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가 돼서야 움직임을 보였다. 특수감금과 폭행 혐의 등으로 고발된 한국당 의원 네 명에게 7월 4일까지 출석하라는 요구서를 보낸 사실을 6월 27일에 밝혔다. 싸움이 일어났던 국회 복도 내 CCTV와 방송사로부터 제공받은 영상을 분석하는 데에 시간을 소모했다고 밝혔지만, 이를 감안해도 더딘 수사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웠다.
주목할 점은 여야 온도차다. 국회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원유철 한국당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글쎄, 수사가 늦어지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다. 제가 고발당한 입장에서 말씀 드리기는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라면서도 “당시 선거법은 합의에 따라 처리했어야 했는데, (우리 입장에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의 입장을 이야기해야만 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국당 소속의 한 보좌진도 “의원님들은 여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본인들과 동료들이 고소 고발을 당했는데 괜히 말했다가 수사 압박처럼 비춰질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경찰을 소관 부처로 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한국당 입장에선 이번 수사가 더딘지 잘 모르겠다”며 “언제 한 번이라도 경찰이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걸 본 적이 있긴 하냐. 오히려 이번 사건은 빨랐다고 본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고 국회에 관련한 일이니 더 진척 있게 처리했으면 했지, 느리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정반대 분위기가 느껴졌다. 폭력 혐의로 고발당한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왜 수사가 더디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고발당한 사람의) 수가 많다보니 그런 것 같다”면서도 “(검찰과 경찰이) 아무래도 국회 눈치를 보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빨리 조사를 받고 싶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렇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종걸 의원도 6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수사에 전혀 진척이 없다. 검찰이나 경찰 모두 국회 눈치 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한국당이 고소한 나부터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같은 고발건을 두고도 한국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다르게 이용할 수 있단 해석도 나왔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 당시 “제가 법조인 출신이다. 우리 당력을 다 기울여서 반드시 끝까지 고소‧고발당한 분들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 민주당 관계자는 “한국당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이런 말에 총알받이처럼 앞장 서 헌신한 것 아니겠나. 이후에 공천이나 경선 과정에서 이를 ‘당 기여도’처럼 평가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민주당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악몽이 있다. 당시 문학진 민주당 의원은 2008년 상임위원회 출입문을 망치로 부숴 벌금을 받았다”며 “그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몸싸움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신중한 편”이라고 밝혔다.
한편에선 국회가 내년 3월까지 이 사건을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직선거법 제11조에 따르면 21대 총선 후보자는 선거기간 동안 구속을 피할 수 있다. 2항 ‘국회의원선거,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의 후보자는 후보자의 등록이 끝난 때부터 개표 종료 시까지 사형·무기 또는 장기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거나 제16장 벌칙에 규정된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행범인이 아니면 체포 또는 구속되지 아니하며, 병역소집의 유예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때문에 총선을 코앞에 둔 의원들이 상황을 최대한 피해보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아울러 이들의 협상 여부에도 눈길이 쏠린다. 한국당은 민주당을 향해 연일 고소 및 고발 취하를 물밑에서 요구해 왔지만, 민주당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물론 국회선진화법이나 폭행죄 등은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취하한다 해도 수사는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관계자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아무리 친고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고소를 취하하면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런 무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당을 위해 한 일 아닌가. 때문에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증거 불충분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며 “친고죄가 아니지만 상대 측에서 취하하면 ‘기소유예’ 정도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고소‧고발전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고소‧고발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의 신임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자격 검증 자리인 만큼, 수사 진척에 대한 질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이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당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원들과 상당부분 겹쳐 있다. 패스트트랙 몸싸움 당사자들이 인사청문회에 다수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분명히 이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민주당 측에선 윤 후보자를 향해 ‘왜 수사가 더디냐’라고 물을 것이고, 한국당 측에선 난감해할 것”이라며 “민주당은 비교적 당당한 입장이고 한국당은 수사가 무마되길 원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