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실패설에 휘말린 에이치엘비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사진은 에이치엘비 홈페이지 캡처 화면.
에이치엘비는 지난 6월 26일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 탑라인 결과를 일부 공개했으나 구체적 수치 등이 포함되지 않아 임상 실패설이 제기됐다. 다음날인 27일 기업설명회를 열고 해명에 나선 자리에서 진양곤 에이치엘비 대표가 오히려 “FDA(미 식품의약국) 신약 허가 신청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됐다.
진 대표의 발언 이후 주가는 더욱 곤두박질쳤다. 지난 6월 26일 7만 2000원이던 주가(종가 기준)가 28일 3만 5300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에이치엘비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대표 명의의 주주 호소문과 자회사 LSK바이오파마(LSKB)의 개발 책임자와 부사장 인터뷰 영상 등을 게재했다. 호소문에서 진 대표는 “임상 실패가 아닌 ‘임상 지연’임을 강조하고 싶다”고 전했다.
메지온 또한 같은 시기 단심실증 치료제 ‘유데나필’ 임상 3상 실패 루머로 곤욕을 치렀다. 메지온은 지난 6월 28일 임상 실패설을 진화하기 위해 긴급 설명회를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 박동현 메지온 대표가 “(임상 결과는) 하느님만 알 수 있다”, “리스크 없는 신약개발 회사가 어디 있나”고 발언하면서 투자자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지난 6월 26일 11만 4900원이던 주가는 이틀 만인 28일 6만 3000원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제약·바이오업계 전반에 불신이 확산되려 할 즈음, 지난 1일 유한양행의 1조 원 규모 신약 기술 수출 계약 소식이 알려지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유한양행발 호재는 제약·바이오주 시총 상위권 기업들의 동반 상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증시와 산업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식시장의 풍문이 바이오기업과 산업 전반을 흔드는 것에 대한 우려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임상 3상의 성공확률은 63% 정도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중간에 실패하거나 지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최근 어려움을 겪은 두 기업의 대표들은 풍문에 해명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신약 개발 어려움의 실체를 알리고 방향을 제시했으나 되레 비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약 개발은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성공 확률은 매우 낮아 위험 부담이 높다. 한국바이오협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글로벌 제약시장 임상 파이프라인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돼 시판으로 이어질 확률은 1만 분의 1 정도다. 스위스계 제약기업인 로슈는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는 데 평균 1조 1667억 원, 700만 874시간의 연구, 6587건의 실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신약 개발은 성공했을 경우 20년이라는 특허 기간 동안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들은 블록버스터 신약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매출의 상당 부분을 신약에 의존하고 있다. 2006년 화이자의 ‘리비토’는 단일 제품으로 13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2015년 애브비의 ‘휴미라’는 141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은 여전히 복제약 중심의 바이오시밀러 생산·유통에 치우쳐 있다. 한 대형 제약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신약 개발 여건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대기업들도 대부분 바이오시밀러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데,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매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중소·벤처라는 점에서 증시발 풍문은 더욱 치명적이다.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은 연구개발(R&D) 투자금 유치를 위해 특례상장 등 기업공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증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풍문과 롤러코스터 주가 탓에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휘둘릴 수 있는 것이다.
앞의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제약·바이오 회사의 가치는 회사 자체보다 주식시장 플레이어들이 만든 것”이라며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투자행태에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유망 기업이 좌우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술 수출과 마일스톤(기술 수출료) 등도 유의미한 지표지만, 투자자들은 그 이전에 파이프라인의 공고함과 글로벌 임상 진행 파트너사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임상 논란 후폭풍에 SK바이오팜 상장 늦춰지나 올해 하반기 IPO(기업공개) 시장 최대어로 꼽히던 SK바이오팜의 상장이 늦춰질 것으로 관측된다. SK㈜가 지분을 100% 보유한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을 담당한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월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5억 달러 규모의 기술 수출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시장에서는 SK바이오팜의 IPO 추진이 SK㈜ 주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와 일부 바이오기업의 임상 3상 논란이 불거지면서 연내 상장을 추진하던 SK바이오팜이 일정을 늦추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SK바이오팜은 지난 4월 대표 주관사로 NH투자증권을 선정하고 코스피 상장을 위한 실사를 진행해왔으나, 최근 오는 11월 예정된 세노바메이트의 FDA 판매허가 여부 결정 이후 공모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같은 관측에 대해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상장 추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시기를 논의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며 ”시장의 추측일 뿐 상장이 늦춰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