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전격 회동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으로 깜짝 월경을 한 모습. 연합뉴스
취재진과의 만남에서도 “지켜보자. 그가 거기 있다면 우리는 서로 2분간 보게 될 것이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하지만 그것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한 전직 외교관은 “트럼프다운 발상이다. 이런 식의 정상 간 회동 제안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파격 그 자체”라면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 아마 실무선에서 긍정적인 얘기가 오간 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의 DMZ 회동 가능성은 일찌감치 거론됐다. 앞서 6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G20 회의에 출발하기에 앞서 “어쩌면 그(김정은)와 다른 형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DMZ를 방문할 때 김정은 위원장과 잠깐 만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국무부 협상팀이 먼저 입국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를 뒷받침했다.
트럼프 돌발 제안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1부상은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이와 관련한 공식제기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현재 확정된 것은 없다. 북미간 대화가 이뤄지길 바라는 우리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DMZ 회동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6월 29일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 조율 중인 것으로 안다. 어떤 식으로든 둘이 악수를 하는 모습이 연출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은 한미 정상 간 만남에서도 주요 이슈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문 대통령에게 “내 트위터를 보셨나”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이 ”봤다“고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함께 노력해보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하나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트윗 내용대로 성사되면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굉장히 짧게 만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사상 초유의 DMZ 회동이 성사됐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사이가 상당히 좋다”면서 “내가 처음에 대통령이 됐을 때부터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정전 선언 이후 66년 만에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이 만난다”면서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기대에 가득찬 응원을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3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회동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DMZ 내 오울렛 초소를 함께 방문했다. 이곳은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25m 떨어져 있는 주한미군 최북단 초소다. 양국 정상이 함께 DMZ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복이 아닌 양복 차림으로 초소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DMZ가)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북미) 정상회담 이후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판문점으로 이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3시 45분경 남측 군사분계선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대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대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를 나눈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땅으로 걸어갔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넘어갔던 곳이다. 둘은 10m가량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고, 남측을 바라보며 사진 촬영을 했다. 그리고 다시 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판문점으로 이동했다.
자유의집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영광이다. 이렇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김 위원장과의 우정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면서 “이 같은 행동 자체가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남다른 용단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걸어갈 때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초청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위원장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북미 정상이 자유의집으로 오자 문 대통령이 나타났다.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세 정상은 자유의집 앞에서 3분간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을 사이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섰다. 그 후 문 대통령을 제외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양자회담이 열렸다. 김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우리가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상봉이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만나는 것 자체가 역사적 순간이다. 우리의 관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정상은 약 50분간 단독 회동을 가졌다. 싱가포르, 하노이에 이은 3차 정상회담이 열린 셈이다. 회담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함께 김 위원장을 배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인 접근 방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오늘의 만남을 통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프로세스가 큰 고개를 넘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