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위증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사법연수원 23기) 청문회에 대해, 윤 후보자의 편을 들어준 이 발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다.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이 없다’고 단언한 것. 홍준표 전 대표가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가재는 게 편이라고 후배 윤 후보자의 편을 들어준 것일까. 이에 법조계에서는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이 소개해 준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위법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7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오전 질의 답변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청문회 전만 해도 50%에 육박했던 윤 후보자의 지지율(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6월 18일 전국 성인 500명 조사, 윤 검찰총장 후보 지명 관련 ‘잘했다’는 긍정 평가 49.9%. ‘잘못했다’는 부정 평가 35.6%)은 어느새 여당 내에서도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바뀌었다. 검찰 내에서도 “잘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후보자의 ‘강골 검사’ 이미지가 이번 청문회로 흔들린 것은 당연지사. 이런 이유로 법조계에서는 이번 청문회의 승자는 윤 후보자 선택을 강행한 청와대도, 판 흔들기에 성공한 야당도 아니라는 평이 나온다. 진짜 승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흔들리는 리더십으로 검찰을 이끌게 된 윤 후보자의 상대인 경찰이라는 것이다.
# 검찰 개혁 방향에 대해 ‘저항하지 않겠다’ 꼬리 내리면서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7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개최한 인사 청문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저항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반대의 뜻을 던졌던 문무일 검찰총장과는 다른 태도를 예고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공수처 관련해서는 “법안 각각의 조항에 대해 다 찬반을 밝힐 수 없지만 부패 대응 역량의 국가적인 총합이 커진다면 동의한다”고 큰 틀에서만 동의 의사를 내비쳤다. 구체적인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향후 ‘정부와 다른 입장을 개진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윤 후보자는 미리 준비한 듯 야당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답을 이어갔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선 대답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윤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나 국회에서 거의 성안이 다 된 법을 검찰이 틀린 것이라는 식으로 폄훼한다거나 저항할 생각은 없다”며 이견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해줬다.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와 경찰 수사종결권 부여 문제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 지휘라는 과거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별 내용이 없는 사건들은 경찰이 종결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경찰의 자체 결정 권한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운은 남겼다. “형사사법시스템은 국민의 권익과 직결되므로 한 치의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고, 국민 보호와 부정부패 대응에 사각지대가 발생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한 윤 후보자는 “중요 사건은 검경이 같이 들여다본다”와 같이 검찰이 경찰 수사에 개입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일종의 ‘전제’를 단 것.
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대해서도 “반부패 대응 역량이 제고, 강화된다면 동의한다”며 전제 조건을 걸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오른 검찰개혁안에 ‘큰 틀’에서는 동의하지만, 조건들을 달아 언제든 ‘제동’을 걸 여지를 만들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윤 후보자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확고한 의지로 천명했다. 윤 후보자는 “정치적 사건과 선거사건에 있어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하겠다.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정치논리에 따르거나 타협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검찰 간부급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가장 검경 수사권 조정에 잘 대응할 리더라는 평을 받을 만큼, 자기 철학이 분명하면서도 또 대외적인 대응도 잘하는 프로”라며 “다른 이슈로 시끄러웠지만 적어도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패스트트랙에 포함된 내용들에 대해서만큼은 언론에서 ’전향적이다‘라는 평을 받았다면 청문회는 일단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후보자와 친분이 두터운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서 윤석열에게 기대하는 것은 검찰 조직의 칼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면서 동시에 뺏기지 않는 것인데, 검찰의 향후 개혁 방향에 대한 윤 후보자의 답변만 보면 완벽에 가까웠다”며 “국민의 검찰을 외치면서 정치적인 독립을 강조한 점과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한 것은 앞으로 검찰총장으로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명분을 잘 제시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모습. 박은숙 기자.
# 조국 나오면 어떻게 되나
하지만 검찰 개혁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수차례 언급한 문재인 정부인 만큼 윤석열 후보자 앞에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 장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가장 큰 변수다. 행보 역시 심상찮다. 조국 수석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해명 메시지를 일부 여당 의원들에게 보냈다. 의혹에 대한 해명이라지만 1200자나 되는 분량과 구체적인 해명이 ‘아군 다지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아직 대통령의 공식 지명도 없었는데 조 수석은 민정수석 본연의 업무는 나 몰라라 하고 들뜬 마음으로 셀프 언론 플레이에 나선 것인가”라며 “설레발을 쳐도 너무 쳤고, 김칫국을 마셔도 너무 일찍 마셨다”고 비판했다.
