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원내대표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최근 이 원내대표의 최대 악재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장직을 둘러싼 민주당과 정의당의 ‘진실공방’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원내대표 교섭 단체인 여야 3당(민주·자유한국·바른미래당)은 국회 정상화 명목으로 정개특위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활동을 오는 8월 말까지 연장하고 각 특위 위원장을 민주·한국당이 1개씩 각각 맡기로 지난 6월 28일 합의했다.
활동 기간 연장 전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맡았다. 장외투쟁을 불사한 자유한국당의 극한 저항에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열차’가 출발할 수 있었던 것도 소수당이자, ‘심다르크(심상정+잔다르크)’ 역할이 컸다. 앞서 여야 4당(민주·민주평화·바른미래·정의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주도했다.
이는 민주당에 양날의 검이었다. 제1당인 한국당의 등원 거부는 한국당 몫의 특위 위원장과 위원 1석 배분으로 해결했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한국당 몫의 관철로 합의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국회 정상화로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역으로 범진보연대는 붕괴했다. 정개특위 위원장직을 놓친 정의당 내부는 격앙됐다. 당은 이를 ‘심상정 패싱’으로 규정했다. 심 의원은 “굴욕적 해고”라고 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정미 대표는 “진짜 못났다”고 힐난했다. 여영국 대변인은 “배신의 정치”라고 성토했다.
‘배신의 정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인 2015년 여당 내 여당 역할을 했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을 찍어낼 때 쓴 말이다. 정치권에선 ‘결별의 표현’으로 쓰인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앞으로 민주당을 도울 일은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화들짝 놀란 민주당은 7월 4일 의원총회에서 ‘정개특위냐, 사개특위냐’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정개특위를 맡는 것으로 범진보연대 파국을 봉합하려는 이 원내대표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관할하는 사개특위를 맡아야 한다는 강경파가 대립했다.
민주당 속내는 복잡하다. 앞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전에 (정의당과) 교감했던 내용과 반응, 이런 것이 달라서 저로서도 난감하다”고 전했다. 당 한 의원도 “제가 알기로도 심 의원 측에 (정개특위 위원장직 교체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한 당직자는 “선거제 개편은 당의 존립이 걸린 문제”라며 “원내 교섭단체 합의 문건에 정개특위 위원장직 교체 건이 있었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었겠냐”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이후다. 민주당은 내년 1월까지 선거제 패스트트랙을 처리하기로 했다. 다만 이 원내대표가 또다시 한국당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한다면, 범진보진영 간 입법 공조 균열이 또다시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여의도 안팎에선 민주당과 한국당이 선거제와 공수처 처리 등을 놓고 딜을 할 것이란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소선거구제의 최대 수혜자인 두 당이 선거제 유지를 위한 짬짜미를 하되, 사법 개혁안은 여당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게 ‘민주·한국당’ 선거제 연대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여전히 물음표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당과 손을 잡는 담합”이라고 일갈했다.
실제 그랬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당시 진보진영은 ‘석패율제(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애초 석패율제에 반대하던 민주당이 돌연 한나라당(현 한국당)과 이를 잠정 합의한 이중적 행보가 갈등의 단초였다.
당시 혁신과통합에 몸담았던 문재인 대통령조차 “(지역주의) 해결에 미흡하지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며 사실상 ‘조건부 찬성’에 가까운 의사를 밝혀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거대 양당이 언제든 짬짜미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이 원내대표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원내대표는 민주당 5·8 원내대표 경선 당시 ‘부드러운 리더’ 콘셉트로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김태년 민주당 의원을 꺾었다. 민주당 당직자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이인영이 변했다”라는 말이 나왔다. 나경원 한국당·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호프 회동은 이 원내대표의 운동권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이들의 호프 회동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맥주 잘 사주는 형님’으로 포장됐다. 그게 다였다. 5∼6월 국회가 연이어 공전하자 이 원내대표는 다시 ‘까칠 운동권 형’으로 회귀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이 원내대표를 향해 “매번 한국당에 끌려가는 것 같다”며 평가 절하했다.
‘이인영 한계론’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청 내 이른바 ‘문(문재인)의 사람들’에 포위돼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도 문제다. 당·청 간 권력에선 청와대 ‘노영민·강기정’ 라인이 절대적인 힘의 우세를 보인다. 더구나 이슈 메이커도 아니다. 이 원내대표보다는 조국 민정수석과 김상조 정책실장의 파급력이 더 크다. 당 내부에선 양정철 원장이 사실상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정치권의 모든 눈이 ‘친문 감별사’ 역할을 하는 양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다. 어디에도 이 원내대표의 공간은 없다.
이 원내대표의 당내·외 입지와 86그룹의 차기 공천은 반비례한다. 앞서 민주당 5·8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당 의원들이 비주류의 반란에 표를 던진 것도 당 주류인 ‘이해찬·김태년’ 라인을 제어하려는 포석이 강했다. 당 지도부에 강성 운동권을 박아 당 주류의 전횡을 막는 방패막이로 사용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 리더십이 계속 흔들린다면, ‘86그룹 물갈이론’으로 확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에도 당 내부에선 ‘이인영·우상호’ 등으로 대표하는 운동권 그룹의 공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다. 당시 김상곤 혁신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동학 혁신위원은 이 원내대표를 향해 ‘하방론’, ‘적진 출마론’ 등으로 공격했다. 1987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임미애 혁신위원도 “15년간 뭐했느냐”는 청년들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여권 내 권력 역학구도는 이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보다는 청와대가 우위를 보일 것”이라며 “차기 총선 공천 때도 이 같은 힘의 쏠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