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요람’이라 불리는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은 여전히 U-20 대표팀 선수들의 얼굴로 뒤덮여 있다.
#새로운 스타 탄생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지난해 대한민국 축구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실패를 맛봤지만 팬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는 데 성공했다. 2패를 기록했음에도 세계최강으로 불리던 독일을 상대로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축구를 향한 관심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서 금메달을 획득한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들이 뒤를 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현우, 황의조, 김문환 등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했다.
U-20 대표팀의 선전으로 또 다른 스타들이 쏟아졌다. ‘준우승 신화’를 만들어낸 이들은 생애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귀국 직후 지난 6월 17일 공식 환영식 이후 19일에는 청와대 만찬에 초청됐다. 이튿날인 20일에는 ‘U-20 월드컵 대표 K리그 미디어데이’라는 타이틀로 취재진 앞에 섰다.
소속팀에 복귀했지만 이들의 재회는 계속됐다. 지난 7월 1일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또 한 번 모였다. 이례적으로 대한축구협회가 마련한 ‘격려금 전달식’ 행사였다.
#K리그로 번진 U-20 마케팅
그 사이에도 크고 작은 행사가 쉼 없이 지속됐다. 대표팀 21명 중 15명이 K리그에 소속돼 있다. 선수들을 보유한 구단들은 홈경기에서 저마다 ‘환영 행사’로 어린 선수들을 맞이했다. 경기 전, 하프타임 등에 선수들 운동장에 나와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는가 하면, 일부는 경기 종료 이후 노래를 부르는 등 ‘간이 팬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K리그 각 구단들은 자체 보유 채널에 U-20 대표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FC 서울, 대전 시티즌, 광주 FC, 강원 FC 유튜브 화면 캡처
또한 각 구단이 보유한 미디어 채널에서도 U-20 멤버들이 전면에 나섰다. 선수들은 구단 채널을 통해 월드컵을 치른 소감,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전했다. 각 구단 홈경기 홍보 포스터 또한 이들의 얼굴로 도배됐다.
K리그에 소속돼 있지 않지만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도 있다. 수년간 연령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온 정정용 감독은 하늘색 유니폼을 입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고향 대구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대구 FC 홈경기에 시축자로 나선 것이다.
골든볼(최우수선수상) 수상자 이강인도 인천 유나이티드 홈경기 시축에 나섰다. 시축에 앞서 진행된 사인회에서는 새벽부터 대기열이 이어졌고 순서를 두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경기가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는 평균치를 웃도는 9061명의 관중이 몰렸다. “1년에 1~2번 정도 경기장에 온다”던 팬도 “오늘은 이강인이 온다기에 특별히 왔다”고 말했다. 관중석엔 아이돌 팬들이 사용한다는 일명 ‘대포 카메라’가 관측되기도 해 이강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전부터 큰 관심을 받던 이강인은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귀국 이후 대표팀의 공식 일정 외에는 그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방송 출연이나 언론 인터뷰 등의 일정은 따로 잡지 않고 있다. 2~3주 이상 줄줄이 인터뷰 일정이 이어져온 동료들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아직은 어리다’는 이강인 측의 판단이 그 이유였다. 소속팀 발렌시아 또한 지난 2018-2019 시즌 공식 일정 외에 별도 인터뷰 금지 조치로 ‘특별관리’를 해왔다. 다만 이번 인천 시축은 인천 태생 이강인과 인천 구단 소속 선수 김진야 부친간 친분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이강인 방문 소식에 인천축구전용 경기장에 더욱 뜨거워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방송가에서도 ‘U-20 대표 모시기’
지난 1일 열린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기념 격려금 전달식’에 참석한 수비수 김현우는 함께 수비를 책임졌던 골키퍼 이광연을 겨냥해 “‘연예인 병’에 걸린 것 같다”는 농담을 남긴 바 있다. 오랜 기간 연령별 대표팀 생활을 같이 한 동료를 향한 애정 어린 농담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광연은 연예인 못지않게 전파를 타고 있다.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이광연은 동시간대 2개 채널에 겹쳐 출연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대표팀 동료들과 입담을 뽐냈고 JTBC ‘한끼줍쇼’에선 골키퍼 선배인 이운재 코치와 함께했다. 유명 예능인 이경규와 강호동이 그를 만나기 위해 소속팀(강원 FC) 클럽 하우스가 위치한 강릉을 직접 찾았다. 이어 4일에는 ‘뭉쳐야찬다’에도 얼굴을 비친다.
젊은 축구 스타들의 방송가 나들이는 이번 한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작년부터 새로운 팬 층이 생기며 축구 인기가 조금씩 늘고 있다. ‘뭉쳐야찬다’나 배우 김수로 씨가 영국 축구팀 구단주에 도전하는 방송 등 축구가 방송가에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과거 축구 인기가 높던 시절에는 ‘이경규가 간다’, ‘최수종의 골든볼’, ‘날아라 슛돌이’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많았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이광연 같은 선수들이 TV에 출연하는 모습을 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표팀 일정을 마친 선수들은 각 소속팀에서 활약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달성한 대표팀 선수들은 각종 행사 참가, 방송 출연, 인터뷰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낸 이들은 “이제는 소속팀에서 보여줘야 할 때”라며 한 입으로 말한다. 연령별 대표팀에서와 달리 선수들은 소속팀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골키퍼 이광연은 대표팀 일정 이후 복귀한 소속팀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화려한 선방 능력을 선보였던 U-20 월드컵과 달리 4골을 실점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동료들이 5골을 득점한 덕에 데뷔전을 승리할 수 있었다. 그는 “월드컵 보다 어려웠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처럼 대다수의 U-20 대표팀 멤버들은 프로에서 첫 발을 뗀 ‘새내기’들이다. 선수생활 초반,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이들이 향후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많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