법조계는 이런 조국 수석의 행보를 놓고 “법무부 장관을 직접 해서라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냐”고 분석한다. 조국 수석과 친분이 있는 한 변호사는 “조국 수석은 원래 처음 청와대에 갈 때부터 2년 6개월만 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그 기간을 다 채운 것이고 다음 행보를 놓고 여당 등에서는 출마를 제안했지만 직접 개혁을 완수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 같다”며 “초반에는 교수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요새는 그런 얘기를 일절 하지 않더라. 그런 차에 장관 설이 나왔고 그런 상황에서 세간의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을 보면 법무부 장관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강골 윤석열 후보자와의 검찰 개혁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 후보자는 특수수사 영역만큼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할 것이다. 거꾸로 조국 수석은 검찰의 특수수사 영역을 공수처 등으로 넘겨 칼을 뺏겠다는 입장 아니냐”며 “윤석열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을 말하지 않고 참고 갈 사람이 아니다.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입장을 표명할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 준비 답변 잘 했는데, 버벅된 ‘강골’ 검사 윤석열
하지만 청문회는 그런 전망을 무색하게 할 만큼, 윤석열 후보자에게 불리하게 진행됐다. 특히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변수가 터졌다. ‘뉴스타파’에서 보도된 녹취 파일을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했는데, 여기서 윤석열 후보자의 답변이 논란이 됐다.
해당 녹취 파일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자는 지난 2012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형) 사건을 취재하던 주간매체 기자에게 “이 사람(윤우진)에게 변호사가 일단 필요하겠다. 지금부터 내가 이 양반하고 사건 갖고 상담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내가 중수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변호사)이 보고 ‘일단 네가 대진이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대진이 한참 일하니까 형 문제 가지고 괜히 머리 쓰면 안 되니까 네가 윤우진 서장을 한 번 만나봐라 (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를 윤 후보자가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공세를 펼쳤다. 변호사법 36조에는 ‘재판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소속 공무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취급 중인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에 관해 당사자 또는 그 밖의 관계인을 특정한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소개·알선 또는 유인해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는데, 윤 후보자가 이를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윤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7년 전 인터뷰 내용은 잘못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검찰국장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설명한 것. 그는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소개해 준 게 아니라고 했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변호사를 선임시켜준 사실은 없다”며 “사건이 수임이 돼야 문제가 된다”고 자신 있게 선을 그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박은숙 기자.
하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추가로 등장하며 논란은 더 확산됐다. 윤 후보자 얘기와 다르게 이 변호사는 2013년 8월 용산세무서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한 윤 전 서장 측 변호인으로 활동한 게 확인된 것.
윤대진 검찰국장도 청문회 다음날 “내가 형(윤 전 서장)에게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해줬고 윤석열 후보자는 나를 위해서 그런 것 같다”며 기자들에게 입장을 보냈지만, 이는 되레 ‘조폭식’ 낡은 조직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검찰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졌다.
검찰 고위급 관계자는 “후배나 어린 검사 시절부터 선배들로부터 기자를 상대할 때 ‘말할 수 없다’라고 말을 하면 했지,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배웠다”며 “그런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윤석열 후보자가 ‘거짓말을 했다’고 국민 앞에 얘기한 셈인데 강골 윤석열이기에 타격이 너무 크다, 누가 봐도 잘못한 것인데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당 내에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윤 후보자가 총장을 할 자격은 있다”면서도 “윤대진 검사가 자기 형한테 변호사를 소개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윤 후보자가 이 변호사에게 시켜서 윤우진에게 문자를 보내고 찾아가게 했다는 당시 언론 인터뷰는 단순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설명’이 아니라 적극적 거짓말이다.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있어서만큼은 ‘검찰의 든든한 대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윤 후보자가 ‘국민적 비판’과 함께 총장 자리를 시작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검찰 내 짙게 묻어나고 있다.
일선의 한 차장검사는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사건 앞에 당당한 강골 검사’로 국민을 설득해야 할 윤 후보자가 청와대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줄어들었다”며 “결국 이번 청문회의 승자는 경찰이 아니겠냐. 경찰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청문회 준비팀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뉴스타파’에서 보도를 했고, 청문회 들어갈 때도 질문을 하는 등 어느 정도 예상된 질문이었는데 윤대진이 그 다음날 해명을 하고 또 사실을 축소하려는 듯 답변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며 “윤 후보자도 잘못했지만, 전략을 잘못 짠 윤 후보자 지원팀도 잘못이 있다”고 분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