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과 관련된 윤 회장의 악몽은 이번뿐 아니다. 지난 13년간은 윤 회장에게 악몽과 같은 시간이다. 2006년 말 웅진은 미국 태양광발전 업체인 썬파워와 합작으로 태양광 발전의 소재인 태양전지용 잉곳 제조·판매업체인 웅진에너지를 설립한다. 고유가 시대로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높던 당시 태양광은 재계에서 꽤 유망한 신사업으로 인식됐다. 출판, 식품, 정수기, 미디어 등 서비스 중심이던 웅진그룹 사업구조가 제조업 등 중후장대 분야로 확장되는 첫 도전이었다. 2007년에는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인수하고, 2008년 1월에는 소재기업이던 ㈜새한(구 제일합섬)을 계열사로 편입한다.
윤석금 웅진 회장이 지난 3월 웅진코웨이 인수 후 불과 3개월 만에 재매각에 나섰다. 이번에도 인수금액 중 상당액을 차입으로 충당하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최준필 기자
이것저것 다 내다판 데다 그나마 모태였던 웅진씽크빅 등 출판·교육 분야가 건재했던 덕분에 ‘그룹’ 명맥은 유지했다. 2018년에는 코웨이를 다시 인수할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1조 7000억 원의 인수자금 가운데 무려 1조 1000억 원을 차입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의 우려가 되살아났다.
특히 인수대상인 코웨이 지분은 물론 인수 주체인 웅진씽크빅 지분까지 인수금융을 제공한 스틱인베스트 등에 넘기면서 ‘절체절명’의 자금 사정이 다시 드러났다. 결국 지난 3월 인수를 완료했지만, 거액의 차입에 따르는 막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코웨이 지분을 넘겨받은 직후 13년간 근근이 버텨온 웅진에너지가 부도처리된다. 웅진그룹은 웅진에너지와 단절을 선언하고 웅진북센 매각 추진 등을 밝히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하려 애썼지만, 결구 신용등급이 강등되며 자금줄이 막힌다.
웅진은 지난 5월 초 만기가 도래한 사모사채 150억 원을 차환으로 갚으려 했지만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자 만기 금리 5%에 더해 추가 금리를 주는 금리 이벤트를 벌여야 했다. 웅진씽크빅의 주가 상승률 절반을 추가금리로 최대 8%까지 제공한다는 조건이었다. 올해 2월 사모사채로 1840억 원을 조달할 때만 해도 웅진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연 3.4~4.6% 수준이었던 만큼 최대 3배 가까이 이자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3월 말 현재 웅진의 별도 기준 현금 보유액이 69억 원임을 감안하면 향후 수백억 원에 달할 이자 갚기에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돈 잘 버는 웅진코웨이에서 배당을 받아 인수금융을 상환하기는커녕 그 전에 유동성 위기로 부도가 날 처지가 됐다.
웅진씽크빅을 지켜 그룹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웅진코웨이 재매각을 결정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웅진코웨이 자체는 매물로서 매력이 있다는 평가다. 2015년 2조 3000억 원이던 매출 규모는 올해 3조 원을 내다보고 있다. 영업이익 역시 5000억 원을 넘는다. 지난 1분기 사업 역시 호조세를 보였다.
문제는 가격이다. 웅진이 MBK에서 산 값이 1조 6850억 원이다. 주당 10만 3000원이다. 이보다는 비싸게 팔아야 한다. 재매각 발표 전 주가는 8만 원선이다. 약 30%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더라도 산 가격과 비슷하다. 결국 주가가 더 올라야 한다. 웅진코웨이의 성공적인 매각은 웅진씽크빅에 대형 호재다.
현재 웅진코웨이의 인수후보군으로는 CJ, GS, 롯데, 현대홈쇼핑 등이 거론된다. 2012년 웅진이 MBK에 넘길 때도 GS리테일, 롯데쇼핑, 중국계 가전 제조업체 캉자그룹, SK네트웍스 등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급매’로 내놓을 정도로 웅진그룹의 다급한 사정이 뻔히 다 알려진 상황이다. 최근 국내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은 대기업들에도 부담이다. 사모펀드들은 최대한 깎으려 들 가능성이 더 높다. 매각작업이 녹록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웅진의 백기투항으로 웃는 곳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이다. 지난해 MBK와 웅진 간 코웨이 거래 당시 매각 주관사를 맡았고, 이번에도 다시 재매각 주관사로 선정됐다. 거래금액의 1%가량의 수수료율만 적용해도 300억~400억 원대 수수료다. 인수금융에 따른 수익 역시 짭짤하다. 한국투자증권은 웅진에 빌려준 1조 1000억 원 가운데 8800억 원의 선순위 인수금융(5년 만기)은 4%대 후반, 나머지 2200억 원의 중순위 인수금융은 7%대 후반의 금리로 기관투자자들에게 재매각했다. 웅진에서 손을 털었다는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