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장면. 사진공동취재단.
# 하얀 코끼리 논란...‘성공’ 보다 ‘돈 먹는 하마’ 단속이 먼저
동계올림픽이 열린 지 16개월이 지난 강원도 평창군,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평창 개·폐회식장인 올림픽스타디움은 성화대만 남기고 이미 철거됐다. 이 자리엔 내년 2월 올림픽 기념관이 문을 열게 된다. 올림픽 2주년에 맞추었다고 하지만 올림픽 효과를 이어가기엔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자칫 시간에 쫓겨 부실 조성 논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시설이 없어진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등 썰매 대표팀은 올림픽 끝난 뒤 훈련 한번 못했고 관리 주체가 정해진 나머지 경기장도 제대로 된 활용방안 없이 방치되고 있다.
평창 외에 올림픽이 열렸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조성부터 갈등을 빚었던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은 존치와 복원을 두고 여전히 논란 중이다. 산림청은 복원으로 기본 가닥을 잡고 있지만 강원도와 지자체, 주민들은 올림픽 유산 보존 등 존치를 원하고 있다. 최근 소강상태지만 입장 차가 분명해 갈등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나 강릉 하키 센터,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처럼 일반인이 이용하기 힘든 전문 시설은 임시 위탁 기관만 정하고 폐쇄됐다.
평창올림픽 경기장 등 시설물들이 대부분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최준필 기자.
이마저도 연간 40억 이상 운영비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강원도는 지방재정 부담을 고려해 이들 3개의 경기장을 국가대표 훈련시설로 지정해 내년부터 최소 20년 동안 매년 28억 3000만 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1월 KDI 용역을 발주하며 6월말 나올 결과에 따라 국비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국비 지원에 따라 이들 경기장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처럼 올림픽 개최 전부터 가장 우려했던 것이 경기시설의 사후활용 문제였다. 평창 역시 역대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희소성은 있지만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애물단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막대한 시설 유지비용은 차치하고도 국제대회 유치 추진을 논의할 대상 자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 같은 결과는 대회 유치와 개최에는 전력을 기울이면서 관련 인프라나 문화, 인력의 사후 활용에는 소홀한 우리 행정 관습이 답습된 꼴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를 위해 신설된 16개 경기장도 대회 후 연간 100억 원이 넘는 운영적자를 냈다.
인프라 활용방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과잉 투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하고 사후 활용전략을 짜는 것이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컬링 개최지였던 가루이자와(輕井澤)는 올림픽 이후 연간 850만 명 이상이 찾는 체류형 관광도시로 거듭났으며, 2006년 올림픽을 개최한 토리노는 산업도시에서 문화·관광도시로 이미지 변화에 성공하여 현재 이탈리아 내 로마와 플로렌스, 베니스에 이어 4번째 관광도시로 발돋움 했다. 2010년 밴쿠버의 전국단위로 확대된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지속 진행하는 것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정부도 뒤늦게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재단을 만들어 시설 운영과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현재 재단 운영 방식과 재정 지원 규모 등을 뽑기 위해 외부 연구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시설 사용료 같은 한시적 예산 지원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올림픽 경기장 활용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 올림픽 후광 사라진지 오래, 문 닫는 가게 속출에 지역 갈등까지
평창에서 올림픽 특수가 사라진지 오래다. 올림픽 전에도 겨울철 스키시즌과 여름휴가 등 관광객들을 제외하고 인적이 드물던 대관령 횡계리의 모습은 올림픽 전후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를 조금 지나치다보면 사뭇 다른 광경에 눈에 들어온다. 평창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고 몰렸던 모텔, 음식점, 프랜차이즈 등이 문을 닫거나 임대 안내문을 붙어 있는 장면이다. 동네주민들은 1년을 채 못 버티고 떠난 곳이 많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렸던 횡계리의 썰렁한 시내 모습.최준필 기자
부동산을 운영하는 지역주민 A 씨는 “올림픽 전에는 올림픽선수촌이나 펜션, 콘도 등에 대한 투자 문의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면서 “막상 올림픽이 끝나니까 투자열기가 바로 식었다”고 말했다.
편의점서 만난 주민 B 씨는 “올림픽하고 나면 동네가 확 뜰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동안 오던 외지인들도 올림픽 때 뚫은 외곽도로를 타고 강릉시내로 넘어가고 있다. KTX역이 생겼지만 이곳보다는 강릉까지 가는 교통편을 이용해 빠져나가 오히려 관광객들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C 씨는 “올림픽 때에 비할 것도 없이 매출이 줄어들었다. 공과금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없는 실정이다”면서 “올림픽 기간 중 식당을 차리거나 확장했던 곳들 중 상당수가 자리를 옮겨갔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하는 일은 달랐지만 올림픽 특수가 사라진 동네 경기가 심각해 진 것에는 공감했다. 또 이들은 간혹 올림픽을 기념해 찾는 관광객들이 있지만 올림픽 시설이나 상징은 대부분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부분 실망해서 자리를 뜬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들은 올림픽 때문에 강릉과 평창 간 지역별 갈등까지 생겨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는 “올림픽은 평창 중심이었지만 모든 혜택은 강릉이 가져갔다”며 “도로사정과 편의시설부터 올림픽 시설 등 유산에 이르기까지 지역편차나 차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평창뿐만이 아닌 올림픽을 치른 지역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만 중 하나였다. 평창올림픽으로 이익을 본 것은 거대한 주차장(올림픽 플라자)과 도로, KTX열차를 이용하는 것뿐이란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올림픽 후광이 사라진 이곳에서 평창올림픽의 성공은 그저 빛바랜 사진이 된지 오래다. 일각에서 평화의 마중물이자 흑자를 기록한 평창올림픽이 남긴 소중한 유산이 평창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