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불씨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위 해체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사진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윤석헌 금감원장(왼쪽). 연합뉴스.
최근 금융위 해체론이 재부상한 배경에는 ‘키코(KIKO) 사태’에 대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피해기업들의 반발이 있다. ‘키코 사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과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했던 사건을 말한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사건이 일단락되며 피해기업 대부분이 구제받지 못했으나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윤 원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7월 키코 재조사에 착수, 1년 만인 이달 중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키코 문제가 상정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6월 10일 최 위원장이 “키코 사건이 분쟁조정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발언하며 피해기업들의 분노를 샀다. 참여연대는 피해기업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분쟁 조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감원 흔들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금융위는 더 이상 금감원과 무의미한 날 세우기를 멈추고 이제라도 금감원과 적극 협력해 키코 사건을 책임감 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해체’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의 집회에서다. 금융노조는 지난 6월 26일 열린 ‘금융위원장 사퇴 및 금융위 해체’ 집회의 후속 투쟁으로 지난 2일부터 산하 조직 순회 집회를 시작했다. 금융노조는 집회에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금융위 즉각 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금융노조는 금융위의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적격성 기준 완화 검토를 비롯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재감리 지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과징금 거부 등을 함께 거론했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위는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근거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과징금 부과를 거부하고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적발에 재감리를 지시하는 등 삼성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며 “문 대통령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대선에서 금융정책과 감독, 금융소비자 보호를 분리하겠다고 공약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내건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국정과제에는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의 주요 내용으로 ‘금융관리·감독체계 개편’이 명시됐다. 2017년 금융위 조직을 기능별로 개편하고 향후 정부조직개편과 연계해 정책과 감독의 분리를 검토하겠다는 것.
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핵심은 사실상 금융위 해체론이다. 학계를 중심으로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가 담당하고, 금융감독은 금감원이 맡는다는 방안이 오래 전부터 설득력을 얻어왔다. 진보 성향의 금융개혁 학자들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액셀’로 비유되는 금융산업 진흥정책과 ‘브레이크’인 금융감독 정책 기능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금융위의 책임을 지적했다.
김상조 정책실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의 남다른 관계도 언급된다. 두 사람은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관련해 ‘모델 금융감독법의 구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함께 내 “금융위의 금융정책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기능은 금융감독기구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실장이 금감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금감원 분조위 권고안 받아든 은행들 결정은? 금감원은 이달 중순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키코 피해 재조사 건에 대한 권고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이번에 금감원이 재조사에 나선 피해 기업은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4곳이다. 관련 은행은 씨티·케이비(KEB)하나·신한·우리·산업·대구은행 6곳이다. 법적 소멸시효가 지난 탓에 기업들 입장에서는 금감원의 분쟁조정이 마지막 구제수단인 셈이지만 권고안에 강제력이 없어 은행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권고안을 수락하면 합의서를 작성해 배상토록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은행들이 거부할 경우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키코 사건에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결과 발표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대안을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언급을 꺼렸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관련 은행으로 포함돼 있어 시중은행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기업 논리로 권고안을 거부하더라도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라는 책임감 탓에 금융당국의 권고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산업은행이 움직이면 다른 시중은행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