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한 전직 국회의원은 “정치인이 버스요금이나 생필품 가격을 몰라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는데 어쩌면 당연하다. (평소 보좌진이 다 해주니) 국회의원 두 번만 하면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현재 국회의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수십 가지에 달한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약도 이런 마약이 없다. 한 번만 (국회의원) 하고 본업으로 돌아간다던 사람들이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더라”고 했다. 이처럼 국회의원은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자리다.
그런데 스스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들이 있다. 이른바 총포자(총선을 포기한 자)들이다. 이들은 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했을까.
총포자들 중 가장 흔한 유형은 ‘선당후사’형이다. 당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 자유한국당 김무성, 윤상직, 정종섭, 유민봉, 이종명 의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해찬 의원은 총선 승리를 위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앞두고 솔선수범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무성 의원 등은 분열된 보수 통합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했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가 임박하면 이런 유형의 불출마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거다. 선거가 임박해 불출마하는 사람들은 선당후사보다는 공천이나 당선 가능성이 낮아 타의에 의한 불출마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이정현 의원은 지역 정가에서 불출마설, 지역구 변경설이 나돈다. 지역구가 험지인 호남인데다 탄핵 사태로 정치적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현 의원실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 꼭 출마할 것”이라며 “매주 지역 민원 현장을 찾아가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불사조처럼 살아나겠다”고 했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정치 실망형’이다. 바둑계 스타 출신인 조훈현 한국당 의원은 여야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에 실망했다며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앞서의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 때면 여야가 경쟁적으로 유명인들을 비례대표로 영입한다. 이분들은 정치를 잘 모르고 국회에 왔기 때문에 막상 정치 현실을 보고 실망하는 거다. 어차피 유명인들은 의원직에서 물러난다 해도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최근 정치권에서는 무작정 유명인들을 국회에 입성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진영 바른미래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최근 SNS를 통해 “아이돌도 몇 년씩 맹훈련해 키워내는데 국회의원은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면서 “조훈현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후 바둑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치는 정치를 아는 사람이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외부인사를 곧바로 국회의원으로 만들면 임기 절반은 분위기 익히다 지나간다”고 주장했다.
환멸을 느껴 정치권을 떠나기로 결심한 인물은 비단 정치 신인들뿐만이 아니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도 최근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는 이유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11년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비대위원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정치에 몸담아 왔던 인물이다.
‘정치 신인도 아닌데 정치에 환멸을 느껴 떠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안철수와 함께 기존 정치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잘 안됐다”고 답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현재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이외에도 정청래 전 의원 지역구를 물려받았던 손혜원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특이한 이유로 불출마를 못 박은 상황이다. 총선 불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민주당 이수혁 이철희 최운열 의원 등이다.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총선 불출마 선언한 사람들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 총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최근 한국당 내에선 부산이 지역구인 김무성 의원이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는 게 진정한 ‘선당후사’라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참패하자 총선 불출마를 시사했던 김정훈 의원도 최근에는 입장을 바꿨다. 당시 김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수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고 그러려면 기존 사람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면서 “내 거취도 곧 밝히겠다”고 했었다. 정치권에선 사실상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해석했지만 김 의원 측은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당시 김 의원이 직접적으로 ‘불출마’를 언급한 적은 없지 않나. 현재 불출마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했다.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불출마 의사를 밝혔던 제윤경 민주당 의원도 최근 입장을 바꿨다. 제윤경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인터뷰를 쓴 기자가 제윤경 의원 발언을 오해해 불출마라고 적은 것 같다. 현재 제 의원은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 결정내린 것이 없다”고 했다.
제 의원은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 중 가장 먼저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지역위원장은 총선 출마를 위한 교두보다. 총선 출마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제 의원이 갑자기 불출마 가능성까지 열어놓자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재명 경기지사 측근인 제 의원이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경기도 산하기관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제 의원이 맡고 있는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이 워낙 험지라 출마를 망설인다는 소문도 있다. 제 의원실 관계자는 “정보지에서 도는 내용일 뿐이다. 현재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실이 남은 임기 동안 태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총선 불출마 의원실 관계자들은 벌써 퇴임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한 총선 불출마 의원실 보좌진은 “(재취업을 위한) 이력서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업무 시간에 이력서를 써도 그 사람들 생계가 있는 것이니 뭐라 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지난해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은 20대 국회 들어 대표발의한 법안이 단 한 건도 없다. 입법 기관인 국회에 들어와 법안 발의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힘든 태업이다. 20대 국회의원 중 대표발의한 법안이 없는 국회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유일하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