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 금지된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 씨에게 내려진 비자 발급 거부가 위법이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유승준이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 총영사를 상대로 낸 사증(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 보냈다. 지난 2015년 유승준이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의 비자를 신청했으나 총영사관 측이 “입국규제대상자이므로 사증 발급이 허가되지 않는다”고 전화 통보한 것에 대해 소를 제기한 사건이었다. 앞선 1심과 2심에서는 유승준의 청구를 그대로 기각했기 때문에 이번 대법의 판결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줬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결을 내린 이유에 대해 LA 총영사관 측이 총영사의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고, 법무부의 입국금지결정만을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한 점을 지적했다. 또 발급 거부 처분을 하면서 처분서를 작성해 유승준 측에 교부하지 않고 전화로만 통보한 점 역시 현행 행정절차법을 위반해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즉, 절차상의 미비가 존재하므로 적법한 절차를 통해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질 경우 LA 총영사관은 유승준이 신청한 비자 발급을 절차에 따라 다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유승준의 ‘입국 가능’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차상 하자는 단순히 처분서를 교부하지 않았다는 것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총영사관이 재량에 따라 재판단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도 발급을 거부하고, 처분서만 건네준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의 판결 이후 터져 나온 국민들의 공분에 법조계 내부에서는 “비자 발급 조건을 갖추더라도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결격 사유 등이 인정된다면 입국 금지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큰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장천 변호사는 “행정 절차만의 문제로 본다면 유승준 측이 다시 비자를 신청하더라도 절차 위법성만 치유해서 입국을 거부해도 문제가 없다. 현재 대법의 판결에 따르면 총영사관 측에서 다시 판단을 해도 다른 이유로 비자 발급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아프리카TV 방송으로 국내 입국 의사를 밝혔던 유승준. 사진=아프리카TV 방송 캡처
이 가능성은 유승준이 신청한 비자의 성격에 비춰봤을 때 더 부각된다. 유승준이 신청한 재외동포(F-4) 비자는 선거권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권리를 부여한다. 유승준이 이 비자로 입국하면 가수활동을 포함한 연예활동을 제약 없이 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지난 2002년 병무청은 법무부장관에 “유승준이 재외동포의 자격으로 입국해 연예활동을 할 경우 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하게 되며, 외국국적 취득을 병역 면탈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며 유승준이 재외동포 자격으로 재입국하고자 할 경우 영리활동을 할 수 없게 하거나 이 사안이 불가능할 경우에 한해 입국 자체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법무부장관이 2002년 2월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결정했던 만큼, 영리활동을 목적으로 한 그의 입국은 비자 발급 거부의 사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대법에서 유승준의 비자 발급 거부 처분과 같은 개인에 대한 불이익 처분에 있어 적용돼야 할 비례의 원칙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병역의무 위반과 그에 따른 입국금지, 비자 발급 거부라는 제재 처분 사이에서 공익과 유승준 개인의 피해에 대한 비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사안임을 차치하더라도, 실정법과 법의 일반원칙에 따른 판단이 이뤄져야 했다는 게 대법의 지적이다. 결국, 유승준의 입국을 반드시 막아야만 보존할 수 있는 공익보다 유승준 개인의 피해가 더 크다면 그의 출입국이나 체류를 제한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유승준의 입국금지 관련 청원은 12일 기준으로 청원 하루 만에 8만 명이 참여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이 판단의 바탕이 된 것이 재외동포법이다. 재외동포법이 재외동포의 대한민국 출입국과 체류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므로, 재외동포에 대해 기한 없는 입국금지조치는 법령에 근거가 없는 한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더욱이 현행법상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해 외국인이 된 경우에도 41세까지만 재외동포 체류 자격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송 제기 당시 만 38세였던 유승준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 또는 제한할 법적 근거가 빈약하거나 사라졌을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았으므로, 총영사관의 재량권 행사에 이 부분을 적용해 다시 비자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대법의 판단이다. 이런 취지에 비춰 본다면 유승준의 비자 발급과 국내 입국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유승준의 입국금지결정을 내렸던 법무부에서는 이번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병무청장의 의견과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12일 기준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유승준을 다시 입국 금지해 달라’는 청원은 하루 만에 8만 2000명이 참여해 유승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줬다. 이 같은 국민 여론과 사회 전체의 공익까지 고려한다면 유승준의 국내 입국은 현재로썬 요원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유승준은 2002년 출입국관리법 제11조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 판단돼 입국금지결정이 내려졌으므로, 이를 재검토할 정도의 타당한 근거가 마련돼야 유승준의 입국에 잡음이 덜 생길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유승준이 국적을 포기하게 된 계기나 절차가 당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개인의 피해보다 한국사회 전체의 공익을 우선한 현 결정은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