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화성시 ‘바둑의 전당’ 설립 협약(MOU)식. 이전 타이밍을 놓친 후 화성시장(채인석, 왼쪽)도 바뀌었다. 사업은 아직 표류 중이다.
한국기원이 타이밍을 놓친 사례로 화성시 이전 문제도 있다. 2015년 9월 한국기원은 화성시와 ‘바둑의 전당’ 설립 협약(MOU)을 체결했다. 화성시는 동탄1 신도시 내 요지(석우동 58번지)를 제안했다. 2016년 착공, 2018년 준공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애초에 이곳은 경기장을 포함한 바둑관련 시설과 대규모 쇼핑몰이 함께 들어설 계획이었다. 바둑경기장 주변에 유동인구가 많으면 따로 관중을 모을 필요도 없기에 기원에선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집행부에선 조금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결단을 미뤘다. 시기가 조정되면서 이전 장소도 동탄 2신도시 내 외딴 공원 부지로 바뀌었다. 예전 2017년 바둑대축제가 열렸던 장소다. 예전 한국기원 한 고위관계자는 “차라리 화성 이전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면 지금 항공전문학교로 바뀐 한국기원 옆 건물을 싸게 사서 기원 전체를 리모델링할 찬스가 있었다”라고 한탄했다. 지금도 이 사업은 한 발짝도 못 나간 채 표류 중이다. 바둑의 전당 건물공사는 아직 삽도 뜨지 못했다.
좋은 타이밍을 맞추는 일도 어렵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건 더 큰일이다. 바로 바둑TV 문제다. 1995년 12월1일 바둑전문 케이블방송 B-TV가 출범했다. 본격적인 바둑영상시대를 연 B-TV는 몇 년 못 가 초기 자본금 47억 원이 잠식상태에 빠졌다. 이후 자본금증식 과정에서 한국기원이 가진 대주주 지위도 대기업에 넘어갔다. 이후 경영권이 온미디어와 CJ E&M까지 이어졌다. 2015년 8월 한국기원 구 집행부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바둑채널 개국을 선언했다. CJ E&M은 바둑TV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바둑계를 떠났다. 기존 PD들은 2016년 1월에 인사발령을 받고 tvN·OGN·중화TV·투니버스 등 CJ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바둑TV는 1995년 12월 케이블방송으로 개국했다. 당시 스튜디오 모습.
한국기원 안으로 들어온 바둑TV는 지난 3년 동안 매입대금을 지불하느라 허덕였다. “바둑이 위기다. 바둑계에서 파워매체인 바둑TV가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 동반자가 되어야지 기업 이익 극대화만 추구해선 안 된다. 바둑으로 번 이윤이 다시 바둑계로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라고 말했지만, 선순환은 없었다. 애초에 명분으로 내세웠던 ‘공익성’도 찾아보긴 어려웠다. 특히 지난 8개월 동안 시청률과 매출이 30% 이상 급락했다. 최근 유튜브 등 외부 시청환경 변화가 있었지만, 중앙일보 계열 집행부가 떠나면서 영업공백이 생긴 탓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바둑TV본부장 자리도 비었다. CJ에 지급할 마지막 대금이 남아있는 올 하반기가 최대 위기다. 최근 바둑TV 상황을 사무총장에게 물으면 “우선 경험 많은 훌륭한 선장을 모셔야 한다”고 말했었다.
숨넘어가기 직전 바둑TV다. 이 타이밍에 바둑방송 경력 20년 차 ‘명의’가 왔다. 임진영 본부장이다. 7월 1일부터 바둑TV 사령탑에 선다. 아이러니하게 그는 한국기원으로 바둑TV가 넘어갈 때 마지막 본부장이었다. 지금까진 CJ E&M 계열 ‘중화TV’ 채널책임자로 있었다. 사실 그는 방송인 이전에 ‘바둑인’이다. 대학시절 기우회 ‘빈삼각’에서 바둑에 깊이 빠졌고, 대학 패왕전 등에서 우승하며 전국구 강자대열에 섰다. 학생 왕위전 출신이 결성한 ‘푸른돌 기우회’에서 맺은 인연으로 95년부터 방송 일을 시작했다. SBS배와 LG배 등을 담당한 바둑방송 외주제작 프로덕션이었다. 바둑TV 개국과정도 바로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나름 공중파 제작노하우를 익혔습니다. 지금 K바둑방송의 전신 스카이바둑 등 대부분 바둑방송의 개국과정에 참여했습니다. 바둑TV와 인연은 2002년 말부터 시작되었죠. 거의 20년 넘게 바둑방송을 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은 안 해본 게 드뭅니다. 바둑TV 제작PD 시절엔 바둑리그를 주로 담당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임진영 바둑TV 본부장. 숨넘어가기 직전의 바둑TV에 경력 20년차 ‘명의’가 왔다.
바둑계를 떠나도 내셔널리그 선수로 뛸 정도로 바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와 10여 년을 함께 일했던 피디는 “임진영 본부장은 누구와도 잘 지내는 스타일이고 인망이 높다. 일처리는 예리하고, 아주 꼼꼼한 편이다. 사석에선 후배 직원들에게 편하게 대해주기에 ‘독한 상사’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별칭조차 없다”라고 평했다. “대기업, 고액연봉을 걷어차고 다시 돌아간 건 바둑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바둑계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뼈둑인(뼈까지 바둑인)’이다”라고 덧붙였다.
임진영 본부장에게 앞으로 바둑TV가 가야 할 방향을 묻자 “공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야 합니다. 어려운 길이죠. 법인이나 주식회사가 아닌 한국기원 소속 조직인 바둑TV라면 공익성에 초점을 두고 수익이 부산물로 따라오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건전한 운영과 재투자를 생각하면 반드시 재미와 수익성도 추구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한국기원 바둑TV가 10년 전 시행착오를 다시 하는 걸 보고 항상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3년간 바둑TV가 매출이 있어도, 상환금 때문에 사업 전반이 움츠러들었어요. 양적으로 줄이다보니 질적 저하도 따라왔습니다. 지난 바둑TV 20년 역량을 회복하고 싶어요. 이 간극을 메울 인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영입할 계획입니다. 기존에 잘못된 조직문화가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방송 기술면에서 모자란 점이 있다면 채워야겠지요. 편성·제작·채널운영 등을 전반적으로 살피겠습니다. 무엇보다 영업조직을 새로 구축해야 해요. 본부장 혼자 힘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기존 구성원의 협조가 절실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