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반토막 날까
주택법은 공공택지 외의 택지에서도 주택 가격 상승 우려가 있을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분양가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으로 정하도록 해 정부의 재량이 크다. 시행령상 지정요건은 최근 3개월간 주택 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를 넘거나 직전 3개월 주택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때다. 현재 소비자물가는 6개월째 0%대다. ‘물가상승률의 2배’를 ‘물가상승률’로 바꾸면 적용이 아주 쉬워진다.
분양가격은 기본형 건축비에 건축비 가산비용, 택지비를 합해서 정해진다. 분양원가의 절반 이상은 택지비가 차지하는데, 분양가 상한제는 시세가 아닌 공시지가 기준이다.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의 시세반영률은 평균 64.8% 수준이다. 서울로 갈수록 이 비율은 더 낮아진다. 강남지역 분양가가 극단적인 경우 시세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와 관련,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주택사업자가 아파트를 선(先)분양할 때 반드시 발급받아야 하는 ‘분양보증서’ 심사로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다. 분양가가 높으면 보증서를 발급하지 않는 방법이다. 분양 사업자들이 분양보증서 발급이 필요 없는 후분양으로 방향을 돌리면 HUG를 거치지 않을 수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 후분양의 위험은 미분양인데, 서울 등 인기 지역의 경우 수요가 많아 거의 다 지어 놓은 아파트가 안 팔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인기지역은 미분양 위험이 낮은 만큼 공사 진행에 따른 비용을 금융권 등에서 조달하기도 용이하다. 소요되는 금융비용을 분양가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선분양은 계약자가 입주 때까지의 시세 상승 기회(시세하락 위험)를 갖는 대신에 금융비용을 감당하는 구조다. 후분양은 시세 상승 기회를 사업자가 갖는 대신에 금융비용을 계약자에 넘기는 구조인 셈이다.
# 왜 지금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9년 7월 첫째주(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강남 재건축과 신축 단지를 중심으로 0.02%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34주 만에 처음 상승한 수치다. 부동산114가 발표한 서울 아파트가격 변동률은 상승세가 더욱 뚜렷하다. 4주째 오른 서울 아파트값은 상승폭이 지난주(0.03%)보다 2배 이상 확대된 0.07%를 기록했다.
시장에선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 봄철에 가세한 투기수요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통상 여름철인 3분기에 몰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울의 집값이 과도하게 상승할 경우 추가 대책이 늦어도 오는 9월쯤 발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8월 말, 9월 초까지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분양가 상한제의 역사
1977년 처음 도입됐다. 중동 붐으로 유입된 자본이 집값을 급등시켜서다. 규모나 공영·민영에 관계없이 모두 3.3㎡당 55만 원 상한이었다. 이는 1980년대 ‘전셋값 대란’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200만 호 주택공급을 위해 1989년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분양가를 택지비와 건축비에 연동하는 ‘원가연동제’를 시행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주택시장이 침체하자 단계적으로 완화됐고, 1999년부터는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받는 아파트 외에는 분양가가 모두 자율화됐다.
주택경기가 살아난 2005년 정부는 공공택지에 건설·공급되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의 분양가를 규제했다. 2006년에는 공공택지 내 모든 주택, 2007년 9월에는 모든 공동주택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민간택지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는 2015년 4월 폐지됐다.
# 예상되는 효과는
전문가들은 당장 집값은 안정시키더라도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새 아파트 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재건축은 씨가 마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민간택지 내 분양가 상한제에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08년 5만 6000여 가구에서 2013년 2만 36000여 가구로 반 토막 났다. 전국 입주물량도 이 기간 32만여 가구에서 19만 8000가구로 떨어졌다. 이번엔 재건축 규제까지 강화된 마당이어서 이번엔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비사업 등에 규제를 계속한다면 서울에서 준공한 지 5년 된 아파트는 현재 8.98%에서 2025년 0.65%로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격 규제로 공급이 줄면 값이 더 오른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얘기”라며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당초 목적과 달리 가격 왜곡이 심화할 수 있다”고 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