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를 둔 김지민 씨는 집안일로 아이를 돌보기 어려울 때마다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켠다. AI 스피커에 ‘어린 왕자 들려줘’라고 말하면 지민 씨 목소리로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그는 “딱딱한 기계음이 아니라 진짜 제 목소리로 대화하듯 동화책을 읽어주니 아이들이 엄마라고 생각하고 잘 집중하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KT는 지난 5월 개인화 음성합성 기술을 활용해 AI 스피커 ‘기가지니’가 부모 목소리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처럼 ICT·통신 등 여러 업계에서 오디오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시대가 바뀐다. 외면받던 라디오가 ICT 기술과 만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AI와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도래하면서 오디오가 핵심 디지털 콘텐츠로 재조명받고 있다.
네이버 오디오북 플랫폼 ‘오디오클립’은 지난해 7월 말 30권의 유료 오디오북 판매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31개 출판사와 손잡고 8700권의 오디오북을 제공하고 있다. 통신업계 KT도 자회사 ‘지니뮤직’을 통해 EBS와 손잡고 5G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KT는 지난 5월 개인화 음성합성 기술을 활용해 목소리를 녹음하면 AI스피커 ‘기가지니’가 부모 목소리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내 목소리 동화’ 서비스도 출시했다.
밀리의 서재는 ‘전자책 요약본’과 ‘오디오북’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리딩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수 장기하와 배우 전소민, 작가 유시민 등 유명인이 책을 해설해주고 본문 일부를 직접 요약해준다는 점에서 인기를 끈다.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도 최근 돌베개 출판사와 함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오디오북으로 출시했다.
오디오 시장이 커지면서 콘텐츠 영역도 늘어나고 있다. 시사 위주 팟캐스트에서 키즈 콘텐츠와 오디오북으로, 최근엔 오디오 예능·강연·드라마로 확대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오디오북 위주에서 퀴즈나 상담 등 예능 프로그램과 오디오 드라마로 소비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CT 기술 발달로 인공지능 스피커와 커넥티드 카 등 음성 소비 공간이 늘어나면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자율주행 실험도시 케이-시티에서 자율주행차 운행을 시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은 ICT 발달 덕분이다. AI스피커, 커넥티드 카 등 음성 인식 서비스 보급 확대로 집과 차량 등 음성 인식 소비 공간이 늘었다. KT에 따르면 기가지니 가입자 수는 2017년 1월 출시 이후 지난해 7월 1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5월 170만 명을 기록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AI스피커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사물인터넷 등 음성 인터페이스 기술이 진화하고, 오디오 콘텐츠 사용 환경이 전 연령대가 접하는 일상 공간으로 넓어지면서 사용자들의 수요도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편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진 점도 이유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AI 스피커로 음식부터 생활용품까지 주문하는 시대다. 글을 읽는 것조차 귀찮음과 피로를 느낀다”며 “듣는 것만으로 정보를 습득하려는 궁극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어지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디오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으로 쏟아지는 텍스트·영상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점, 오디오 콘텐츠는 소비하면서도 운전·업무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밀리의 서재 관계자는 “요즘 세대는 책을 읽지 않고 오디오북으로 듣거나 내용을 요약·해설해주는 팟캐스트만 들어도 ’읽었다‘고 생각한다”며 “독서의 형태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디오 콘텐츠의 발달은 침체된 출판업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다. 오디오북을 통해 책에 흥미를 느끼면 종이책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 다만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은 한계다. 다양한 책들이 오디오북으로 서비스되고 있지만 종이책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다. 오디오북을 제작하려면 내레이션부터 편집, 프로듀싱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비용 부담이 크고, 독자와 바로 연결되는 유통망이 부족해 판로 개척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다양화를 위해 유명 작가의 신작을 오디오북과 종이책으로 동시 출간하거나 유명인이 소설 속 인물들을 맡아 연기하고 내레이션 하는 등 질 좋은 콘텐츠 제작에 힘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를 다각화하는 동시에 ICT 기술을 활용해 혁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킬러 콘텐츠를 키워내야 한다”며 “VR로 영상을 더 생생하게 보듯 음향도 5G 기술을 통해 초고음질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등 실감형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오디오북을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한다면 더 대중화될 것”이라며 “이는 또 다양한 업계에서 관련 콘텐츠를 육성하는 것으로 이어져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한층 더 커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블록체인이 바꾸는 게임시장 미래 김 아무개 씨는 지난 10년간 A 게임을 즐기며 캐릭터와 아이템들을 모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 개발사가 파산하면서 A 게임 서비스가 종료됐다. 김 씨는 아이템을 다른 개발사에서 만든 B 게임에 옮겨뒀고, 보유한 캐릭터들은 또 다른 C 게임 유저들에게 매각해 암호화폐를 획득했다. 그는 얻은 암호화폐로 또 다른 D 게임에서 아이템을 구입했고, 일부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화해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셨다. 위 사례는 게임에 블록체인이 도입될 미래 얘기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상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모든 참여자의 컴퓨터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이다. 사용자간 모든 거래가 네트워크상 모든 블록에 저장·기록돼 중앙 관리 시스템 없이도 해킹이나 결제 중복 지불 위험이 적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에 사용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게임에 도입되면 소유권이 게임 개발사에서 유저로 넘어가는 이유도 이 같은 원리다. 네트워크 내 월렛을 만들어 아이템과 캐릭터를 월렛에 담을 수 있는 등의 거래하는 모든 과정은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개발사에서 게임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하더라도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유저는 투자한 자산을 유지한 채 다른 블록체인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다. 게임 내 자산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되면 현금으로 바꿔 쓸 수도 있다. 황성익 한국블록체인콘텐츠협회 회장은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 디지털 자산의 주권이 게임사에서 소비자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의 혁신성에 주목해 최근 게임·ICT 업계에서는 블록체인 게임 개발이 한창이다. 카카오는 지난 6월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를 통해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의 메인넷(디지털 화폐를 생성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정식 론칭했다. 한빛소프트도 지난 1일 블록체인 플랫폼인 ‘브릴라이트’ 메인넷 구축을 끝내고 게임 연동 작업에 들어갔다. 앞으로 게임업계의 블록체인 도입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게임시장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게임은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시장이기에 이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블록체인 게임이 활성화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국내에서 출시되는 모든 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사전 심의와 등급 부여를 받아야 하는데 현행법상 블록체인 게임에 명확한 정의와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등급 분류가 어렵다. 블록체인 게임이 암호화폐를 도입할 경우 게임의 사행성 논란으로 청소년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가 당장 연내 클레이튼을 통해 블록체인 게임을 다수 출시할 예정이어서 국내 출시 가능성을 두고 업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황성익 회장은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규제당국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만 당장 마련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도록 게임물을 19금 게임으로 등급을 매기면 사행성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동시에 블록체인 게임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