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GS그룹의 총수 일가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 (주)GS의 지분을 앞다퉈 늘리고 있다. 그동안 GS그룹은 수십 명의 가족들이 ‘공동 경영’을 하고 있어 차기 후계 구도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특히 최근 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데다, 허창수 회장이 수 년 내로 후계구도를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인 만큼 이번 총수 일가 지분 변동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GS그룹 총수 일가가 지주사 ㈜GS 지분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정보기술(IT) 회사 GS네오텍은 최근 (주)GS 주식 3만 7500주(0.04%)를 장내 매수했다. 매입 가격은 약 18억 7860만 원이다. 이에 앞서 가죽 가공회사 삼양통상도 (주)GS 주식 20만 주(0.22%)를 장내에서 사들였다. 두 회사가 (주)GS 주식을 매입해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GS네오텍과 삼양통상은 GS그룹 총수 일가의 ‘가족회사’다. GS네오텍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인 허정수 회장 일가가 지분을 100% 갖고 있다. 허정수 회장이 99%, 아들 허철홍 GS칼텍스 상무와 허두홍 씨가 각각 0.48%를 보유하고 있다. 삼양통상은 허창수 회장의 사촌인 허남각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다. 현재 허남각 회장의 장남 허준홍 GS칼텍스 부사장이 지분 22.05%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주)GS는 허창수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와 사회복지법인 동행복지재단 등 약 49명의 특수관계자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진 지분총합은 47.99%였는데, GS네오텍과 삼양통상이 지분을 취득하면서 48.03%로 늘었고 특수관계자 수도 51명이 됐다.
두 회사가 늘린 (주)GS 지분은 단순 수치로만 보면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총수일가가 가진 지분을 뜯어보면 사정은 다르다. 개별 구성원들이 지분을 2% 가량씩 나눠가지고 있어서다. 허창수 회장(4.75%)과 그의 사촌 허용수 GS에너지 사장(5.26%)을 제외하면 총수 일가 대부분의 지분 격차가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GS그룹 총수일가의 ‘가족회사’가 그룹 지주사 (주)GS의 지분을 잇따라 사들이는 모습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가족회사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는 건 전형적인 한국 재벌그룹의 승계 방식과 닮았기 때문이다. 지분 매입을 할 때 개인보다 회사의 여유자금을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분 매입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실제 삼양통상의 최대주주인 허준홍 GS칼텍스 부사장은 지난 5월 별도로 (주)GS 주식 8만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2.04%로 늘렸다. 이번에 삼양통상이 취득한 지분을 단순 합산하면 허 부사장이 가진 (주)GS 지분은 2.25%인 셈이다. 특히 허 부사장의 아버지 허남각 회장은 지난해부터 (주)GS 지분을 21만 2430주를 팔았다. 아버지가 팔았던 물량만큼 아들이 사들인 모양새가 됐다.
허 부사장 외에 다른 총수 일가 4세들도 꾸준히 (주)GS 지분을 늘리고 있다. 속도가 가장 빠른 건 허서홍 GS에너지 전무다. 그는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으로, 총수 일가 4세 가운데 비교적 늦게 임원이 됐지만 2017년 말 1.24%였던 지분율은 지난 4~5월 집중적으로 늘어 현재 1.6%까지 높아졌다.
다른 총수 일가 4세와 비교해 보면, 허 전무의 지분율은 허세홍 GS칼텍스 사장(1.54%)보다 높다. 허세홍 사장은 총수 일가 4세 중 가장 연장자로, 가장 먼저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후계구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또 다른 유력 승계 후보자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은 (주)GS 지분율(0.53%)에 큰 변화가 없어, 허서홍 GS에너지 전무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은 (주)GS 지분보다는 GS건설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어 건설 경영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밖에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의 장남과 장녀인 허원홍(0.61%) 씨, 허성윤(0.23%) 씨 및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선홍(0.26%) 씨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GS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 역시 모두 GS그룹 오너일가 4세다.
GS그룹 역시 최근의 총수 일가의 지분 변동에 대해 “주가가 저평가된 데 따른 단순 취득”이라며 선을 그었다. 실제 미성년자인 4세들도 앞서의 다른 4세들과 비슷한 시기 지분을 늘렸다. 허용수 GS에너지 사장의 두 아들은 현재 10대인데, 지난 5월에만 각각 9차례, 8차례에 걸쳐 GS 주식을 매수했다. 이들의 지분율은 지난해 말 0.9%에서 1.02%로, 0.36%에서 0.47%로 각각 늘었다.
재계 일각에서도 단순 지분변동 만으로 후계 구도나 ‘왕좌의 게임’을 점치기는 무리라는 시각이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GS그룹은 특정 일가에 권력이 쏠리는 걸 엄격히 경계해 지분율을 관리하고 있고, 가족회의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주)GS 지분율 변화만으로 ‘특별한 일’을 관측하기는 이르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룹 지주사에 대한 지분 확보는 승계를 위한 필수 요건인데다, 허창수 회장이 올해 초 주주총회를 통해 임기를 연장했지만 최근 주요 그룹 사이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수년 내에는 후계구도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밖에 (주)GS 주주명부에 가족회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을 두고, GS그룹이 향후 공동경영체제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총수일가 3세에서 4세로 넘어가면서 인원이 크게 늘어났고, 그 다음 세대는 더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지금처럼 개인별로 지분을 관리하는 것보다 가족회사를 활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어서다. 여기에 법인을 통해 지분을 매입하는 건 개인이 사들이는 것보다 세금 부담도 줄일 수 있고, 개인 자금을 쓰지 않고도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