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씩 나눠 맡기로 약속했던 국회 상임위원장직에 잡음이 일고 있다. 한쪽에선 계파 논란이 이어지고 한쪽에선 ‘몽니’ 논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진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경선. 황영철 의원이 원내지도부에 항의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당은 하반기 원구성을 하며 예결위원장직을 얻었다. 그리고 안상수 의원과 황 의원이 각각 7개월과 18개월씩 예결위원장직을 나눠 맡기로 합의했다. 일정대로라면 올해 2월 황 의원이 안 의원으로부터 넘겨받았어야 했지만, 본회의가 늦게 열리는 바람에 3월로 미뤄졌다. 그렇게 황 의원은 3월 7일 예결위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예결위 회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고 예결위원장은 임기 1년이 되는 5월 29일 종료됐다. 당초 약속대로라면 황 의원은 위원장직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당 지도부는 경선을 강행했다. 황 의원의 재판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며 경선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진 것이다.
황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다.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은 만큼 대법원 판결 또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황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는 물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그가 국가 예산을 담당해도 되냐는 논란도 이어졌다.
7월 5일 열린 한국당 예결위원장 경선에서 황 의원은 경선 거부 의사를 밝히고 퇴장했다. 그는 이어 “나경원 원내대표는 그 측근을 예결위원장으로 앉히기 위해 당이 지금까지 줄곧 지켜온 원칙과 민주적 가치들을 훼손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례는 향후 자당이 원내 경선을 통한 상임위원장 선출 등 여러 합의와 조율 사항에 대해 신뢰성을 훼손시키는 대단히 잘못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항의했다.
황 의원은 “동료 의원을 밀어내기 위해 가장 추악하고 악의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동료애가 있는 의원들이 할 수 없는, 너무 저질스럽고 추악하다”라면서도 “그러나 우리 당에는 저를 밀어내려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가슴 아프게 공감해주고 도와주려 했던 의원들도 계신다. 저는 그런 의원들과 떨어질 수 없다. 저를 사랑해주셨던 의원들과 헤어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원내지도부에 대한 설움이 담겨 있었다. 계파 논리에 따른 경선이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결위원장 경선에서 선출된 김재원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계파라니, 계파로 이렇게 (선출)된 것은 아니다. 지금 계파가 어디에 있나. 지원자가 둘 또는 셋 이상이면 당연히 경선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항간에선 비박계 A 의원이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면 안 된다”는 취지로 대화를 나눴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김 의원은 “그 사람과는 최근 6개월 내에 전화한 적도 없다”고 부정하며 “당시 (지난해 7월) 합의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만 합의했지 저는 합의에 참여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당시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2심 재판을 받고 있었고, 상임위원장 모집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은 본인 책임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제 책임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저를 배제하고 경선하지 않았나. 그 이후에 경선에 참여할 자격이 생겼으니, 경선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이어 “김광림 의원도 본인만 배제된 채 3선 의원들이 모여 위원장을 선출했다. 그것도 잘못”이라며 “계파와 상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재원 의원이 경선이 끝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박은숙 기자
국토위원장직을 둘러싸고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홍문표 한국당 의원에게 국토위원장을 넘겨주기로 약속한 박순자 의원은 수개월 전부터 거부 의사를 밝혀 왔고, 최근 7월 임시국회가 열리며 사퇴 시기가 임박하자 건강상의 이유로 고려대 안산 병원에 입원했다.
박 의원은 20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국토위원장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홍 의원과 조율이 어려워지자, 박 의원이 위원장직을 6개월을 추가로 수행하고 이후 남은 5~6개월을 홍 의원에게 양보하겠고 밝혔다. 6개월이 지난 내년 1월이면 21대 총선을 앞두고 ‘식물국회’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박 의원 명분은 다음과 같다. 홍 의원은 이미 예결위원장을 1년 지냈다는 점, 국토교통위에 현안이 산적했다는 점, 박 의원 본인이 유일한 여성 상임위원장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아울러 박 의원은 “잘못된 (임기 쪼개기) 관행과 관습은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도 6개월 뒤 다시 쪼개기를 제안한 것에 자기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게다가 박 의원의 ‘버티기’ 전략은 오는 8월 착공 예정인 신안산선을 앞두고 본인이 국토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하길 원하기 때문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신안산선은 경기도 안산과 서울 여의도를 연결하는 광역철도 노선으로 박 의원과 그 지역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박 의원은 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며 홍 의원에게 맞서는 상황이다. 홍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임기를 마음대로 연장하려는 박 의원의 몽니는 과욕을 넘어 우리 당을 욕보이는 행위”라며 “박 의원이 사퇴하지 않고 계속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이는 해당행위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4일 박 의원을 만나 설득을 했다는 후문이 전해졌지만, 한 당직자는 “나 원내대표가 아니라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직접 찾아간 걸로 알고 있다”며 “중재하는 데까진 해보고 나중에 원내지도부에서도 어떤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당론으로 정한 건데, (박 의원이) 당론을 어긴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 윤리위 제소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당론을 어겼으니 원내대표는 당연히 윤리위로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최대한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