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새 감독 부임 이후 치른 첫 대회에서 3승 12패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입한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첫 대회를 치렀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지난 6월 20일 마무리된 2019 국제배구연맹(FIVB) 여자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을 3승 12패로 마무리했다. 예선 참가 16개 팀 중 15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렇다면 라바리니호는 첫 출항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흔들렸던 대표팀
가을과 함께 시즌이 시작돼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인 배구는 매년 여름마다 국가대표 일정이 진행된다. 매년 이어지는 국가대표 일정 중 지난해 여자배구 대표팀이 크게 흔들렸다.
계속된 강행군으로 선수들이 부상으로 쓰러졌고 대회에서의 성적도 좋지 않았다. 코칭 스태프간의 불미스러운 사건도 일어나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결국 국가대표 감독직은 1년이 지나지 않아 공석이 됐다.
이후 대한배구협회는 새롭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길 인물을 해외에서 물색했고, 올해 2월 최종 계약을 확정 지으며 라바리니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외국인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3승 12패·15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라바리니 감독의 대한민국 대표팀 데뷔 무대인 VNL. 첫 대회에서 대표팀은 3승 12패, 15위를 기록했다. 불과 3년 전 올림픽에서 8강에 진출했던 대표팀이다. 따라서 이번 15위 성적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데뷔전을 치른 라바리니 감독 입장에선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해란, 양효진, 이재영 등 대표팀을 지탱해야 할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다. 10년 이상 대표팀을 이끌어 온 김연경도 소속팀 일정 때문에 3주차가 돼서야 팀에 합류했다. 이에 새얼굴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기존 대표팀 멤버였지만 백업 역할을 맡던 선수들이 경기에 중용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A 해설위원은 “냉정히 말해 ‘잘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면서도 “과거보다 멤버구성이 많이 달랐던 대회였다.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고 평가했다. 박은진, 이주아 등 신인급 선수들 이외에도 V리그 출범 이전 실업무대부터 활동해 온 베테랑 정대영의 활약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어질 2020 도쿄 올림픽 대륙간예선전을 준비하는 대표팀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며 새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새로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치르는 첫 번째 대회였다. 대표팀에 새 얼굴들이 많아진 것은 기존 선수들의 부상도 한 몫했지만 외국인 감독의 ‘선택’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A 위원은 “최근 몇 년간 대표팀 주전 멤버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 “VNL은 어느 정도 ‘테스트’ 성격도 있는 대회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보기 어려웠던 선수들이 이번에 자기 역할을 해냈다. 기존 멤버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선수들이 자극을 받으면 곧 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대한배구협회와의 최종 계약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연합뉴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경험하는 아시아 무대에서 감독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라바리니 감독은 유럽이나 브라질 등 배구 강국에서 주로 커리어를 이어왔다. 아시아인은 탄력, 파워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앞으로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맞춤 전술이나 전략도 필요하다. 세계무대에서 유렵, 남미, 아시아 등을 상대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고 했다.
#문제는 라이트
라바리니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며 “공격수 전원이 공격에 참여하는 스피드 배구를 구사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간 대표팀은 ‘주포’ 김연경에 다소 의존적인 경기를 해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연경이라는 세계적인 선수는 물론 대표팀에 축복 같은 존재였지만 때론 상대방에겐 ‘김연경만 막으면 된다’는 대응법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이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이 중요한 시점마다 대표팀의 공격 활로를 뚫어줬지만 그에게만 공격이 쏠리는 현상은 완화했다. 강소휘, 김희진, 표승주 등으로 비중이 분산됐다.
다양한 선수가 공격에 나선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흐름과 같이 라이트 포지션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흘러나왔다.
VNL 5주 기간 동안 라이트 자원으로 김희진과 정지윤이 계속해서 이름을 올렸다. 대회 일정 초반 정지윤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김희진이 코트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김희진은 일본전 21득점, 폴란드전 13득점 등으로 승리에 기여했지만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A 위원은 “국내 배구에서 라이트 포지션 문제는 선수 1~2명에게 몰아가선 안 된다. 소속팀에서는 센터에 서다가 대표팀에서 1개월 정도 라이트 훈련을 한다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표팀 라이트인 김희진과 정지윤은 소속팀에선 라이트 전문 선수가 아니다. 정지윤은 V리그 홈페이지에 센터로 분류되고 있다. 김희진도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는 자원이다. V리그에선 일부 예외적인 팀을 제외하면 팀 전력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가 라이트를 도맡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경기에 빠짐없이 나선다. 수년째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유망주도 라이트 포지션을 기피하게 됐고, 대한민국은 라이트 자원 육성에 실패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A 위원은 “선수 1~2명, 지도자 1~2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상황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향해
첫 선을 보인 라바리니호는 2020 도쿄올림픽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8월 2일부터 3일간 캐나다, 멕시코, 러시아를 차례로 상대한다. 이들 간의 맞대결에서 1위를 차지해야 올림픽 본선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대회에서 실패하더라도 아시아 예선이라는 또 한 번의 기회는 있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앞서 배구협회는 이번 예선전을 대비한 합동훈련 엔트리를 발표했다. VNL에서 빠졌던 김해란, 양효진, 이소영, 이재영 등이 돌아왔다. 이들 또한 새로운 대표팀에 적응을 해야겠지만 전력만큼은 확실히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A 위원은 “전력면에서는 확실히 나아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에 합류할 선수들이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VNL에 나섰던 멤버들과 시너지를 내야한다. 또한 전략 면에서 ‘플랜A’ 외에 다양한 전략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