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길을 걷고 있는 ‘K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의 주인공 한동원을 만나봤다. 사진=이종현 기자
[일요신문] 지난 201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수 마커스 래시포드의 등장에 축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만 18세 나이에 빅리그에 데뷔, 연일 골을 기록하며 찬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골을 넣고도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이에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고 ‘아직 학교 급식을 먹는다’는 의미로 ‘급식포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처럼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에선 10대 선수의 대활약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국내 K리그 무대에서도 ‘급식을 먹는’ 선수가 탄생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부터 프로계약 가능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준프로계약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수원 삼성은 지난해 박지민, 올해 오현규 등 ‘고교생 K리거’를 배출해냈다. 오현규는 올 시즌 K리그 경기에 출전해 경기장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며 화제를 낳았다. 오현규의 활약과 함께 과거로부터 소환된 선수가 있었다. 오현규의 데뷔 시점(18세 14일)보다 약 2년 앞선 ‘K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 보유자 한동원이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한 카페에서 만난 한동원도 오현규의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그는 “그 친구가 데뷔하며 내가 다시 언급됐다. 그걸 보고 주변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사실 나는 ‘급식’은 아니었다. 중학교를 중퇴한 상태였으니까”라며 웃었다.
연맹에서는 준프로계약 제도를 도입하며 계약 연령을 18세에서 17세로 낮췄다. 여전히 한동원의 기록은 당분간은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동원은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깨지기 힘든 기록 아니겠나. 선수로 뛸 때는 별 생각 없었다. 지금 돌아보니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제자들에게 조금은 자랑할 만한 소재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연소 기록’ 탄생 비화
그가 남들보다 빨리 프로 무대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 안양 LG 지휘봉을 잡고 있던 조광래 현 대구 FC 사장의 적극적인 구애가 있었다. 그는 2001년을 떠올리며 “아버지께서 ‘안양에서 프로 계약 제의가 왔다’고 말씀 하셨다”면서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연고 구단인 수원 삼성에 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소리냐, 우리한테 와야지’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수원에선 2주간 테스트를 제안했다. 안양은 바로 도장을 찍는 제안이었다. 더 확실했던 안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어린 나이에 2군에서 적응기를 거치고 있던 그에게 데뷔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정식 입단 첫해 5월 데뷔전을 치렀다.
“2군에서만 훈련을 했는데 당시 코치였던 이영진 선생님(베트남 국가대표 수석코치)이 ‘1군으로 오라’고 하셨다. 이어 조광래 감독님이 부르시더니 선수들 다 있는데서 ‘내일 동원이가 출전한다. 한국 축구 발전하려면 어린 선수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다음날 리그컵 경기 대기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 컵대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라 상대가 1.5군을 투입했다. 여유가 생기면 내가 투입될 예정이었는데 경기가 잘 안 풀렸다. 0-0으로 팽팽하게 진행됐고 연장전에 교체로 들어갔다. 결국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경기다.”
당시 1년 전까지 중학생이던 그가 프로 무대에 나서던 순간은 만 16세 25일이 되던 날이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최연소 데뷔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아래로 고종수, 이청용, 김은중 등 내로라하는 ‘축구 신동’들의 기록이 이어진다.
어린 나이에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은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도 합류해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연합뉴스
유난히 빨랐던 데뷔 이후 착실히 성장을 해나갔다. 그 사이 팀은 서울에 둥지를 다시 틀었고 한동원은 전성기를 맞았다. 성남 일화로 이적하며 20억 원에 가까운 이적료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각급 대표팀에 호출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명문으로 불리는 성남에서도 인정받는 선수였던 그는 2010년 일본행(몬테디오 야마가타)을 선택하며 축구 인생이 꺾이기 시작했다. 첫 해외 생활에서 1년간 3경기에만 출전하며 1골을 기록했다. 그는 “그때 감독님과 성향이 잘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감독님께서 잘해주셨고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다. 일본 데뷔전에서 후반에 투입돼 골을 넣고 역전승을 거뒀다”면서 “그런데 감독님이 안정적이고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분이셨다. 0-1로 지고 있으면 뒤집으려 하기보다 추가골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성향이셨다. 그러다보니 공격적인 나는 기용 순위에서 밀렸다. 그런 상황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은 일본 이적을 원하지 않았다”고도 털어놓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다”라며 “성남과 계약 종료 1년을 남겨놓고 재계약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나에게 묻지도 않고 구단에 ‘이적 하겠다’는 말을 했다더라.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일본으로 가게 됐다”라고 전했다. 이어 “당시 신태용 감독님이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나를 주전에서 제외했다. 이적하겠다는 선수 보다는 남아 있을 선수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감독 입장에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나중에 ‘그 때 감독님이나 코치 선생님들께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할 걸’하는 후회도 했다. 에이전트를 원망하기도 했고”라고 덧붙였다.
