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301호 대법정(형사1부, 김문관 부장판사).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두 번째 심문기일이 열렸다. 증인석에 선 두 남자는 전·현직 경찰관이다. 이들은 28년 전 부산 사하경찰서 강력팀에서 막내 경찰관과 선임 경찰관으로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과거 ‘살인범과 수사관’으로 만났던 이들이 법정에서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로 다시 만난 것이다.
28년 전 ‘살인범과 수사관’으로 처음 만났던 이들이 법정에서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로’ 다시 만났다. 재심을 청구한 최인철 씨(왼쪽)가 포승줄에 묶여 당시 피해자 역할을 맡은 경찰관과(가운데, 흰색셔츠)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사진=당시 수사기록. 문상현 기자
이번 재판은 살인사건의 누명을 쓰고 21년간 수감됐다고 주장한 장동익, 최인철 씨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열렸다. 앞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지난 4월, 이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당시 수사 경찰이 고문과 폭행으로 허위 자백을 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부산고법은 과거사위 결론이 내려진 직후 재심을 청구한 쪽의 이유를 듣고, 그 사유가 합당한지 확인하기 위해 심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예단을 엄격히 경계하고 있다. 28년 전 ‘디케의 저울(공정과 형평을 상징)’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는 취지로 재심이 청구된 만큼 이번 재판에선 수평을 맞추겠다는 취지다. 지난 5월 첫 기일에서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이 이번 재판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건 본인들의 억울함을 이제라도 제대로 된 재판을 통해서 풀어달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며 “과거사위 결론을 비중 있게 다루겠지만, 공정한 판단을 위해선 당시 경찰관의 직무상 고문, 가혹 행위 등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 이들을 불러 증언을 듣고 재심 여부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당신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
“증인은 재심 청구인의 옷을 벗기고 손목을 묶은 후 무릎과 팔 사이에 쇠파이프를 꽂아 거꾸로 매달은 적이 있습니까.”(박준영 변호사)
“그런 적 없습니다. 당시 경찰로 임용된 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수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현직 경찰관)
가장 먼저 증언에 나선 건 현직 경찰관이다. 앞서 증인선서를 큰 목소리로 읽었던 그는 변호인의 질문에도 굵고 큰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는 고문과 폭행 사실을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를 검거하게 된 사유와 장소 등은 기억했지만, 그외 구체적인 사실은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관은 “당시 막내라 잔심부름꾼에 불과했다. 선임들이 커피 타오라고 하면 타오고, 식당에서 밥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는 일밖에 하지 않은 때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수사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간단한 조서조차 쓸 줄 몰라 최 씨와 장 씨에 대한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요신문’이 취재과정에서 확인한 당시 수사기록에는 이 현직 경찰관은 총 6번 조사에 관여했다. 최 씨, 장 씨의 진술조서 등을 보면, 펜으로 적은 그의 실명과 서명, 날인이 기재돼 있다.
수사기록에서 확인되는 그의 ‘흔적’에 대해 박 변호사는 물론, 검찰 측에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은 “조서를 쓸 줄 모르고 조사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수사 기록에 본인의 서명과 날인이 있는 사유를 설명해 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직 경찰관은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다른 선임이 한 것 같다. 내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재판부의 허락을 구해 질문을 한 장 씨와 최 씨에게 자신을 기억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장 씨는 “나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청각이 예민해 증인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며 “물고문을 받고 나와 젖어있던 나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말을 걸었던 당시 목소리가 지금의 그 목소리다”라고 말했다. 장 씨와 최 씨는 질문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이 있었던 날짜와 장소,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지만 그는 “조사에 참여하지 않아 모른다. 30여 년이 지난 만큼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 증인으로 나선 전직 경찰관도 고문과 폭행을 부인했다. 전직 경찰관은 “어떤 사건을 맡든 확정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수사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고문이든 폭행이든 할 이유도 없고 생각도 해본 적 없다”며 “38년 4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단 한차례의 징계도 받지 않고 정년을 맞아 퇴직했다.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 사건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모른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관처럼 당시 수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변호인과 재심청구인들의 거듭된 고문과 폭행 묘사와 질문에도 전직 경찰관은 “그런 일은 하지도 않았고 주변의 사례도 듣지 못했다”며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30년 전 일을 어제처럼 기억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똑똑히 기억한다는 재심 청구인과 기억나지 않는다는 증인들의 공방이 거듭되면서 재판은 공전했다.
# 현장검증, 그리고 ‘국방색 옷’
이 과정에서 사진 한 장이 분위기를 바꿨다. 먼저 수사기록을 보면, 장 씨와 최 씨가 저지른 범행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외에도 총 20여 건이다. 이 가운데에는 당시 부산 중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을 상대로 저지른 강도 범행도 포함돼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의 수법이 비슷하다며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비슷하다며 장 씨와 최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전직 경찰관은 이번 재판에서 경찰관을 상대로 한 강도사건에 대해 “장 씨와 최 씨의 수사가 끝나고, 검찰에 넘겨진 이후에나 그 사건을 알게됐다”며 “그 수사에는 참여하지도 않았고 강도를 당했다는 경찰관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인철 씨가 질문 과정에서 ‘경찰관 강도사건’ 현장검증 과정에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현장검증 과정에서 승용차가 사용됐는데, 전직 경찰관의 소유였으며 특히 그가 피해자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최인철 씨는 전직 경찰관이 현장검증 당시 ‘국방색 옷’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최 씨가 묘사한 이 인물은 누구였는지 특정되지 않고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가 곧바로 수사기록에서 최인철 씨가 묘사한 당시 현장검증 사진을 찾았고, 법정에 설치된 화면에 비췄다. 사진을 확인한 전직 경찰관은 “내 차가 맞다. 사진 속 인물도 내가 맞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인신문을 마친 이후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현장검증 사진에 대해 “모른다. 할말 없다”고 말했다.
최인철 씨(왼쪽)와 이번 재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전직 경찰관(국방색 점퍼, 가운데). 경찰관이 현장검증 과정에서 피해자 역할을 맡아 재연하고 있다. 전직 경찰관은 증인 신문 초반 조사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모른다고 주장했으나 사진을 확인한 이후 자신임을 시인했다. 사진=당시 수사기록. 문상현 기자
재판부는 증인으로 출석한 두 경찰관에게 공통적으로 “당시 고문과 폭행이 있었다는 과거사위원회 결론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라고 물었다. 현직 경찰관은 “처음 조사를 하겠다고 하고 해서 협조하려고 했지만,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관은 “고문이 있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지만 어떻게 항변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재판에서 장 씨와 최 씨가 지목한 ‘고문 경찰관’은 총 5명이다. 다른 세 명의 경찰관은 건강이 악화됐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출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사건 책임자였던 형사과장과 팀장, 조장이다. 장 씨와 최 씨는 이들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와 가혹행위를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세 명의 경찰관 가운데 일부는 이 사건을 검찰에 넘긴 이후 특진했다. 이번 증인으로 출석한 두 명의 경찰관은 특진하지 못했다.
재판부 역시 출석하지 않은 세 명의 경찰관에 대한 증인 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시 증인 소환장과 함께 집행관 송달을 시행할 방침이다. 그래도 출석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부터 구인까지 등 순차적으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오는 7월 18일 열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