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 식품·유통 부문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며 “미국 동부와 서부에 공장을 짓는 걸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이어 “그간 대미 투자 금액으로 30억 달러(약 3조 4989억 원)를 투입했고, 올 해에만 20억 달러(약 2조 3326억 원)를 집행했다”며 “향후 10억 달러(약 1조 1663억 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CJ그룹의 이같은 미국 투자 계획은 손 회장이 즉흥적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다. CJ그룹은 ‘GCP(Great CJ Plan) 2020’이라는 비전을 세우면서 글로벌 사업의 투자 계획 등을 이미 설정해 놓은 상태다. 손 회장이 밝힌 투자액은 해당 목표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게 CJ 측의 설명이다.
손경식 CJ그룹 회장. 사진=고성준 기자
어쨌든 손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고, 투자 계획까지 밝히면서 CJ그룹의 대표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CJ그룹을 대표하는 회장은 손 회장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다. 현재 CJ그룹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손 회장의 공동 회장 체제다. 손 회장은 이 회장의 모친 손복남 CJ 고문의 동생. 즉, 이 회장의 외삼촌이다.
손 회장은 1994년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해 25년째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02년 회장에 취임해 손 회장보다 늦게 회장 업무를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이 회장이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고,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재계에서 큰 존재감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이재현 회장을 CJ그룹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회장은 CJ그룹 지주회사인 CJ(주)의 최대주주이며 이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CJ ENM 상무와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도 이미 CJ그룹 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CJ그룹의 정통성은 이재현 회장이 갖고 있는 셈이다.
이재현 회장이 취임할 당시 CJ그룹은 손 회장이 대외업무를 담당하고, 이 회장이 전략업무와 내부사업 관리를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손 회장은 2005~2013년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3월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에 취임하는 등 CJ그룹 외부에서도 재계를 대표하는 활동을 적지 않게 해왔다. 실제 손 회장이 CJ그룹 회장 자격이 아닌 경총 회장 자격으로 매스컴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손 회장과 이 회장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지어서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 회장이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2013년 7월 이후 손 회장은 약 4년 간 CJ그룹 경영에 힘썼다. 이 기간 동안 CJ에 대형 이슈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실적 성장을 이루면서 무난한 경영을 이끌었다. 박근혜 정부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 퇴진 압박을 넣는 등 고난도 없지 않았다.
재계 일부에서는 2017년 이재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손 회장이 대외 업무에 매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총 회장에 취임한 것도 대외 업무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현재 CJ그룹 내부 의사결정은 손 회장과 이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이 의논해 결정하며 특정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는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손 회장 외에 박근희 CJ그룹 부회장도 대외적으로 CJ를 대표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손 회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손 회장은 고령이고, 이 회장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서 자리가 있으면 박 부회장이 주로 참석하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CJ그룹 주요 사업 현황은? CJ그룹의 사업군은 크게 식품, 생명공학, 물류·유통, 엔터테인먼트·미디어로 나뉜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CJ제일제당 식품 부문의 매출은 1조 7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CJ푸드빌, CJ프레시웨이 등 다른 식품 계열사의 매출을 합치면 2조 5000억 원이 넘어 그룹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담당한다. CJ그룹 식품 사업의 매출은 성장세에 있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식품 사업은 1인 가구 및 여성 근로자 증가 등 트렌드가 변화하는 추세인데 CJ가 이를 반영한 식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한 게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CJ 본사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생명공학 부문 매출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CJ의 생명공학 매출은 1조 2157억 원이었지만 올해 1분기에는 1조 1005억 원으로 줄었다. CJ의 생명공학 사업은 주로 식품첨가제와 사료첨가제 제조이며 CJ제일제당에서 담당한다. 차재헌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생명공학 부문 매출 하락에 대해 “사료첨가제의 감산 및 판가하락과 중국 등에서의 축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사료부문 적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CJ그룹의 물류·유통은 택배회사 CJ대한통운과 올리브영을 운영하는 CJ올리브네트웍스로 대표된다. 두 회사 모두 업계 1위인만큼 CJ그룹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물류·유통 부문 매출은 2조 9070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증가했으며 CJ그룹을 대표하는 식품 부문보다도 더 많은 매출을 거뒀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부문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 알려졌다. CJ그룹은 CJ ENM, CJ CGV 등을 통해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올해 1분기 1조 2549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 CJ CGV는 2016년 터키 최대 극장사업자인 ‘마르스’를 인수하는 등 사업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LG유플러스가 유선 방송업체 CJ헬로 인수를 앞두고 있어 당장의 CJ그룹 미디어 사업의 매출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CJ그룹은 매각 자금을 활용해 미디어 사업을 재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CJ헬로 자회사인 CJ ENM은 “(CJ헬로) 지분 매각을 통해 프리미엄 IP(지식재산권) 확대 등 콘텐츠 사업 강화, 디지털 및 미디어 커머스 사업 확대, 글로벌 성장 동력 확보 등 미래성장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게 됐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