1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온 그는 대구 FC(2011년), 수원 삼성(2012년)을 거쳤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특히 수원 시절 그의 K리그 출전 기록은 0경기다. 그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프로 계약할 때 수원에 있었던 코칭스태프가 내가 수원에 갔을 때도 있었다. 그 분이 내가 임대로 가니 ‘배신자 XX 왔다’면서 욕을 했다더라. 프런트에서 나를 임대했는데 그분은 원하지 않았나보다. 2군에서만 뛰고 1군 경기에는 1경기도 나가지 못했다. 2군을 맡으셨던 서정원 감독님이 잘 다독여 주셨던 게 기억난다.”
이후 강원 FC(2012~2013년), FC 안양(2013년)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부활하는 듯 했던 그는 결국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동원은 은퇴 상황에 대해 “안양 임대 이후 강원과 계약기간이 끝났다.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에서 한 에이전트가 ‘태국에 가면 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태국으로 넘어갔다”면서 “그런데 도착해보니 테스트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 대학 선수 등 30여 명과 함께였다. 이후로도 태국 여기저기서 테스트를 보다보니 K리그는 선수 구성을 마친 상황이었다. 태국 가기 전에 수원 FC에서 제의가 왔는데 그때 손을 잡았다면 지금까지 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계약에 실패한 그는 다음 이적 시장이 열리기까지 약 6개월을 쉬어야했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짧은 기간만을 뛴 후 부상 등이 겹치며 축구화를 벗었다. 1986년생으로선 다소 이른 나이였다.
프로팀 감독이 꿈이라는 그는 “공격수 출신이기에 패스를 기반으로 한 공격축구를 팬들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주목받는 선수에서 한 순간 ‘실업자’가 된 한동원이었다. 은퇴 이후 상실감에 거의 2년 동안 집 밖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조차 싫어졌다. 그는 “항상 내 경기를 쫓아다니시던 부모님은 아쉬움이 크셔서 지금도 축구를 보지 않으신다”고 전했다.
그런 한동원을 집 밖으로 끌어낸 것은 TV 예능 ‘청춘 FC 헝그리일레븐’이었다. ‘축구 미생’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에 그가 출연하며 이목을 끌었다.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참가자였다. 하지만 그의 출연은 짧게 마무리됐다. 당시 감독을 맡아 선수 선발에 나선 안정환은 ‘올림픽 대표까지 하며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선수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한동원을 뽑지 않았다.
“집에만 있다가 주변 부탁으로 축구 레슨을 하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선수 복귀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한 번 생활에 활력을 찾아보려는 마음으로 거기(청춘 FC)에 지원 했다. PD도 적극적으로 나왔고 이을용 형님도 좋게 얘기해줬다. 그런데 안정환 선배가 안 된다고 해서 좀 아쉬웠다. 방송에는 내가 경기력이 안 좋게 나왔는데 사실은 게임도 잘 뛰었다. 편집의 피해자가 됐다(웃음). 방송 보신 분들은 완전히 내가 몸이 망가진 줄 아시더라.”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경희대에서 코치로 첫 발을 내딛었고 현지는 ‘구직 활동’ 중이다. 그는 “언젠간 프로 팀을 맡아서 이끄는 것이 목표지만 지금은 지도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최근엔 AFC B급 라이선스 교육을 이수했다. 3주간 합숙 교육을 마친 그는 “오랜만에 선수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다 같이 어울려서 배우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뜨거워졌다. 한동원은 “은퇴 이후 축구와 멀어졌는데 지금은 가능한 모든 경기를 챙겨보려 노력한다. 우리나라에선 새벽에 열리는 코파아메리카 같은 경기도 다 봤다”면서 “아무래도 현역 때 아쉬움이 남아서 지금 더 의욕적으로 덤비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아쉬움이 큰 그이기에 제자들에게도 ‘잔소리 꾼’이 된다. “경희대에 있을 때 선수들에게 ‘결국 후회하게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자주했다. 내가 직접 느낀 부분이니까.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