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레전드’ 정민철 해설위원과 ‘MLB 올스타’ 류현진이 미국 LA에서 재회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7월 5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경기를 통해 10승을 챙기며 기분 좋게 전반기를 마무리한 류현진(32). 평균자책점 1.73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 다승 공동 2위를 기록한 류현진은 인터뷰실에 들어서며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친 후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방송 촬영차 미국을 방문한 MBC스포츠플러스 정민철(47) 해설위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틀 전 방송팀과 함께 류현진을 찾은 정민철 해설위원은 아끼는 후배의 10승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류현진은 정 위원에게 다가가 “럭키 가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좋아하는 선배가 자신의 경기를 지켜봐 준 덕분에 10승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는 의미였다. 정 위원도 류현진과 가볍게 포옹하며 후배의 10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다저스 더그아웃에서 정민철 위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정 위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7월 5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시즌 10승을 달성한 류현진이 현지 언론을 상대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동갑이라는 게 사실인가.
“나도 여기 와서 알았다. 72년생 동갑이라고 하더라(웃음).”
–좀 전에 ‘스포츠넷 LA’ 해설자로 활약 중인 오렐 허샤이저를 인터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저스 취재 와서 여러 선수를 만났지만 허샤이저 씨 인터뷰할 때가 가장 기대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빙그레(한화) 입단했을 때 처음 달았던 등번호가 55번이었는데 그건 허샤이저 씨가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였다. 198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인 59이닝 무실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허샤이저 씨의 투구를 보고 반한 나머지 그분의 등번호를 따라 했는데 그런 분을 직접 뵙게 되니 실감이 나지 않더라.”
–류현진과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야구 선후배 관계에다 류현진에게 배지현 전 아나운서를 소개해준 사람 아닌가.
“현진이는 평생 나한테 잘해야 한다(웃음). 야구도 잘하고 있지만 아내랑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겨울에 한국에서 보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 마음이 놓인다.”
–한화 시절, 류현진을 처음 봤을 텐데 당시 류현진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현진이가 한화 입단하기 전 청소년대표팀에서 뛰고 있을 때 TV에서 투구하는 걸 먼저 봤었다. 어린 선수가 커브를 기가 막히게 던지더라. 당시 청소년대표팀 선수단이 인천의 한 호텔에 묵었고, 우리 팀도 인천 원정 경기 동안 그 숙소를 사용했다. 그때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류현진을 만난 것이다. 내가 현진이를 보자마자, ‘네가 류현진이구나’라고 말했더니 현진이가 ‘네.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이듬해 현진이가 한화의 지명을 받게 된 것이다. 데뷔 첫 해부터 엄청났다. 익히 실력은 알고 있었지만 신인 때부터 그토록 괴물 같은 모습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같이 생활해 본 류현진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아주 차분한 성격이었다. 말수도 적고, 형들한테 잘하고, 후배들도 잘 챙기고. 현진이를 싫어하는 선수가 없었다. 야구도 잘하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귀엽게 행동하는 모습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당시 한화에는 구대성을 비롯해 송진우, 정민철 등 최고의 투수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부분이 류현진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나.
“현진이가 신인 때 스프링캠프에서 구대성 선수와 함께 방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성이 형도 야구 머리가 뛰어난 사람인데 그에 못지않은 현진이가 ‘방졸’로 한 방에서 지냈으니 두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현진이는 다저스에서도 클레이튼 커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류현진을 보고 워커 뷸러가 자극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참 인복이 많은 선수다.”
–야구면에서 정민철 위원한테는 없었고, 류현진한테만 있는 게 무엇인가.
“다양성이다. 난 투수로서 다양성이 없었다. 강한 직구와 커브만으로 타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선수들이 내 패턴을 훤히 꿰고 타석에 들어섰다. 반면에 현진이의 구종은 변화무쌍하다. 구종도 다양하지만 궤적이 매우 뛰어나다. 그렉 매덕스처럼 제구로 마운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가 류현진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 테고.”
–류현진이 맨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찬호 형, 김병현, 김선우와는 달리 KBO리그 출신으로 처음 MLB에 데뷔하는 게 아닌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데 데뷔 첫해부터 놀라운 투구와 성적을 나타내더라. KBO리그 출신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데뷔 첫해보다 더 놀라웠던 건 어깨, 팔꿈치 수술 이후다.”
LA 다저스 더그아웃에서 포즈를 취한 정민철 MBC SPORTS+ 해설위원. 사진=이영미 기자
–정민철 위원도 수술 후 재기 가능성을 낮게 본 건가.
“어깨 수술해서 이전의 기량으로 회복될 확률이 7%라고 하지 않았나. 현진이가 수술 후 2016년 6월 그때도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4.2이닝 동안 8피안타 1홈런 6자책점을 얻으며 강판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1회 구속이 93마일, 91마일이 나왔다.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강하게 던지다 2회부터 88, 87마일로 구속이 뚝 떨어졌다. 지난 시즌부터 현진이는 투구에 강약조절을 하고 있다. 처음에 구속을 적게 내다가 중반이 넘어가면서 강하게 공을 뿌리며 상대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런 마운드 운영이 성적으로 이어진 부분도 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고, 이제는 부상 염려 없이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현진이에게 더 큰 자신감을 심어준 듯하다.”
–선수 시절 수술한 경험이 있나.
“팔꿈치 뼛조각 제거를 받았다. 그때도 수술 후 내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이전처럼 공을 던지지 못할까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나도 그 정도였는데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받은 현진이는 오죽했을까 싶다. 그 무렵 배지현과 연애를 시작했고, 미래도 약속한 상황이라 책임감도 느꼈을 것이다. 오늘 경기장 오기 전 현진이의 어깨 수술을 담당한 다저스 담당 전문의 닐 엘라트라체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엘라트라체 박사의 말에 의하면 수술 결과보다 수술 후 선수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재활 결과가 차이난다고 하더라. 즉 자신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것과 비관적인 생각으로 재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재활을 경험했지만 특히 어깨 수술 후의 재활은 지루하고 긴 시간이 소요된다. 현진이는 그 과정을 충실히 이행했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미래를 항상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런 점들이 ‘7%의 재기 가능성’에 류현진이란 이름을 올려놓게 한 것 같다.”
–올 시즌 류현진의 대단함은 꾸준함이다. 선배의 시각은 어떤가.
“올 시즌 현진이는 한국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고,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확정되는 등 더할 나위 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음에도 흔들림이 없다. 주위의 기대와 관심이 커지면 선수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현진이는 주목받을수록 힘을 빼고 투구한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현진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진이처럼 마음을 다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후배지만 존경스럽다. 현진이는 마운드에서의 제구뿐만 아니라 마인드 제구도 몹시 훌륭한 선수다.”
정민철 위원은 류현진이 지난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 경기에서 4이닝 9피안타(3홈런) 7자책점을 기록했던 내용을 끄집어 냈다. 그는 오렐 허샤이저의 말을 인용해 고지대인 쿠어스 필드에서는 볼넷 허용을 피하기보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사용해 ‘짠물 피칭’을 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5일 다저스가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5-1 승리를 거둔 후 다시 기자와 만난 정민철 위원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오늘 현진이가 던진 투구 내용이 말 그대로 ‘짠물 피칭’이다. 그 덕분에 볼넷 3개를 허용했지만 승수를 챙길 수 있었다. 현진이가 볼넷 허용을 싫어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볼넷을 주고 경기를 이끌어가는 면도 필요하다. 오늘 경기를 통해 후반기에 대한 기대를 부풀릴 수 있게 됐다. 부디 건강하게 시즌을 잘 마치기만을 바랄 뿐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